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와 가꾼 아뜨리움/그림읽기

부상당한 천사

하늘타리. 2008. 12. 10. 00:57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참 어둡습니다.

 

두 아이가 들것에 천사를 실어가는 장면이지요.

눈이 가려진채 실려가는 천사도 애처롭고,

천사를 실어가는 소년들의 눈도 쾡한 쓸쓸함이 감돕니다

 

 

부상당한 천사(1903년작)

후고 짐베르크(1873~1917; Hugo Simberg)
핀란드 국립미술관 소장

보는이의 관점에 따라 그림의 해석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발견 한다.

어떤이는 어른들의 지나친 기대에 상처입은 어린이의 마음으로 읽고 있으며,
그림의 제목을 추락한 천사로 해석하면서 작금의 어두운 현실을 떠올리는 이도 있다.

또 다른이는 부상당한 사람을 위로 하며,천사는 결코 날기위해서 다리가 필요하지 않는것을 이야기 한다.

과연 후고 짐베르크는 이 그림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했을까?

다음글은 "서하" 선생님의 설명입니다.

그림이든 글이든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것이 되지요.
어떻게 해석을 하든,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 되거든요.

될 수 있으면 작가의 의도에 근접하려 노력해 보는 것이 독자의 의무이고
맘대로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권리

 

(이건 어디까지나 제 자신만의 주장이나 의의 달지 마시길)

전, 어느 쪽인가 하면 대개는 후자 쪽 죄송.
권리만 찾고 의무는 소홀해서.
근데, 실상 의무를 다할 능력이 없어서 임을 양지해 주시길.

우선 그림이 전반적으로 무거운 색조를 사용했네요.

하나.
천사를 들것에 든 앞선 아이가 검은 옷을 입었다는것
(마치 서양에서 장례식에 가지 위한 정장 차림 같아요. 모자까지 갖춘)

둘.
천사가 눈을 가리고 있다는 것과 손에 든 꽃을 놓지 않고 있네요.

셋.
뒤의 아이의 표정을 눈여겨 보면 두려움에 찬 표정과 아울려 원망스런 눈빛을 읽을 수 있으며,
구도적으로는 화면을 꽉 채운 사각구도를 이루고 있는데,
이 구도가 그림을 상당히 경직되게 만들고 있구요.

이것들을 조합해서 풀어보면이 아이들이 이 부상당한 천사를 데리고 가는 곳은 어디일까요?
왜 천사는 눈을 가리고 있을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두려워 하고 원망할까요?

그리고 천사는 왜 부상을 당했으며, 눈을 왜 가렸을까요?
다쳤을까요?
아니면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기 위함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아이들이 일부러 천사의 눈을 가렸을까요?

다쳤다면 왜 하필 눈이며,
보기 싫다면 무엇이 보기 싫은 것이며,
아이들이 가렸다면, 왜 가렸을까요?


 Sad Remembrance , Pr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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