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연입니다.
용이 살고 있다하여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던 곳
양쪽에 높이 7~8미터의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그안이 넓고 아늑하여 달밤에 배를 띄우고 놀면 별천지를 이룬다하여 용연야범으로 유명한곳.
翠屛潭이라고도 하지요
동한두기에서 서한두기 쪽으로 구름다리를 건넙니다.
사랑의 자물쇠...
한번 맺어진 인연 영원히 풀리지 말길 바랍니다...
용연구름다리에서 산책로를 따라가다 계단을 내려가면 당이 좁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두기 본향 가시락당
한두기마을 본향이라서 꽤 많은 분이 자리잡고 계신데 비좁으실 것 같습니다.
용해국 대부인, 여리불도, 제석할망, 삼덕조왕 이렇게 여신 4분이 합좌해 계십니다.
이 당의 본향당신은 생산, 물고, 호적을 차지한 신이기도 하지만 해신으로 일만어부, 일만잠수를 차지하여 어로의 풍등을 가져온다 합니다.
그래서 바다에 다니시는 분들이 요왕제를 드리고 난후 이곳에 와서 바다의 안녕을 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 마을은 직접 뱃일을 하시는 게 아니고 고기를 파는 횟집이 많아지다 보니
찾아오시는 당궐이 드문가 봅니다.
궤앞 제단에는 촛농이 흐른 흔적이 있지만
궤위 사철나무 가지에 걸린 명줄이 꽤 오래되어 보입니다.
그리고 궤 뒷쪽 오른쪽에 보이는 팽나무가 신목이지만 육지사람이 목을 맨후 굿을 하여 액을 막았으나
그 뒤에도 두번정도 그런일이 있고 난후 고사하기 시작했다합니다.
다시 용연을 건너와 동굴쪽으로 내려가 봅니다.
자연용암동굴의 현상을 보존하기 위해 막아 놨읍니다.
창살틈새에 렌즈를 데고 꾹꾹
동굴앞에서 위로
아래로
말그대로 초록이 바위와 어울려 취병담이 됩니다.
과거 이 부근 주민들의 식수 였던 머구낭물과 통물(용수물)입니다.
바닷가쪽에 예전에 중물이라고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가 궁금합니다.
사대부고에 왔습니다.
온김에 돌배의 전설이 깃든 지석묘를 둘러 봅니다.
통상 청동기시대부터 만들어 졌다하는데 제주도는 조금 더 늦게 만들어 졌다 합니다.
또 모두 현무암을 이용했기 때문에 육지의 고인돌에 비해서는 형태가 많이 특이합니다.
다끄내 본향 궁당입니다.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야외매점앞에서 버덩을 돌아가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앞에 안내판이 있읍니디만 나무가 우거져 보이질 않네요.
원래 한내가에 있었던 내왓당신의 일부를 모셔 왔는데, 모셔있는 신은 상자대왕, 중전대부인, 정절상군농 이렇게 세분입니다.
본풀이에 따르면 중전대부인은 상자대왕의 큰부인이고, 정절상군농은 그 작은 부인입니다.
작은 부인 정절상군농이 임신했을때 돼지고기를 먹자 부정하다고 내쫒았답니다.
중전대부인은 궁당안에 좌정하여 산육신의 일을 맡아 쌀로 만든 음식을 받아먹고 정절상농군은 궁당의 바깥에 좌정하여 돼지고기를 받아먹도록 했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단 동쪽에 궤가 세개 있고 또 남쪽에 하나 더 있습니다.
다끄내 해신당입니다.
일만 어부와 일만 잠수를 차지하신 신인 용왕과 선왕 두분이 좌정해 계십니다.
한때는 영등굿을 여기서 했습니다.
마을이 쇠락하면서 칠머리당으로 영등굿을 보냈고 선주들의 개인적인 비념장소로 변해 있습니다.
단기 4294년 신축 3월 3일에 만들어진 해신지위라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비행장 확장으로 없어진 이 동네, 다끄내마을을 修根洞이라 했습니다.
옛날에 포구를 만들려고 등짐으로 돌을 지고 나르며 포구를 닦았답니다.
그래서 이루어진 것이 닦은개이고 이 닦은개를 중심으로 마을이 이루어 졌기 때문에 다끄내라고 하던 마을인데
마을이름을 한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훈을 빌어 닦을 수, 음을 빌어 근, 수근동이되었지요.
이렇듯 제주의 마을이름 다수가 이두를 모르면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포구 끝에 도대불이 있습니다.
원래 1957년과 그 이후에 세운 다른형태의 도대불이 두기(? 더 있었나?) 있었는데 2004년 포구를 확장하며 헐어버렸지요.
2007년에 옛모습과 전혀 닮지 않은 방사탑모양으로 복원 아니 새로 새웠습니다.
다끄내 물입니다.
섯물이라고 안내판에 쓰여 있는데
섯물은 여기보다 더 서쪽에 있습니다.
그래도 한번 둘러 보시지요.
언젠가 다시 돌아올것을 기약하며 유적비를 세운답니다.
어영마을의 연대와 마을 표지석입니다.
탐라지초본에는 수근연대라고 나오지요.
동쪽으로 별도연대와 수신하고 서쪽으로 조부연대와 연락한다고 되어 있는데
별도연대와 조부연대가 여기서 안보이네요.
아마도 별도연대와는 사라봉수를 거쳐 조부연대와는 도두봉수를 거쳐 연락했나봅니다.
연딧당입니다.
이곳 어영연딧당은 어영중산처라고도 합니다.
이 연대앞에 바닷쪽 잡목수림에 당이 여럿 군집하고 있었습니다.
정드르사람이 가지갈라온 궁당을 모신 곳도 있고, 도두리 사람이 가지갈라온 오름허릿당이나 몰레물당을 모신데도 있습니다.
여러당들의 중산처이었던 곳입니다.
가지갈라온 당, 그러니까 중산하여 온 당들이 한곳에 모여있다 해서 중산처라 하고 다수의 여신이 합좌해 있다고 표현 합니다.
오늘은 한곳에서만 낡은 명줄을 찾았습니다.
이제는 다니는 사람이 드문가 봅니다.
이 앞 빌레에서 요왕제를 지내는 분들이 간혹 있다합니다.
주변 빌레들을 둘러 봅니다.
저쪽으로 바다쪽으로 돌출해서 전망대를 만든 곳이 보이지요.
전망대까지 가는 데크를 만든자리가 바로 다끄내 섯물(남탕지역)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위로 데크를 연결하여 전망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섯물을 뭉개지는 않았네요
전망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빙돌아서 데크 밑으로 해서 물통으로 가보겠습니다.
꼭 이래야 하는 건지...뭉개지 않아서 고맙다해야 하는 건지...
누군가의 비념..
소원성취하세요..
물통옆에 넋놓고 앉아
멈추어 있는 바다를 바라봅니다.
섯물 여탕지역입니다.
빙글 빙글 돌면서 꾹꾹꾹
사수동 몰래물쪽으로 넘어가다
공연히 무언가 아쉬워 뒤 돌아봅니다.
Elgar, La Capriccieuse, op.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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