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메에서 내려와 홍굴물을 찾아...
오름 동남쪽 잡목숲사이 옛길로 들어 섰습니다.
나무가시와 가지가 하도 잡아 끌어서 몇 미터 가지 못하고 인접한 목장으로 탈출합니다.
목장 들에서 뒤돌아 보는 작은 바리메오름과 한라산 자락
목장과 계곡과의 근접지점을 걸어가며 계곡으로 내려갈 길을 계속 찾아 보다가
내려갈 만한 길을 발견!
어찌 어찌 계곡으로 내려 왔습니다.
그리고 도수관로를 찾았습니다.
이 도수관로는 1936년 이 일대를 어음리로 부터 매입하여 납읍 공동목장을 시작하면서 시멘트 도수관을 설치한 이후
일대에 수도가 들어오기전까지 계속 보완, 보수 되어 왔습니다.
최종 보수일이 1970년대 초라고 하는데 아마도 맞을 겁니다.
1970년대 중반이후는 이 위 들판으로 직접 수도물이 연결되어 이 계곡물이 필요없어졌으니
그 이후로는 손을 보지 않았겠지요.
하류쪽으로 갑니다.
큰 도수관로가 끝나면서 집수시설이 있고
집수시설에서 땅밑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좁은 도수관로가 있고
또 땅위로 열고 잠그는 장치가 된 쇠 파이프 도수관이 있습니다.
홍굴에 있는 물 고이는 연못은 이 방향으로 더 내려 가야 합니다만 도저히 뚫고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내려간들 수로가 바뀌어 물이 말라 있습니다.
다시 빠꾸, 상부 집수장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올라가기전 뚜껑을 열어 깊이를 보았습니다만 물이 가득고여 깊이를 알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뚜껑을 닫고 위로 올라갑니다.
좌측으로 도수관과 평행되게 보도블럭이 깔려 있습니다
남아있는 보도블럭들은 그 높낮이가 균일한 것으로 보아 그 아래에도 어떤 시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꽤 깁니다.
상부 집수장입니다.
비닐하우스가 두동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들추어 보았더니 무속인의 흔적이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 보니 여기저기 초와 접시 등 어떤 제례의 흔적이 있네요.
이곳이 아니고 서쪽으로 더간 지점에 목축인들이 제를 지내던 당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당이 없어지고 난후 식수 걱정이 없는 이 지점에 육지 무속인들이 터를 잡은 듯 합니다.
납읍은 다른 제주도의 마을과는 달리 바다로도 한라산으로도 연결되지 않은 중산간 가운데 고립되어 있는 마을입니다.
사실 반촌이라고 하지만 생활은 정말 팍팍하고 교통도 참으로 불편했던 곳입니다.
목관아로 출타한번 하려하면 일단 소길리 한질을 이용 원동까지 나와야
목관에서 대정에 이르는 한질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동이 마을길처럼 생각되었는지
원동 남쪽 어음리 지경 한라산자락 6소장구역일부를 1936년에 구입하여 마을공동목장으로 가꾸었지요.
마을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함께 하는 이 지역이 납읍사람들에게는 어음지경이 아니고 동네마을인것 처럼 생각되었고
그래서 납읍민들만이 다니는 당을 정성스러이 모시었습니다.
납읍리 어르신들에게는 이곳에서의 삶의 고락이 머리속에 생생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납읍마을 중심가에 서있는 마을안내판에 게재된 납읍10경중 한곳이
홍수선곡이라하여 바로 이곳 홍굴물 일대입니다.
2008년도 홍골당의 사진과 그 한두해전의 모습인듯한 디지털제주21의 사진입니다...만..
찾아가보려고 하는데 흔적이 남아있을까요?
홍굴당을 찾으면 그 윗쪽으로 4.3의 흔적이 남아있던 어느 동굴도 찾을 수 있을 텐데...
계곡에서 바리메오름 기슭으로 노루가 올라간 길은 보이는데 나뭇가지를 뚫고 갈 수가 없어서
반대쪽 잡목가지를 뚫고 다시 초원쪽으로 올라옵니다.
갑자기 두둥하고 사람이 나타나니 노루 들이 깜짝 놀라서 쳐다봅니다.
그러다가 한 템포 늦게 후다닥
그래 빨리 도망가라.
