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와 가꾼 아뜨리움/그림읽기

에곤 쉴레 2

하늘타리. 2009. 2. 25. 09:39

에곤 쉴레는 풍경화를 그려도 쉴레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저 휘청거리는 가는 선과 섬세한 묘사를 보세요.
이 조그만 도시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조그만 도시 2


 

왼쪽 위에 다리가 보입니다. 물색이 검정색이네요.
창문에 불이 켜진 집, 몇 집 안 되는 아주 늦은 밤 풍경이군요.

그런데 그림 아래 검은 색은 무얼 뜻하는 걸까요?
다리 아래 흐르는 물색으로 유추해 본다면 이 도시는 해변가나 강가에 있는 걸 겁니다.
강이라면 아주 넓은 강이겠네요.
도시가 조그맣다는 걸 강조하는 듯 하군요.

그림은 오래 볼수록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아니, 많은 이야기를 해 주지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들 굳이 집에 그림을 걸어두려고 하나 봅니다.

저는 아주 작은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통영이라는 도시이고, 항구도시입니다.
작은 운하 근처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에곤 쉴레가 그린 저 조그만, 물로 둘러싸인 도시가 낯설지 않습니다.
집 모양과 배치는 이곳과 너무 다르지만 물은 한가지네요.

물가에 살면 더 물이 더 많이 그립습니다.
우습지요?

 

 

에곤 쉴레의 자화상 두 점을 올립니다.

1911년과 1914년에 각각 그린 자화상입니다. 시간 순서대로 배치했습니다. 함께 소개하려던 1910년의 자화상은 첨부파일로 올립니다.

누드화인데다가 좀 기묘한 부분이 있습니다. 성기부분의 정체성이 모호합니다.

그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첨부파일로 올립니다. (티스토리에서는 첨부파일로 올려도 그냥 그림이 뜨네요. 어쩔 수 없죠. 그냥 보세요.)

다른 화가들에 비해 남성 누드를 많이 그린 에곤 쉴레. 에곤 쉴레의 성적 취향에 대해 정확히 몰라서 이 부분은 이렇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에곤 쉴레의 자화상은 여느 화가들의 자화상과 다른 점이 있다는 걸 한 눈에 눈치챌 수 있을 겁니다. 역동적이지요.

증명사진 찍는 포즈로 자신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자화상에 움직이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1890년에 태어난 에곤 쉴레. 아래 그림은 1911년 그림입니다. 그리고 첨부한 그림은 1910년 작품, 저 아래 있는 작품은 1914년. 20, 21, 24살에 그린 그림들이죠. 다분히 몽혼적인 그림들입니다.

왜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을까요? 이 아래 그림은 아주 어려보이는 얼굴입니다. 수염을 그려넣어 어려 보이는 모습을 커버하려고 했군요. 그러나 대단히 여성적인 인상입니다. 두번째 그림은 에곤 쉴레의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자신에게도 자신의 그림 세계를 투영시켰군요. 아니, 세계관 혹은 미술관이 확립된 시기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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