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절오백 당오백

제주의 신당 - 애월읍 상가리

하늘타리. 2010. 6. 26. 08:34

문화유산답사회 작은 항해자 문원종님의 자료에 6월 13일 답사시의 사진을 담았습니다.

 

상가리 큰신머들 새당 하르방당

 

모시는 신 : 산신백관, 을서·병서또, 세제동공, 초립동이

 

애월읍 하가리 「고내촌」이라는 가게 옆 고내오름 입구에서 진주강씨묘역 표석 2개가 있는 길로 70m 정도 올라가면 오른쪽 흙길이 나타난다.

곧 작은레이더가 보인다.

30m 전방에 큰돌이 가로놓인 길로 들어서서 100m 정도 숲길로 쭉 올라가면 오른편에 보이는 큰 바위 동쪽이 당이다.

올레15코스 「하르방당」이라는 표시가 설치되어 있다. (고영철의 역사교실 참조)

 

새당을 갈때는 지를 세 군데 묻는다. 산신과 초립동이, 을서·병서·서제동궁 몫이다.

을서와 병서는 고려 말의 장수신이며, 서제동궁은 천연두(홍역)의 신이다. 자연 암반지형을 당 경계 삼았다.

자연지형의 궤가 있고 그 위에 모람이 덮여 있다. 그 앞의 먹구슬나무에 지전, 물색, 명주실이 걸려있다.

하르방당이지만 조각의 물색이 걸려있는 이유는 이신이 사냥을 하는 남신이기에 걸수 있는것이다.

 

 

 

 

 

 

 

 

 

 당에서 내려와 고내오름입구 물통에 있는 물양귀비 등등

 

 

 

 

 

 

 옛날 초록동이가 간곤하게 사는디, 하로는 산에 골체 조는 정동줄을 걷으레 갔단 징심밥 먹엄더니,

산신백관이“너 먹는 거 뭐냐?” 호니,“좋지 못 한 수세범벅입네다.” 호난“나를 조꼼 주민 먹어보겠다.:”호연 드리니,

산신백관 잡수고,“맛이 좋니, 너의 사는 인간이 가민 식을 먹을 수가 싯느냐?”호연,

“좋은 음식은 먹기가 어렵습네다마는, 이런 음식은 먹기가 요절헙네다.”경허난, 그 어루신이 오란, 고내오름 큰신머들로 좌정하였단, 그

 누게가 나쁜 음식이나 존 음식이나 잡숩셍 호는 말이 읍서,

하롯날은 백관님이 초록동일 불러서,“아! 너의 고단 가민 이런다 허더니 무 소식이 엇다.”

초록동이가 말을 허되,“암만 신넨들 가만이 앚아시민 누게라 뭐 잡숩셍 홉네까? 무쇠쌀에 무쇠활에 이 ?을 백성들에 혼대썩 쏘아봅서,

그 자손에 빙이 나고 모든 불펜이 나민 우찬헙네다.”

이젠 산신백관이 초록동이 말대로 하니, 그제사 우찬홈이 났습네다.

그영허난, 하루는, 을서님광 뱅서님이,“산신백관님이 좋은 디 좌정했다”하니 강 보겐, 하연 구경차로 가고 보니

그 장소가 하두 마심에 들고 쟁길터도 좋아지고 허난 산신백관님 보고,“나를 입참시겨 줍서.”허난,

앞으로 입참을 시켜 주고, 서저동궁이 넘어가다가 소식 들언, 또 인칙차록 좋댄 허연 간 보난 아닐카 좋아지니,“나를 입참시켜 줍서.”허니

이번엔 서으로 입참을 시켜, 그영허연 이 당엔 을서님, 병서님, 서저동궁이 따로따로 좌정하니

자손들이 이 당에 가젱 허민 메도 잔도 지물도 한기에 올릴지라도

그 때 입참시긴 신천님을 거느리곡 초록동이도 산신백관님을 인도시기난 이 지금도 거느려줍네다.

