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와 가꾼 아뜨리움/그림읽기

Egon Schiele

하늘타리. 2008. 11. 29. 23:33

에곤쉴레 (Egon Schiele 1890~1918) 오스트리아

 

에곤 쉴레는 1890년 6월 12일 다뉴브 강변의 튤린에서 태어났다. 비엔나 근방에 있는
이 소도시의 역장이 쉴레의 아버지였다.




쉴레의 드로잉 감각은 일찍부터 현저하여, 그는 소년기의 대부분을 연필로그림 그리는 일로
보내었다. 1907년, 그의 드로잉을 당시 이름높던 선배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에
보일 기회가 주어졌다.




클림트는 소년의 비상한 재능을 알아보고 후원 했다. 클림트의 아르 누보 양식과
소재의 영향은 1909년까지의 쉴레의 작품에서 현저히 보인다.







  재판과정에서 판사는 쉴레의 드로잉 한 점을 불에 태워, 일찍이 그의 부친이 쉴레
에게 가한모독감을 일깨우게 했다.  감옥살이 경험은 쉴레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
처를 남겨 그 후로 쉴레의 성격과 예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거의 철두철미 은둔적이 되었고 그리고 자신을 수도승이나 은둔자로 그린
초상화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형태의 왜곡과 작가의 내면세계를 자유롭게 표출해 나감으로서 자가가 자신들은
혼란스러우면서도 힘든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들의 내면적 불안과 고뇌 비통등을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아내가 먼저  사망하고, 쉴레는  사흘 뒤인 10월 31일 밤에 아내 뒤를 따랐다.
쉴레가 최후로 남긴 작품은 죽어가는 아내를 그린 소묘였다.


쉴레의 자화상은 밝혀진 것만으로도 100점이 넘는데, 이는 쉴레가 내면세계의
표출에 있어 자기표현을 중시했음을 의미한다.

쉴레가 표현하는 뒤틀어진 자아는 인간이다. 그러
므로 자화상을 통한 내면의
추적은 나르시스적인 표현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파헤치
는 작업이다.




성적인 열정에 사로잡힌 도착증환자, 또는 비극적이며 신경질적인 화가로 불리기도
하는 쉴레는 어린소녀를 유혹하고 어린이들을 도덕적으로 타락케 했다는 죄명으로
감옥에 갇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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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의 풍경화나 시내풍경을 시각적 통일에 방해받지 않는 선으로 보게 된다면,
자주 그것들이 기차유리창으로부터 들어오는 광경을 기록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쉴레의풍경화와 시골풍경은 작업의 과정을 살펴보는데 가장 적절하다.




죽어가는 가을나무는 단지나무가 아니다.
자연일뿐 아니라 정신적 상태의 상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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