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등바다구역을 지나 두모지역입니다.
벤자리황..
적당한 크기의 기암괴석이 발길을 잡습니다
내혼자 여러가지 이름을 붙이게 하는 군요
빙빙돌면서 혼자 놀고 있다보니
조~쪽에서 두모리 연대가 나를 보고 있네요
두모리연대로 질러 가는 밭담올레길..
두모리 연대입니다
제주의 방어시설인 3성 9진 25봉수 38연대중 하나이지요
아 방어시설에 환해장성도 빼놓으면 않되는구나..
하여간 여기에 봉꾼들이 지키고 있다가 외선이 나타나면 봉수를 올려 인접연대로 서로 연락하는 기능을 하던곳입니다.
왼쪽에는 용수리의 우두연대 오른쪽에는 금등리의 대포연대가 있었다 하는데
좌우 다 멸실되었고
이곳은 복원이 되어 있습니다.
복원전에는 연대위에 도대불이 함께 있었다 합니다.
기능상 이해가 않가지요
그럼 봉수피우는 자리에 도대불이 있었다는 건데
연대의 윗부분은 어등대를 시설하면서 헐렸다하는 기록을 보면
연대위에 도대불이 있었다는 표현을 할게 아니라
연대가 필요가 없어진 1920년대 연대윗부분을 헐어서 어등대를 설치하여 도대불로 사용하였다라는 게 정확한 것 아닐까요?
봉수위로 올라왔습니다.
얼마전에 봉수피우는 것을 재연했었나 봅니다.
포구와 도대불이 보입니다.
연대에서 본 도대불
연대옆에 있는
축항에 기여도가 많으신 어느분에 대한 기념비 입니다.
축항방랑한 위대공로를 천추불망하겠답니다
복원한 도대불입니다.
대한제국당시 일본인 기사를 초청하여 만들기 시작한 등대는
제주도에서는 1906년 우도등대, 1915년 마라도등대, 1916년 산지등대 순으로 세워지지요.
등대의 인도로 안전하게 항해하는 것을 본 제주도민들은
그렇지 않아도 암석으로 가득한 포구에 배들이 들락거리며 많은 위험을 감수하던 것을 감안하여
마을자체적으로 등대를 만든것이 도대불일겁니다.
뱃일나간 지아비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다리는 아낙들이 물고기기름, 솔칵, 석유등을 모았을 겁니다.
등대의 일본말이 도다이입니다.
그래서 도다이불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요?
연대위에 있었다면
연대를 복원할 때 연대위에 복원하면 될 것을 따로 띄어 놓은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을어르신들조차 이형태는 아니었다 하니
복원이라는 말이 무색합니다.
도대불위에 불 피우는 자리입니다.
도대불에서 본 내수여코지끝에 있는 등대입니다.
내수여 방파제에서 본 코지개로 밀려드는 파도
물 뒤집어 쓸 뻔 해서 서둘러 빠꾸
도대불 옆 정자로 밀려드는 여울..
두모리포구 (코지개)
두모리포구 내에 있는 해신당
예전에는 지금 어촌계식당자리인 코지개머리에 돈지당이라하여 용왕신을 모셨으나
항을 개축하면서 그당시엔 비싼 시멘트를 이용하여 이쪽으로 당을 모셨습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꽤나 답답하시겠지만
그 비싼 시멘트를 꼼꼼히 바른 정성이 느껴집니다.
해신당에서 본 연대
방충못
방충못 앞에 전복양식장에서 쓰는 양식도구입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고양이를 만나러 마을 안쪽으로 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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