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블로거기자단팸투어

보배섬 진도여행 - 조선 후기 남종화의 산실 운림산방

하늘타리. 2017. 1. 4. 23:30

" 이포스팅은 진도군청 초청 팸투어에 참가한 후 작성한 후기입니다."


12월 17일


운림산방


첨찰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명승 80호 운림산방은 운림산방은

소치(小痴) - 미산(米山) - 남농(南農)과 임인(林人) - 임전(林田) 등 4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 남화의 본거지입니다.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유가 49세 때인 철종 8년, 1857년에 귀향하여 조성, 말년을 보낸곳입니다.


소치생전에는 화실의 당호를 운림각 또는 소허암이라고 하였습니다.

추사의 친필인 소허암(小許庵)현판


소치는 이곳에서 미산(米山) 허형을 낳았고 미산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읍니다.

미산은 1911년 50세 되던 해에 이 터를 다른 사람에게 팔고 강진으로 이사하였습니다.


1982년 허련의 손자인 남농 허건이 이곳을 다시 사들여 쇠락한 운림산방을 복원하면서

화실과 화단, 연못과 섬 등을 정비하여 진도군에 기증되었습니다.










운림산방 앞에 있는 연못은 대략 오각형의 모습으로 한면이 35m 가량되며,

그 중심에는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둥근 섬이 있고

여기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 그루가 있습니다.





 70년경에 개축한 19평의 목조 초가로 된 안채가 있고

그 앞으로 동편을 향하여 14평의 초가 3간 사랑채가 있는데

이 사랑채는 소치가 당시 기거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운림사



소치영정


소치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호를 붙여준 것이며

젊었을때의 이름은 련(鍊)이라 했고 자는 마힐(痲詰)입니다.


소치가 그린 완당선생해천일립상(阮堂先生海天一笠像)




운림산방의 운림은 황공망 등과 함께 중국 원나라 4대화가의 한 사람인

예찬(倪瓚)[1303~1374]의 호 운림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만

첨찰산 중턱에 걸리는 연무가 운림(雲林)을 이루었기에 그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운림 예찬의 묵죽도


운림산방 주변에는 허련의 작품과 그의 가법을 이은 후손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소치기념관,

 진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진도역사관이 있습니다.

함께 둘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