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글인지 모릅니다.
알려면야 금방 알수 있지만....
공감하고... 이글을 쓴이보다 더 용기가 없어서..
그리고 글을 쓰는데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 한탄 스러워 글과 그림을 옮깁니다
...하늘타리
S#1-슬픔을 견디는 힘은 어디에
오늘 6개월만에 방송을 펑크냈다. 내 잘못이라고 보기엔 문제가 있다. 평소에 10분도 안걸리는 버스 거리가 1시간이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고가 도로위로 내려 방송을 할 형편은 아니었기에, 더구나 원고도 출력해서 가지 않았다. 참 운 나쁜 하루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노량진 역에서 내려, 방송국으로 가는 길은 철저하게 교통 정체에 시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용산철거민 시위로 인한 혼잡인줄 몰랐다.
자세히 맥락을 집어가며 사건의 핵을 읽어봤다. 피해가 너무나도 크다. 6명이 사망을 했다. 정부차원에서 시민을 상대로 일종의 학살극을 벌인 셈이다. 다시 말한다. 이건 정부권력이 시민을 상대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한 것이라고 밖엔 할말이 없다.
저자 유종일은 경제학자 나름의 소신발언이 쏟아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박정희 시대의 관치-재벌-토건경제를 부활시키고 감세와 규제완화를 중심으로 한 공급중시 경제 성장정책을 적당히 뒤섞은 것이라고 일갈한다.
이 정권은 철저하게 지하의 벙커 아래서, 전시체제를 부르짖으며 일방통행의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을 보여주고 있다. 19일자로 권력 핵심 4인방에 대한 인사가 단행되었다. 탈 많던 강만수 재정기획부 장관이 사임했지만, 성장중심 경제정책은 사회적 분배나 경제 민주화를 배제한 채, 일방적인 코드로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은 커녔다.
이번 용산 철거민 강제 진압에 의한 대형사고는 이미 그 운명을 내면에 담보하고 있던 사건이라고 해야 할까? 이 정권의 한계와 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 같다. 모든 것이 거꾸로 가는 정권이다. 세계 경제의 흐름은 사회적 분배와 정부의 적극적 개입, 감세철폐를 주장하고 있건만, 이 정권은 어디를 봐도, 세계적인 흐름에는 문을 닫고, 철저하게 자신의 잇속에 필요한 논리만을 재무장한다.
이창원_잊혀진 달동네_한지_60×42×45cm_2007
화가 이청원은 잊혀진 달동네를 테마로 작품을 만든다.
그의 시선은 항상 익명의 섬,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 얼기설기 맺혀 있는
집들의 형상, 그 속에서 체온과 인간의 윤리를 상실한 채, 숨통을 조이고
답답하게 살아가는 도시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다.
이창원_잊혀진 달동네_한지_93×36×107cm_2007
이창원은 인공 거주물 속에 자리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다.
인간이 사라진 도시는 인위적인 풍경일 뿐, 절대적인 지고의 가치, 순수, 지켜야 할
도리는 이제 자리 하지 못한다. 도시는 부자와 빈자의 두 분류로 구성된 장소의 개념이 될 뿐
단층의 판자집과 밀집된 공간, 그 미로같은 무질서는 도시적 익명성에 젖은
노동자의 삶이 용해된 공간일 뿐이다. 여기에 비해 하늘을 향해
치뻗은 마천루와 큐빅형태의 질서정연한 거리는
자본의 힘으로 규율된 현대의 풍경이다.
이창원_잊혀진 달동네_한지_122×36×40cm_2007
박정희 정권의 토공미학을 오늘에 되살려 도시의
외곽선을 깍고 재벌의 사병이 되어 거대한 마천루를 세우려는
정부는 도시 재개발로 자신의 입지와 삶의 터전을 잃은 자들을 철저하게 유린하고
그 목숨을 빼았았다. 도시의 노동자들은 다시 변방의 허름한 골방으로 내몰린다.
터전을 잃는 다는 것은, 기억을 잃는 다는 것이다. 인간이 한 공간을
점유하는 순간부터 얻어낸 모든 슬픔과 기쁨, 함께함의 기억을 말소하는 것이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도시 재개발이 수많은 프랑스
파리거리의 역사를 지웠듯, 정부는 철저하게 건설사의 입장만을 대변하며
도시 서민의 삶을 유린하고 짓밟았다. 오늘의 대학살은 이제부터 시작될 학살게임의
일부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다 해보게 된다.
이창원_잊혀진 달동네_한지_93×36×107cm_2007
이번 참사 후 한승수 총리의 발언은 바로
재벌을 비호하는 정부측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는 단지 깊은 유감을 느낄 뿐, 죽은 자들에 대한 일련의 사죄나
미안함은 차치한 지 오래인 것으로 보인다. 막다른 삶의 기로에 선 자의 저항을
시민의 안전 운운하며 폭도의 행동으로 프레임 하려는 비열한 언사를 선보였을 뿐이다.
불법 폭력 시위란 말을 여러번 했다. 유엔에서 조차도 강제철거를
인권 침해요소가 있다고 분명히 밝혔음에도, 이 정부는 세계적인 규율은 집어치우고
철저하게 건설사와 재벌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병집단이 되어버렸다.
서민들이 사는 아파트를 헐고, 중대형 아파트를 지어 이전의
기억을 지우려는 지금의 재개발 계획은 서민에 대한 청소작업과 다르지 않다.
이창원_도시유감_한지에 채색_200×120cm_2007
그들은 왜 서민들을 살해하지 못해 안달할까?
새롭게 중대형 아파트에 살게될 중산층의 꿈을 위해서라고 하기엔
지금 현 정권의 경제시스템은 기존의 중산층까지 서민으로 위치를 강등시키고
있기에 그들이 건축하는 재개발 아파트엔 과연 누가 살게 될지
그들의 프로파일이 궁금할 뿐이다.
정부에 의한 시민학살이 이제 그만 그치길 바랄 뿐이다.
이 비정의 도시를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내겐 유감일 뿐이다.
죽은 이들을 위해, 레퀴엠 하나 걸어놓지 못하는 부족한 나로서는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푸른 슬픔에 그저 고개 숙여 사죄의 마음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