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림산방은 세계에서 유일한 일가직계 4대의 화맥이 200여년동안 이어지고 있는 대화맥의 산실이다
조선조 후기 남종화의 거봉이였던 소치(小痴)허련(許鍊) 선생의 화실 당호로 소허암 또는 운림각 이라고 불렀다
소치선생은 진도읍 쌍정리에서 출생하여 초명은 허유(許維)이고 소치라는 아호는 스승인 秋史선생께서 내려주었다
소치선생은 詩와 文을 동다송의 저자 초의대선사로부터 익히고 세한도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로 부터 書와 畵를 전수받았다
1857년 49세에 귀향하여 이곳에 운림산방을 세우고 소치선생의 나이 85세때인 1893년 생을 마감할때까지
소치 특유의 문기가 드높은 불후의 작품들을 남겼다
소치선생이 그림을 그리던 화실 건물과 그앞에 있는 운림지(雲林池)
운림지의 연꽃
소치 기념관
운림산방 화맥
초대 소치(小痴) 허련(許練) - ( 1808~1893 )
문인화를 중심으로 특유의 필치를 구사한 허련의 회화는 당대에도 추사 김정희로부터
'압록강 동쪽에 소치를 따를 만한 화가가 없다'거나
'소치 그림이 내 것보다 낫다'는 찬사를 들으면서 당시 화단을 풍미하였다
허련은 조선 말기 한국의 남종문인화의 발전에 기여하면서 이를 근대로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부춘산도 (富春山圖)
추경산수도 (秋景山水圖)
阮堂先生海天一笠像 山水圖 壽梅圖
운림각도 (雲林閣圖)
묵죽도 (墨竹圖)
매화도 (梅花圖)
2대 미산(米山) 허형(許瀅) - ( 1861~1938 )
허련의 네째인 막내로 태어난 허형은 어려서 천연두에 걸려 구사일생 하였고
뒤늦게 천부적인 그림 재주가 부친에게 드러나 장형 허은의 미산이라는 아호를 물려받아
2대의 화업을 계승하였으나 격동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고난스런 화업의 길을 걸어왔다
미산의 작품들은 묵모란. 묵송. 묵죽. 묵매등 주로 묵화풍에서 두드러지며
그중에서도 묵모란과 묵매는 부친의 작품을 능가할 정도의 문기가 뛰어난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老梅圖 米點山水圖
3대 남농(南農) 허건(許楗) - ( 1908~1987 )
미산의 아들인 남농은 남종회화예술을 현대적 감각으로 승화시켜
남농특유의 '신 남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일구어낸 화가이다
고향의 산야. 해촌. 산사등의 향토적인 풍경들을 가문의 필법인 갈필법을 사용하여 많은 걸작들을 남겼으며
특히 거친선으로 빚어낸 소나무의 독특한 구성과 생동감 있는 강력한 필선은
어느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역작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강산보덕굴 (金剛山普德窟)
秋江釣魚 水連深竹
3대 임인(林人) 허림(許林) - ( 1917~1942 )
미산의 막내아들이며 남농의 친동생인 임인은 부친이 타계한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천단화학교에 다니면서 모든 물상을 점으로 표현하는 '토점화'라는 독창적인 화법을 일구어냈다
그러나 독학으로 이어진 유학생활의 과로로 26세의 나이에 요절하였으나
그의 한스러운 예술혼은 아들 林田을 통해 피어나고 있다
메추리
木浦萬戶洞所見 牧童
4대 임전(林田) 허문(許文) - ( 1941~ )
許文은 소치선생의 증손이며 요절한 천재화가 許林의 독자이다
생후 11개월에 부친을 잃고 7세때부터 백부인 南農 슬하에서 자랐으며 홍익대학 미술학부를 졸업하였다
그후 꾸준한 노력과 집념으로 가문의 갈필법을 연구하면서 林田특유의 이론을 접목시켜
수묵의 농담을 이용하여 화면전체를 동적으로 전개시키는 '운무산수화'라는 독창적인 화풍을 일구어 냈다
이로써 林田은 애환으로 얼룩진 부친 林人의 예술혼을 받들고
운림산방 4대의 화맥을 계승하였다
산운 (山雲)
나이아가라 폭포 飛瀑
소치 기념관에서 읽은 글
운림산방
전남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64
061) 543-0088
장사익거문고병창 -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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