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우리강 우리산

청주 신항서원

하늘타리. 2010. 6. 16. 08:52

 

청주상당산을 가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어제 우암산을 넘어온 길을 포함하여 오르는 길이 여러갈래 있습니다만

오늘은 김수녕양궁장을 지나 낙가산, 것대산, 상봉재를 거쳐서 가려고 합니다.
김수녕양궁장을 가기전에 부근 용정동 이정골에 있는 신항서원과 

선돌골 마을입구에 있는 순치명석불입상을 둘러 본 다음
낙가산 보살사로 갔다가 낙가산을 다시 오르려 합니다.

 

산항서원 표지석

 
길따라 터벅터벅.... 이정골마을

 

 

신항서원측문 입구 


신항서원입구에서본 상봉재


담넘어로 강당인 계개당을 기웃거립니다.

 

측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왔습니다.

 정문인 외삼문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외삼문과 민가건물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적비와 공적비 

 

 

莘巷書院廟庭碑 

송시열이 글을 짓고 현감 조형기가 글씨를 쓰고 김수환이라는 분이 새겨 숙종 11년(1685년)에 세운 것입니다. 

 이 신항서원은 조선 선조 3년(1570)에 ‘유정서원’이란 이름으로 세워졌는데 현종 원년(1660)에 나라에서 ‘신항’이라는 이름과 함께

 扁額, 서적,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입니다.

 

 

한때 그 위세가 대단하였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고종 8년(1871)에 폐쇄되었다가

1957년 복원하였고, 1987년 새롭게 보수하였다 합니다.

강당으로 쓰이는 계개당입니다.

 

교육장소겸 제관들의 숙소로 사용된 곳이지요.

 

강당을 돌아 내삼문인 숭의문으로 가는 돌길입니다.

 

 


빙둘러 길을 낸것에는 여러가지 의의가 있겠지만
보기에는 참 정감있어 보입니다.


숭의문을 지나니 사우가 나옵니다.

 

 구현사

 


지방의 선현들을 봉향하고 자제들의 강학을 장려하던 곳으로

이이(李珥), 이색(李穡), 경연(慶延), 박훈(朴薰), 김정(金淨), 송인수(宋麟壽), 한충(韓忠), 송상현(宋象賢), 이득윤(李得胤)의 9현을

매년 3월과 9월 두 차례 봄·가을에 제사지낸다고 합니다.
모셔진 분들에 대해 조금 자세히 설명하면

선조 3년(1570년) 이 고장(청주) 士林, 모계(慕溪) 조강(趙綱),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 진사(進士) 변경수(卞景壽) 등이 함께 의논하여

불이재(不易齋) 김계생(金繼生)을 창건(創建)의 주된 임무인  도유사(都有司)로 삼아 이곳 有定谷에 창건하여

조선 세조 - 성종 때의 하늘이 나은 효자(孝子)라 일컫던 경연(慶延),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이며 정치가 박훈(朴薰), 

중종 때의 학자이며 정치가인 김정(金淨),  인종 때 학식이 깊고 대사헌(大司憲)을 지냈으나 무고로 사사된 송인수(宋麟壽) 네 분을 모셨답니다.

그러다 인조 20년(1642년)에 서원을 재건하면서 한충(韓忠)을 추향했고,

효종 1년(1650년)에 임진왜란 때 동래(東來)부사(府使)로 충신 열사의 기개를 굽히지 않아 적장을 감복케 한 송상현(宋象賢)과

광해 - 인조 때 학자 이득윤(李得胤)을 추향하고

또 효종 7년(1656년)에는 청주 목사로 부임하여 '서원향약'을 만들어 선정을 폈던 대유학자 이이(李珥),

고려 말 대유학자이며 충신이며 청주에 유배 되었던 이색(李穡)을 추향하여 이렇게 9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나름의 최선의 예의를 표하고
돌아내려옵니다.

 

외삼문밖으로 돌아나와서
안내문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고 답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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