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교수의 '그림 읽기 문화 읽기'
장승업 '닭과 맨드라미'/화조영모 10첩병풍 제4폭
부부는 암탉·수탉처럼
마음 변치말지니…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비단에 담채.148.5x35cm
옛 그림은 보지 않고 읽는다. 소재 하나에도 다 감춰둔 속뜻이 있다. 결국 그림 읽기는 문화 읽기다. 여러 소재들이 만나 빚어내는 의미 조합은 워낙 다양하다. 장승업의 '닭과 맨드라미'를 읽어본다.
수탉이 중앙에 섰고, 암탉이 무언가를 보고 내닫는다. 암탉의 시선을 따라 바위 틈새를 가만 보니 방아깨비 한 마리가 매달려 있다. 암탉의 서슬에 놀라 수탉의 시선도 같은 곳을 향했다. 구멍 숭숭 뚫린 괴석에는 아래부터 구절초, 안래홍(雁來紅), 맨드라미가 차례로 심어져 있다. 화면 오른쪽 하단엔 생뚱맞게 무와 순무가 잡초 사이에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그 바로 위에 세 갈래로 뻗은 바랭이 풀을 그렸다.
이 그림은 시경(詩經)을 알아야 제대로 읽힌다. 먼저 방아깨비. 시경 '종사(?斯)'편에 나온다. 종사는 방아깨비다. 알을 한 번에 99개씩 낳는다. 자손이 많기를 축원한 내용이다. 두 마리 닭은 금슬 좋은 부부다. 닭이 방아깨비를 잡으러 가니, 자식 많이 낳으라는 뜻이 된다. 아래쪽 무와 순무는 시경 '곡풍(谷風)'에 나온다. 한자로는 봉비( 菲)다. 부부의 변치 않는 사랑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부부 사랑 변치 말고 해로(偕老)하고, 자식 많이 낳으란 덕담을 이렇게 했다.
구절초는 다달이 마디가 하나씩 늘어나 9월 9일에 아홉 마디가 되는 풀이다. 단계에 따른 성장과 발전을 나타낸다. 가운데 안래홍은 기러기 올 때쯤 잎이 붉게 변하는 식물. 그래서 별명이 노래소(老來少)다. 나이 들어 더 젊어지라는 뜻, 이른바 노익장(老益壯)의 의미다. 맨드라미는 모양이 닭 벼슬 같대서 한자 이름이 계관화(鷄冠花)다. 수탉 벼슬 위에 또 벼슬을 얹었으니 관상가관(冠上加冠)이다. 벼슬길에서 승승장구하란 말씀. 으레 수탉 그림에는 맨드라미가 세트로 등장하는 것은 출세를 축원하는 뜻에서다. 바랭이 풀은 여기저기 자주 등장하는데 아직 의미를 모르겠다. 암탉의 발가락 모양과 비슷하다. 괴석이야 말할 것도 없이 장수(長壽)의 상징이다.
이제 정리해 볼까? 부부(암탉과 수탉) 마음 변치 말고(무와 순무), 자식 많이 낳아(방아깨비), 계속 발전해서(구절초), 승진하여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고(수탉과 맨드라미), 늙어서도 더욱 건강하시며(안래홍), 오래오래 장수하십시오(괴석). 대충 결혼 축하 선물로 그려주었음직한 내용이다. 정말 화가들이 이런 복잡한 의미를 다 알고 그렸을까? 물론이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