이제는 사람들이 너희들의 보호자가 아니란다.
케메라 셔터가 방아쇠였다면 너희 들 중 몇은 세상을 떠났을 거란다.
이지역이 홍골의 시작부분 홍골머리라고 불리었나봅니다.
풀밭에서 바리메오름 남봉을 봅니다.
저 삼나무 뒤 잡목숲을 지나면 바리메 오름과의 사이에 넓고 깊은 계곡과 굴헝이 이어집니다.
큰물이 있는 굴헝이라고 해서 큰물 洪자를 써서 홍굴입니다.
여기 비석에는 홍굴
부인의 묘지가 있는 지역은 당시의 어도
지금의 봉성입니다.
돌아갈 생각은 않하고 점점 서쪽으로 갑니다.
혹시나 홍굴당을 찾을 수 있으려나 해서입니다.
엘리시안 골프장구역으로 다가왔네요
바리메 오름 서쪽 등산로를 찾아서 그리 들어가 홍굴당을 찾아 보려 합니다.
그 등산로가 지금도 사람이 다닐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옛 납읍마을 목축인들이 제를 지내던 홍굴당을 찾으러 가기위해서는
계곡에서 오름기슭으로 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리 가기위해서는 서쪽 옛 산길 만이 가능할 겁니다.
일단 바리메 수풀이 끝나는 지점. 무덤이 많은 곳으로 왔습니다.
이 비석에는 여기가 납읍목장 홍골이라고 되어 있고
남편분 묘소는 국유림한데비캐에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사진을 찍은게 아니고 한 곁에 있는 예전 묘표때문에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렇게 성씨가 쓰여 있는 부분이 파인 상태에서 다시 음각되어 있는 묘표를 제법 봅니다.
처음에는 아마도 창씨개명때의 성이 쓰여 있다가 나중에 다시 파내고 다시 쓴것으로 알았습니다만
이 묘비는 1910년 전후로 세워진 것입니다.
합방이후라지만 그때는 창씨개명을 한때가 아니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새긴 묘비들이 종종 보이는 것으로 보아 무슨 이유가 있을텐데 그 이유를 알수가 없어 답답합니다.
남쪽에서 서쪽을 연하는 선을 의미없이 둘러봅니다.
이 무덤은 봉분이 아주 낮아요.
옮겨간 것이 아니고 떼를 입혀서 관리되고 있는 분묘인데 봉분이 아주 낮습니다.
이 이유도 궁금하고요....
옛 길을 찾았습니다.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대나무 숲을 발견
옛 흔적을 찾는다고 둘러 봅니다만...
대나무 숲속은 중간에 막혔습니다.
이 묘비에는 이곳이 어음경 발이악發伊岳 간좌艮坐라고 쓰여 있습니다만 그것 때문에 찍은게 아니고
그 옆에 公墓大靜邑毛洞場 加加伊甲坐라고 쓰였습니다.
모동장 인근에 가가이라는 지명이 없는 것을 고려해보면
남편분의 묘소가 모동장 가까운 곳 북동쪽에 모동장을 등지고 앉아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이렇게 까지 한자를 써야 하나....
이 사진은 산담올레옆에 동자석입니다만..
사실은 맞은 편에 엎어져 있는 동자석을 찍으려다가 카메라를 돌린 것이지요.
갈수록 길이 사람이 다니기 엄청 힘들게 되어있습니다.
그나마 우마 또는 노루가 길은 유지했습니다만 산수국가지가 사람을 붙잡아 세웁니다.
길을 찾는데 온 정신을 다 쓰다가
내가 여기에 무엇때문에 왔는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오름위로 가는 길을 버리고
동쪽으로 진행하다가
누군가가 설치한 철조망을 만납니다.
녹슬지 않은 것을 보니 설치한지 그리 오래지 않은 듯하고
들러져 있는 것을 보니 누군가가 출입한 듯 합니다.
사람의 흔적이 이리도 반갑습니다.
결국 바리메 오름 서쪽으로 돌아가서는 홍굴당은 못찾고
묘비만 살피고 다시 오름 남동쪽으로 나가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목장경계용 삼나무 옆길을 걸어 갑니다.
앞으로 작은 바리메오름이 보이는 군요.
작은 바리메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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