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블로거기자단팸투어

비금도 : 신안군 다도해 명소(비금, 도초, 안좌, 암태, 자은, 팔금도) 힐링여행

하늘타리. 2016. 10. 15. 17:10

"이 포스팅은

 전남 신안군청 초청으로

다도해명소 신안의 섬과 바다의 힐링여행을 알리기 위해 진행한

팸투어에 참가후 작성한 글입니다."


신안군은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인도 91개, 무인도 789개로 880여 개의 아름다운 섬들로 이루어진 섬들의 고향입니다.

그 중의 몇 개의 섬을

신안군의 초청으로 둘러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첫번째 목적지인 비금도를 가기 위해

 신안군 압해읍에 있는 송공항으로 왔습니다 .






안쪽에 있는 농협 철부선을 탑니다.



멀어져가는 송공산


뒤돌아본 송공항




팔금도와 암태도 사이 연륙교 아래를 지나갑니다.


추포도


바닷가 무덤


삼도 등대옆 고기잡이 부부의 슬픈 이야기에 고개숙이고...


비금도입니다.



섬 전체의 형세가 날아가는 새의 형국이라 하여

날비(飛) 새금(禽) 자를 써서 "비금도"라 하였다고 합니다.


염전을 옆으로 하고 미니버스가 달려갑니다.


이세돌 바둑기념관


신안군에서 태어난 한국바둑을 이끌어가는 바둑기사 이세돌을 기념하고 알리기 위해

옛 비금 대광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개관하였습니다.


개관후 이세돌 바둑기념관은

 전국의 바둑동호인들의 발길이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나오면서 둘러 본

로비에 부착된 신안군 명소설명 중

비금, 도초도 부분







차창옆으로 염전이 계속 지나 갑니다.



이곳 비금도를 포함한 신안군의  염전에서 전국 천일염의 70%를 생산한다고 합니다.


비금도는 광복 후 섬에서 한국인에 의해 최초로 천일염 생산에 성공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금도에서 천일염 생산에 최초로 성공한 사람들은

평양에서 염전 기술을 습득하고 고향에 돌아온 '박삼만' 과 그의 기술을 바탕으로 천일 염전조성을 시도한 '손봉훈' 이라고 합니다.


1946년에 수림리 앞의 갯벌을 막아 시험염전 축조를 시작하였습니다.


천일염 생산에 성공하자 1948년 무렵 450세대의 비금주민들의 염전조합을 결성하고

보리개떡과 나물죽을 먹으며 1백여 ha가 넘는 광활한 염전을 조성하였습니다.



명사십리해변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해변이 4km 가까이 이어집니다.



풍력발전기와 어울려 색다른 풍경을 연출합니다.











마을 중심가 부근에 어느 분의 흉상이 있습니다.

목포일보 사장을 지내고 무역업과 염전 등으로 부를 쌓은 후 

1954년에서 1978년까지 여덟번의 국회의원선거에 모두 나와서

네번을 당선하셨던 분입니다.
1960년도에는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하셨다고 합니다만

득표울은 0.4%이었다고 합니다.


비금도의 나이 많으신 주민들은

 "앞을 내다보고 염전 사업을 독려하셨고

지금 비금도에 있는 방파제도 유 전 의원이 주도해서 만들었다”고 이야기 하면서

 "73년, 78년 선거에서 실패한 후 돌아가실 때에는 변변한 집 한 채도 없었다”고 회고합니다.


그래도 인정많은 주민들이 기억해 주니 일말의 위로라도 될듯 합니다.



비내리는 차창밖으로 선왕산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선왕산은 그 높이가 255m로 높은 산은 아니면서도

다도해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산입니다.


하누넘해변을 지나갑니다.


하누넘해변을 조감할 수 있는 전망대입니다


하누넘해수욕장은 해변이 하트모양을 닮아 하트해수욕장으로도 알려져 있어

연인과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고 있습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지역으로 개발이 되지 않아

자연상태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내월우실입니다.


우실은 마을의 울타리로

나무우실, 돌담우실 등으로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돌담으로 형성되어 있는 곳으로


내월리 마을은 하누넘에서 불어오는 ‘재냉기(재넘어에서 부는 바람)’ 로 농사를 망치곤 하였는데



이곳에 돌로 담을 쌓고 바람을 막아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고

 마을의 재앙을 막았다고 합니다.




우실 초입에서 하누넘쪽을 바라보고


고개를 돌려 마을 쪽을 바라봅니다.


내촌마을입니다.


내촌마을은 담장 전체가 돌담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대개 마을 뒤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납작한 돌과 각형의 막돌을 사용하여 쌓은 것으로,


돌담의 폭은 40~60cm, 높이는 1.5m정도입니다.









꼬불꼬불 돌담길을 걸어 마을입구로 왔습니다.


외촌 마을 쪽으로 가면

김씨가문 3대에 이르는 3인의 효행사실을 기록한 3개의 비가 서있는 효자각이 있습니다만

일행들이 기다립니다.

마을 초입에 새로 세운듯한 정절부인 추모비에 애틋한 마음을 얹고 비금도 여정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