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블로거기자단팸투어

영동여행 - 억울한 넋, 노근리를 추모하다

하늘타리. 2017. 10. 6. 02:03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노근리 주민들의 넋을 위로하는

노근리 평화공원입니다.


역사 속에 묻혀버린 비극을

 피해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밝혀진 양민 학살의 현장입니다.


미국정부를 대표한 클린턴 미국 대통령으로 부터 사과도 받아냈고

노근리사건 특별법에 의하여 노근리 평화공원이 조성되었습니다만

  아직도 왜?에 대한 뚜렷한 답이 없습니다.


사건현장 중 한곳 인 쌍굴다리입니다.


노근리 쌍굴다리는 1934년 경부선 철도용 다리로 건축되었으며

 무근콘크리트 아치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사건의 발생시기는 1950년 7월 25일 부터 29일까지 5일간이었습니다.


그 경위를 일자별로 나열하겠습니다.
1950. 7. 23 정오 영동읍 주곡리마을 소개명령(영동읍 주곡리 주민 → 임계리로 피난)
1950. 7. 25 저녁 영동읍 임계리에 모인 피난민 (임계리, 주곡리,타지역주민) 500~600명을 미군이 남쪽 (후방)으로 피난 유도
1950. 7. 25 야간 영동읍 하가리 하천에서 미군에 의해 피난민 노숙
1950. 7. 26 정오경 4번국도를 이용 황간면 서송원리 부근에 도착한 피난민 (미군의 유도에 따라 국도에서 철로로 행로 변경)
1950. 7. 26 정오경 미군 비행기 폭격 및 기총 소사로 철로위 피난민 다수 사망
1950. 7. 26 오후 ~ 7. 29 오전 노근리 개근철교(쌍굴)에 피신한 피난민에 대해 미군의 기관총 사격으로 다수의 피난민 사망


이사건으로 추정된 피해인원은 250명에서 300명 정도입니다.
시멘트벽에 남아있는 각종 화기의 총탄 흔적이 아직도 선연합니다.



노근리에서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기려 유족들의 아픈 상처를 위로하는

위패봉안시설을 갖춘 위령탑입니다.






평화기념관


광복 이후 찾아온 분단
국내외 정세에 영향으로 6.25 전쟁이 일어나게된 배경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민족의 비극 6.25
3년 여간 지속된 6.25전쟁을 12개의 사건경과로 나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알지 못한 사람들
전쟁속에서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주곡리 마을..

영상과 모형의 복합연출로 6.25전쟁의 모습과 대조된
마을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발걸음
주곡리 마을사람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피난 떠나는 모습을 벽면에 쉬트로 연출하였습니다.


그리고 노근리 사건의 배경 및 상황이 복합매체로 연출되어 있습니다.






기억의 고리가 세상에 알려지다.


각종 진상규명 자료들입니다.






조각공원입니다.


모자상.
아이에게 젖을 주다가 그 자세로 엄마가 죽어버린 형상입니다.


그날의 흔적


시련


시선


미완의 공존


하나되어 나아가리


하나된 미래를 향하여


희망을 찾아서


노근리의 아침




최근에 길 건너편에 장미정원이 조성되었습니다. 


아름다움에 이끌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이 장미정원이 노근리평화공원과 연계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노근리사건의 희생자 및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줌으로써

 인권신장과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여러 방법중에 하나로

장미정원도 효과적일 것입니다.


노근리사건의 진실을 국민들에게 바르게 알리어

 인권과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계속 강구되길 바랍니다.


"상기 포스팅은

영동와인축제, 난계국악축제 홍보 및 영동의 문화 관광, 맛집을 알리기 위하여

충북 영동군청에서 초청하여 진행한 공공 팸투어에 참가한 후

후기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