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 운동
관리들의 탐학에 시달리던 민중의 무장봉기로 일어난 동학농민운동.
1년 동안에 걸쳐 40만여명의 희생자를 낸 채 비극적으로 끝이 납니다.
후세사가들은 말하길
운동 그 자체는 실패했지만
근대적 민주주의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회혁명을 꿈꾸었던 이들의 개혁의지는 이후의 정치에 큰 영향을 끼쳐
위정자의 반성과 각성을 촉구하여 甲午改革의 정치적 혁신을 가져왔다고 평을 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농민군의 봉기는 청일전쟁이 터지는 기폭제가 되어 그들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조선에서 일본의 패권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라는 평도 있지요.
하지만....................
앉으면 죽산이요 서면 백산이라는 말처럼
적수공원에 죽창하나로 일어선 농민군이
왜군의 지원을 받은 내나라 조정군대에 于金峙에서 결정적 패배를 당하여
도망가다 몰살당한 농민군의 시체가 쌓여서 송장이 쌓여 있는 논배미, 일명 송장배미라 불리우는 이곳 용못에서는
그 원인과 경과 그리고 그 결과를 따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슬플뿐입니다.
지금은 연꽃이 피는 연못으로 바뀌었지만
연잎을 헤치고 나오는 수초들이
차라리 그들의 절규로 들립니다.
비오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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