제주이야기/한라산 자락

덕수리 현재옥 효자비

하늘타리. 2010. 10. 15. 12:00

안덕면 덕수리

현재옥 효자비

 


이 비는 참 사람을 헷갈리게 해요

 


남제주의 문화유산이라는 책자에 올려져 있는 이 비의 내용은

"효자 현재옥은 천성이 어질고 행실이 착하였으며, 가난했지만 부모를 봉양하는 데 헌신적이었다.

어려운 처지에서 품팔이로 쌀과 고기를 얻게 되면 반드시 부모님의 구미에 맞게 음식을 하여 드렸으며,

부모의 상을 당하자 장례와 제사를 예로써 극진히 하였다.

이에 마을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어 보고하니 목사가 감동하여 완문(完文)을 만들어 주고 효행을 표창하였는데

통감부에서도 은전을 내리고 효성을 칭찬하였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전문가의 번역에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하겠지만 중요한 내용이 다 빠져 있는 것 같아서요. 


세워졌다는 날짜도 보면
융희후 임술 이라고 되어 있어요.
융희는 1910년에 끝났고 그 다음에 찾아온 임술년은 1922년이에요
단기 4255년이기도 하고  대정(大正) 11년이라는 거지요.
비문내용에 목사감동완문성급, 통감부은사라고 쓰여 있는데
제주목사는 1906년 6월 조종환을 마지막으로 끝이 납니다.
통감부는 1905년 일제가 을사조약(을사늑약)을 체결하고 1906년 2월에 세운 기관입니다.

총독부의 전신이지요. 합병 후 총독부로 됩니다.
1922년에 예전 일을 기억하고 비문을 세웠다 하더라도

목사가 감동해서 완문을 주고

그 걸 위로 보고해서 통감부에서 은전을 내릴 수가 없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통감부에서 은전을 내렸다 한다해도

그것을 감격해서 쓴 사람이 대정연호를 않쓰고

대한제국을 추모하는 뜻에서 융희 후 언제라고 쓴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적당히 읽고 넘어가기에는...

 

참으로 애틋한 내용입니다.


못먹고 못입고 못배운데다 부모 특히 어머니는 눈이 않보이는 병을 가져서 약을 구해 먹여야만 자식을 겨우 알아보고

주방은 텅텅비어 여기저기 날품팔이로 아주 어렵게 한되정도의 쌀과 고기몇점을 구해 (辛得승미점육) 부모를 먹여살려야 했고

게다가 부모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경우에까지 이르렀네요(及遭부모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례를 예법에 맞추어 했다는 아주 갸륵한 분인데...

 

읽어주고 눈물흘려주려해도
비를 세운시기도 애매하고,

은사를 받았다는 시기도 애매하고,

그리고 이 비석의 주인공이 어디현씨고 어디살던 누구의 자식인지, 전혀 알수 없는 비석이 되었는가?

 

그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非夫人之爲慟而誰爲? (이사람을 위해 애통해 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애통해 할것인가?)

 

 

부근에서 산방산을 두어 번 더 바라보고 

 

덕수리 마을안으로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