옛날엔 이 당 앞으론 몰탕 가당은 몰발 절어부난 하매허여사 지나가곡 하였수다.

돗괴기 먹은 자손은 이 당에 가지 못 허는 맑고 밁은 조상이우다.

제일 : 1월 14일, 7월 14일  (애월면 하가리 여무 60세 장선아님 : 무가본풀이사전 597-598쪽)

 


 

상·하가리 본향 오당빌레 할망당

 

모시는 신 : 송씨할망 일곱아기 단마실청
 
오당빌레 쉼터 왼쪽 길을 따라 들어가면 길 끝에 당이 있다.
현재 오당빌레 할망당은 새로이 정비를 하였다. 그러나 이전의 모습과 아주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있다.

신목이었던 팽나무는 없어 졌으며 당담도 높게 쌓아 올려 위암감을 주는 듯하다.

 

 

 

 

 

<본풀이>
웃손당은 금백주 셋손당은 세멩주 알손당은 소천국.

오당할망은 손당으로 내하여 온 송씨할망 일곱애기 단마을청을 거느려, 오당빌레 천년폭낭 만년폭낭 알로 좌정한 토지관 한집님,

빙도 읏게 하여 줍서, 착그른 날로 상하가리 단궐들이 메 한기, 잔 한잔으로 위로?는 한집이우다.

 제일 : 짝 그른 날. (애월면 하가리 여무 60세 장선아님)

 

오당빌레 만년폭낭 알로 점주한 송씨부인 일뢰한집.

이 당에는 가상이로(바다의 상어) 펜식해서 문씨 무녀가 시초하고 정월 초하를날 제를 받읍네다. 제일 : 1월 1일. (애월면 하귀리 남무 43세 강종규님)

 

웃손당은 금백조 셋손당은 세명조 알손당은 소로소천 아들애기 예레돕 똘애기 쑤물요돕 손지방상 일은요돕

헡어지민 각서본향 매와지민 주문천신 만주백관, 제신중에 송씨할망 오당빌레 천년폭 만년폭낭 알로 좌정허여 자손들에 서천미련 받읍네다.

제일 : 자손에 생기 맞는 날. (애월면 상가리 남무 40세 고병옥님 : 무가본풀이사전 604-605쪽)

 

오당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나이든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할머니는 당에 갈 제물을 준비한 뒤에 잠깐 볼 일이 있어 외출을 했다.

그 틈에 할아버지는 그 음식들을 모두 먹어 버렸다. 돌아온 할머니는 무척 화가 났다.
"당에 드릴 제물을 먹어 버렸으니 그 벌로 바가지만한 종기나 돋아 버렸으면…."
하는 할머니의 말대로 할아버지 볼기에 주먹만한 종기가 났다. 할머니는 고소해 하였다.

부아가 잔뜩 난 할아버지는 칼을 들고 당을 찾아갔다.

당 안에 들어선 할아버지는 칼로 자기의 종기를 찔러 고름을 제단에다 뿌리며
"내 살까지 먹고 잘 살아 보소."
한 맺힌 말 한 마디를 남기고 자결해 버렸다.

할아버지가 자결했다는 말을 듣고 할머니도 할아버지 없이 어찌 사느냐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는 후에 한 무당이 노인이 죽은 당을 할으방당으로, 할머니가 죽은 곳을 할망당으로 모셔야 한다고 주장했고

동네 사람들도 그에 호응했다.(제주투데이 2004년 8월 12일) (고영철의 역사교실)

 

추가.

마을어르신 중 일부는 오당이라는 이름에 주목하여서인지

옛날 말을 기르던 말테우리들이 목축신을 모시던 당이 었다 함

개인적으로도 그 의견에 공감하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당궐들이 일반아낙으로 바뀌면서 일뤠당으로 바뀐 듯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