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
오대산에서 발원한 물이 진부로 흘러
정선쪽에서 남한강으로 이르는 물을 오대천이라고 합니다.
이 오대천이 흐르는 진부면 천변을 달리다 보면
조선시대에 관리나 전령들이
마평리에 있는 객사 인락원으로 가기 위해 넘던 고개마루에 세워져 있는
청심대라는 표석을 만나게 됩니다.
청심대의 내력은 표지석 앞 안내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1418년 조선 태종 때 강릉 도호부사 양수(梁需)의 부실 청심이
돌연 순절사한 것을 애석히 여기고 청심의 정절을 기리고자 청심대로 명명되었으며
정자는 1927년 면 관련 유지들이 성금을 모금하여 정자를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심이 순절한 것은 1418년이고
정자를 세운것은 1927년이니
무려 509년이 지난 후 정자를 세웠습니다.
오르막을 약간 오르면 왼쪽으로 정자가 나옵니다.
정자를 지나치면
전면으로
사방이 탁트인 깍아지른 절벽 가운데
한쌍의 바위가 우뚝 서 있습니다.
청심대라고 불리던 쌍립암입니다.
이 바위의 모습은 조선후기 화가 단원 김홍도의 그림에서도 나옵니다
정조가 단원에게 관동의 해산승경을 그려오게 하자
단원이 왕명을 받들어 70쪽 그림을 그려 바치게 되고
정조는 이를 5권의 화첩으로 만들어 왕실내부에 비장하였습니다.
그 후 순조가 매제인 영명위에게 하사함으로 세상에 금강 4군첩으로 알려진 화첩속에
월정사, 오대산중대, 대관령, 경포대, 능파대 등과 함께 청심대라는 제호로 실려 있습니다.
산수화 속에서는 현재의 모습보다 더 멋진 모습으로 남아 있는 듯하네요.
바위옆에서 내려다 보는 오대천.
바위와 그 뒤에 보이는 청심정.
청심정으로 갑니다.
1927년 또는 28년 정자가 세워질때 고풍스럽게 그려진 천정그립입니다
청심정에서 보이는 바위가 주변과 일체되어 서 있습니다.
내려오는 길 산기슭아래로 사당이 보입니다.
사당으로 내려갑니다.
사당 안에는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고,
노랑저고리와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초상화 아래에는 위패도 모셔져 있습니다.
청심의 넋을 기리는 사당옆으로 열녀청심 추모비가 서 있습니다.
추모의 마음으로 비음을 읽어 봅니다.
"이곳 청심대는 이조태종 임진년간 강능대도호부사 양수선생의 총애를 받은 관기청심이
태종무술(서기 1418년)에 양부사임기만료로 강릉을 떠남에
청심이 부실로 따라가기를 간청하여 이곳까지는 왔으나
끝내 동행이 거절되자
청심의 정렬일편단심으로 수백척절벽인 쌍립기암난간에서 투신순절하여
강변암반에는 아직도 그 혈흔이 남아있다한다.
당시에 부사는 정렬청심의 명복을 기원하고 이곳을 청심대라 함과 쌍립기암은 예기암으로 명명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수백년 청심의 정렬이 은폐되어감을 가석히 여긴 유림일동은
양수부사와 청심의
사연을 고증하여 청심사를 건립하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1984년"
안내석의 내용과는 조금 다르네요.
관기에서 빼내어 첩으로라도 삼아달라 애원 하였지만..
그조차 거절된...
더욱더 가슴아프고 처절한 사연입니다.
사당을 세울 당시 도움을 주신 분들의 공적비의 방명을 읽어 봅니다.
공적비앞에서 청심사를 다시 한번 보면서
청심의 해원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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