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간드락마을이라고 아시나요?
작은 물체가 큰물체에 끈이나 그런것에 매달려 느리게 자꾸 흔들리는 모양을 경기북부 옛말로 간드락거린다라고 표현하지요.
간드락마을의 뜻이 그건 아니겠지만
며칠전 제가 이동네에서 왔다리 갔다리...
무언가에 매달린 추처럼 갔던곳을 다시 오고, 왔던 곳을 다시가고 했답니다.
간드락소극장 부근을 지나가는 길에
작년 입춘무렵에 이극장에서 오영순님이 펼친 삼승할망이야기 굿판이 생각나고
생각은 꼬리를 물고
그래 이부근에 간드락 할망당이 있었지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한번 들렀다가자하고 마을회관부근에 차를 세우고
엉뚱한 운전학원 옆 동산만 헤매다 다시 돌아오고
기억속의 원점에서 또 다시 가보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도 물어도
여기 간드락마을에는 그런 곳 없다는 소리만을 듣고
결국 못찾고 돌아왔습니다.
며칠뒤에 시간을 내어 다시 갔습니다.
똑같은 지점을 똑같이 헤매다
문득 떠오른 생각
영지학교앞으로 큰길이 나면서
지금 이도지구 공사하는데는 이도2동이 되었지...
그 큰길이 나기전에는 마을 에서 그 쪽까지 소로길이 있었고
그 길을 따라 가면 배수지가 나오고
배수지옆 산길을 걸어 가면 오른쪽에 할망당, 왼쪽에 하르방당이 있었다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택지공사가 한창인 현장으로 갑니다.
어디가 어딘지 찾기 어려웠지만
옛 배수지를 찾았습니다.
공사장 한복판에 배수지만 덩그머니 남아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가 간드락배수지인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둘레를 한바퀴돌다가
폐자재있는 곳에서 잡초에 뒤덮이기전 배수지명판을 찾았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주변지형을 살피러 배수지위로 올라가 360방향을 돌아 봅니다.
주변에 당이 있을 만한 곳이 전혀 없습니다.
저쪽 멀리 뭔가 그럴듯한 곳이 보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천선과, 멀구슬나무, 꽝꽝나무등이 어우러져 있고
그 가지에 명줄이 걸려있습니다.
다라쿳당에서 가지갈라온 두분의 여신이 합좌해 계신
산육을 돌보아 주시고 아이들 병을 고쳐주시던
간드락마을 본향입니다만....
몇년동안 아무도 치성드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단도 않보이고 제단 오른쪽에 있던 궤도 않보이고
본풀이만 외롭게 허공을 떠돕니다.
뒷부분입니다.
택지공사하면서 밀어버리려다
동티날까 두려워 멈춘 것 같습니다.
하르방당과의 사이가 중장비에 의해 깊히 파여 있습니다.
하르방당쪽으로 돌아봅니다.
예전에는 이 바위앞 덩굴에 지전 물색을 걸어두었는데
바위앞부분을 다 밀어 버렸습니다.
하르방의 신명은 큰도안전 산신또입니다.
그리고 웃당에 좌정해 있습니다.
송당신의 여덟번째라고도 하며 농경과 목축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큰도라는 이름때문인지 그때나 지금이나 바위앞에는 깨어진 그릇이 즐비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사기조각들이 굉장히 오래되었다는 것이지요..
폐당 직전입니다.
당은 다니는 당궐이 없으면 당연히 폐당이 되겠지요.
어쩌면 그것이 순리이고요.
그러고 보니 참으로 오랜기간 평안할 날이 없었네요.
유교이념에 의해..
기독교에 의해...
일제의 민족문화말살로..
또 새마을 운동으로...
그래도 믿고 의지해주는 민초들의 힘으로 오늘까지 이어 왔지만
이제는 믿고 의지해주는 이들도 드문데다 진짜 강적을 만났습니다..
바로 경제논리
바로 개발이 곧 돈이다라는 대명제하에 그 개발지역 인근의 당들은 존치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런 곳들이 우리 역사속의 힘없는 민초들..
그중에서도 정말 어려운 시간을 보낸 부인네들의
한과 슬픔과 위안이 깃들어 있는 곳이 아니었을까요.
아무도 살지않는 구중궁궐을 보존하여 힘있는 자들, 권세를 누린자들을 흠모하는 것보다
이러한 소박한 당을 보존하여
간난신고의 삶을 살아온
우리 어머니와 누이들의 삶을 위로해 주는 것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에 또 하루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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