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월 10일 중요민속자료 제17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기의 문신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이 거주하면서 후학 양성에 힘쓰던 곳으로,
1613년(광해군 5) 건립하였다.
경사진 산록에 건물을 남향으로 배치하여 우뚝 솟아 보이는데,
왼쪽으로 10m 떨어진 곳에 사당을 배치하고 주위에 와편담을 설치하였다.
성이성은 1627년 문과에 급제한 뒤 진주부사 등 6개 고을 수령을 지내고 어사에 세 차례 등용되었으며,
근검과 청빈으로 이름이 높았다.
훗날 부제학(副提學)을 추서받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중요민속자료 제171호
지정일 1984년 01월 10일
소재지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계서당길 24
출처 : 두산백과
(한옥의 미에서 추가)
. 이 가옥은 최근 춘향전에 등장하는 이도령과 관련하여 이목이 집중되는 가옥이다.
이 집과 이도령의 관련성은 이렇다.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 1595~1664)의 아버지인 성안의가 남원부사로 있을 때,
성이성은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서 공부를 했고
이후 과거에 급제한 뒤 암행어사로 네 번이나 출두, 암행어사의 표본이 됐다고 한다.
이후 성이성은 출사를 여러 번 거절한 뒤 봉화에서 이 계서당을 짓고 살았다는 것이다.
최근 학자들과 종손의 말에 의하면 성이성의 암행과 권선징악을 실천한 점 등에 미뤄
이 집의 주인인 성이성이 바로 춘향전에 등장하는 이몽룡의 실제 인물이라는 것이다.
춘향전 집필 당시 양반의 실명을 바로 거론하기에는 시대 상황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성을 이씨로 바꾸고,
대신 춘향의 이름에 ‘성’씨를 붙였다는 설명이다.
춘향전 등장인물의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봉화군은 계서당 입구에 ‘춘향전의 실존 인물 이몽룡 생가’라는 안내판을 세우고,
봉화를 암행어사를 상징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주변 환경을 가꾸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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