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블로거기자단팸투어

영동여행 - 영동 양산면 송호국민관광지와 강선대

하늘타리. 2017. 10. 5. 22:31


"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요.
모링이 돌아서 양산을 가세.
난들 가서 배 잡아타고
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요
잉어가 논다 잉어가 논다
양산 창포장에 잉어가 논다


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요
자라가 논다 자라가 논다
양산백사장에 금자라가 논다


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요
장게가 논다 장게가 논다
양산수풀 속에 무구리 장게가 논다."


- 송호리송림 노래비에서


영동에서 서쪽으로 약 15km떨어진

충북의 최남단 지역 양산면 송호리의 송호국민관광지 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가요인 신라때의 노래가 구전으로 지금도 내려오는 양산은

1400여년전 백제와 신라의 경계지역으로

금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를 치른 슬픈 역사의 한장소임니다.


신라 태종무열왕 2년(655년) 고구려와 백제의 동맹군이 변방 33성을 빼앗자,

김흠운이 왕의 명을 받아 출전하여, 백제 땅 양산에 진을 치고 조천성을 공략하려다가

백제군의 내습으로 전사하였습니다.

흠운이 전사하여 수하 여러 장수들이 분전하였으나 모두 전사하였습니다.

대왕이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였고

세인들은 양산가(陽山歌)를 지어 넋을 위로하였다. 고 합니다.


당시의 가사는 실전되었고 새겨진 글은

동도악부에 실린 김종직의 양산가(陽山歌) 입니다


통도악부의 양산가와

그 와는 별개인 구전 가요 양산가가 같이 쓰여 있습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그린 그림의 한가운데를 지나갑니다.







소나무 사이를 걸어

한국의 아나키스트로 불리는 영동의 권구현 선생의 시비를 찾아 갑니다.


외로운 별 하나/
떨어질 듯 깜박이고 있는/
천마령 높은 재를/
이슬 찬 이 밤에 어찌나 넘으려노/ 묻는다.
......
'구천동 숯장사'에서



솔밭 바위 위에 새워진 여의정으로 갑니다.


만취당 박응종 선생이 풍류를 즐겼던 곳입니다.


조선시대 때 연안부사(延安部使)를 지낸 만취당 박응종이 관직을 내려놓고 낙향해

 강 언덕 위에 정자를 짓고 자신의 호를 붙여 ‘만취당’이라 한 것을

1935년에 후손들이 다시 짓고 ‘여의정’이 라 이름을 고쳤습니다.


여의정을 감싼 송림은 박응종이 전원(前園)을 마련한 후

주변에 손수 뿌린 소나무 종자가 자라 가꿔진 것이으로

100년 묵은 송림이 무려 1만여 그루나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여의정에서 용암이 보입니다.


그럴듯한 이름과는 달리

목욕하는 선녀를 훔쳐 보느라 승천하지 못하고

강복판에 남게 되었다는 바위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다시 강가를 걸어 갑니다.


날씨는 흐리지만

푸르고 싶을데로 푸르고
맑고 싶을대로 맑은 양산강이 구비쳐 흐릅니다.



강변 이름모르는 바위에 필이 꽂혀

보다 가까이 보러 강변을 따라 왔습니다.



차량을 이용
강선대로 갑니다.



영동에서 양산팔경이라고 칭하는

영국사, 강선대, 비봉산, 봉황대, 함벽정, 여의정, 자풍당, 용암  중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곳이 바로 강선대입니다.




강선대는 유유히 흐르는 금강가에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오롯이 서 있는 육각정자로

주변 노송들과 어울려 우아하고 고상한 멋이 있습니다.




강선대에 올라 강변 풍광을 둘러 보다 이안눌의 시를 떠올려 봅니다.


하늘 신선이 이 대에 내렸음을 들었나니
옥피리가 자줏빛 구름을 몰아오더라.

아름다운 수레 이미 가 찾을 길 바이 없는데
오직 양쪽 강 언덕에 핀 복사꽃만 보노라.


백척간두에 높은 대 하나 있고
비 갠 모래 눈과 같고 물은 이끼 같구나.


물가에 꽃은 지고 밤바람도 저무는데
멀리 신선을 찾아 달밤에 노래를 듣노라."


돌아가는 버스에서 다시 강선대를 바라봅니다.


"상기 포스팅은

영동와인축제, 난계국악축제 홍보 및 영동의 문화 관광, 맛집을 알리기 위하여

충북 영동군청에서 초청하여 진행한 공공 팸투어에 참가한 후

후기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