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제주의 마을

대정읍 무릉리

하늘타리. 2010. 10. 7. 14:58

 

묻노니, 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
웃을 뿐, 답은 않고 마음이 한가롭네.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
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네.

 

問爾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이백의 산중문답에서...

 

晉나라 때 武陵 지방의 한 어부가 배를 저어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핀 수원지로 올라가 굴속에서 秦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온 사람들을 만났는데,

너무 너무 살기 좋아 그곳에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려 했는데...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더라하는  陶淵明의 桃花源記에서 모티브를 따서 지은 시입니다.


무릉에 왔으니 한번 읊조려 보고...

 

 

이곳 무릉마을은 도원마을보다 뒤에 생겼지요.

 

1575년 (宣祖 8년)에 지금의 신도지경인 屯浦里에서 枸木里라는 이름으로 分鄕했다고 합니다.
그 후 1654년 (효종5년)에 屯浦里를 挑源里로 개칭하자 이곳 마을도 부락명을 고치자는 의견이 대두되어

옛 중국고사에 나오는 仙境處인 武陵桃源의 머리글자를 따서 武陵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설촌 당시 제일 먼저 입주한 곳이라 하는  앞논물지역입니다.

 

방사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허한 곳을 막아 액운을 없애고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그 옛날 언젠가 세운것일텐데

붕괴되어 흔적만 남아있던 것을 1997년에 보수하였다 합니다.
잡석을 이용하여 원뿔형, 사다리꼴 등으로 쌓아 올린 탑으로

위쪽에는 '새 모양의 돌' '사람형태의 석상' '꼭대기에 나무새가 있는 장대'등 여러 가지 형태를 세우는데

이곳은 사람의 머리형상으로 4기가 세워져 있습니다.

 

 

 

 

 

 

 

 

 

 

 

 

 

 
방사탑 네기를 하나하나 둘러보고....


문달복 문달민의 정려비가 있는 곳입니다.

 


소화 13년(1938년)에 세워진 비석의 내용에 따르면
문달민은 철종2년(1851년) 아버지가 신병이 나서 갑자기 위급하여지자

자귀로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고 입에 넣었더니 사경에 이르렀던 생명이 소생되어 전과 같이 건강을 찾고 천수를 누렸으므로

세인들의 감동을 자아내었다고 되어 있고
그 사촌 형제인 문달복은  어머니가 병이 나서 사경에 이르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 먹였더니 살아나게 되었다.

서기1854년(철종5) 제주목사가 특별히 부역을 면제하여 표창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두 사촌형제의 정려를 나서면서 그 옆 큰길가 한쪽에 세워져 있는 이도종목사 순교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찾아봅니다.


4.3당시 대정읍 일대와 화순지역 목회중 이곳에서  재산무장대의 습격으로 돌아가신 분이지요.

개신교 제주선교의 최초순교자라 하여  추사적거지 부근 대정교회안에 순교비가 있습니다. 

 

 

좌기동 왕갱이 동산입니다.

 

 


예전에는 사기수동이라 불렸던 곳이지요.
뱀이 머리를 들고 있는 형태의 지형이라는 뜻이었답니다.
뜻이 않좋아서인지 이름이 않좋아서 인지는 모르지만 어느시기에 좌기동이라고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수림안에 있는 왕갱이 동산을 둘러보고

 

터벅터벅 걸어서 구시흘못으로 갑니다.


안내판을 한번 보시지요.

 

마름이 물위를 가득 덮고 있는 못주위를 한바퀴 돌아보겠습니다.

 

 

 

 

 

 

 

 

 

 

 

모동장으로 갑니다.


기록에 의하면 官用牧場중 한 형태인 毛洞場은

서장(西場. 신도리경), 중장(中場. 무릉리경), 남장(南場. 영락리경) 이렇게 3장으로 나눠 운용하였으며 

마우감(馬牛監) 각 1인, 군두(群頭) 1인, 목자(牧子) 18명이었으며 원래는 우마(牛馬)를 함께 방목하고 감목(監牧)도 따로 있었는데,

그 후 말이 점점 줄어서 무릉리경에서 까만 소(黑牛)와 말을 길러서

말은 軍馬로 사용하였고 까만 소는 肉用으로 조정에 進上하였다고 합니다.

 

축일본향 건드리당입니다.

 

 

 

 

마을의 특성에 맞게 축산을 담당하는 축일본향 하르방과 할망을 모시는데
특이하게도 메인십방이었던 두 분을 추가하여 4위를 모신다 합니다. 

 

 

 

 

 


무릉리 평지동 향사입니다.


무릉리에는 향사가 1리와 2리에 각각 한곳씩 두 곳이 있습니다. 


안성리에서 1932년에 조선태종 16년부터 고종 32년까지 대정현청객사롤 사용하던 건물을 매각할 때 무릉리에서 그 건물을 사서
반반씩 이설하여 1,2동 향사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평지동 향사는 처음 좌기동 지역으로 이설되었다가

무릉국민학교 경내로 이설 교실로 쓰였다가 마을 공회당자리였던 이 자리로 와서
당시 남제주군 지원을 받아 마을 경로당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대들보는 자배나무이고 추녀목은 조록나무 서까래는 황송이라 합니다. 


1954년 개교 1955년에 무릉초등학교와 통합된 무릉중학교 옛 자리입니다.

  

 

 


졸업생들의 사랑과 추억은 영원할 거라 생각하며 무릉리를 떠납니다.

Schubert
Symphony No. 5 in B flat major, D. 485

2 Andante con moto  

1 Allegro 
3 Menuetto: Allegro molto 
4 Allegro vivace 

Kölner Rundfunk-Sinfonieorchester
Gunter Wand, c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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