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좌읍 종달리 서쪽 들판을 걷습니다.
아주 옛날에는...
종달리의 주요 동리들이 모여 있는 지금의 일주도로 동쪽에는 마을이 없었지요.
이영조 효지비가 있는 종달리로타리가 알개입니다.
마을 아랫쪽 포구가 있던 곳입니다.
그럼 어느마을의 아랫쪽 포구냐?
은월봉주변 너븐드르마을의 아랫쪽 포구라는 겁니다.
종달리는 원래 설촌이 은월봉을 중심으로 넙은드르·대머들·황무동 등 여러 지역에 살다가
점점 동쪽으로 내려와 종처럼 생긴 산 밑으로 모여살아 종달이, 종달리라는 마을로 발전하였습니다.
(한글학회의 한국지명총람'(1984)참조)
그래서 주변 마을 모두 가는곶(세화)·도려(상도)·벨방(하도)·심돌(시흥) 등의 원명을 가지듯
이 곳 종달은 종달이 또는 종다리가 원명입니다.
종달이쪽으로 마을이 커지면서
고종 8년(1874년)에 제주목사 이밀희가 제주도의 행정구역 관할 변경 시에
당시 정의현에 속했던 마을을 구좌읍으로 편입(부영성의 '구좌읍지'(1986)참조) 시켰습니다.
그후 1914년에 리가 되어 북제주군 구좌읍 종달리가 되었다가
지금은 북제주군이 제주시로 편입되어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가 된 것입니다.
바닷가쪽으로 마을이 커진 이유는 제염때문입니다.
한때 제주에서는 '소금하면 종달, 종달하면 소금'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종달리민을 가리켜 소금밭 사람이라하여 소금바치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한국수산지' 제3집(1910)에 의하면,
"조선 중엽 1573년 姜侶 목사가 종달리 해안 모래판을 염전 적지로 지목하고,
종달리 유지를 육지부로 파견해서 제염술을 전수하게 하여 제염을 장려한 것이 본도 제염의 효시이다.
1900년대에 종달리는 353호 가 있는데 그 중 제염에 종사하는 사람은 160여 명에 달했고
소금을 생산하는 가마(釜 : 속칭 가망·가매)가 46개가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민요의 한구절에 "… 종달리의 큰애기덜은 소금 장시 제격이여 …."라는 가사가 남아 있습니다.
구한말 소금이 육지에서 부터 유입되기 시작하여 제염이 돈이 되지 않자
일대 갯벌을 메워 수답으로 만들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1890년경에 濟州判官과 大靜郡守를 지낸 蔡龜錫(1850∼1920)이
금붕사 입구에서 <신속곶 >으로 연하는 지역에 언제(堰堤)를 쌓아 논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지반이 견고하지 못해 해수가 땅 밑으로 솟아나면서 실패하였고
이 공사로 인해 언제 일부 지역에서는 소(沼)가 형성되어 익사자가 생기기도 하였으니
이 곳을 '대정놈의 소'라고 불려지기도 했습니다.
그 대정놈의 소가 금붕사에서 효자비있는 로타리 까지의 좌우로 아직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후 하도리와 연하는 지역은 전라도 부자라 지칭되던 송구래가 매입하고
염전으로 이용되던 간석지(干潟地)는 1957년부터 근 12년 동안 대대적인 간척 공사를 벌여 수답을 만들었습니다.
언제의 서쪽 암반을 뚫어 해수의 유출입 시설을 하였으며
이중으로 언제를 쌓는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
바다 쪽은 양어장, 일주 도로 쪽은 수답으로 완성하였습니다.
송구래는 조천읍 함덕리의 김경찬·계담 형제에게 매각을 하였고
이들은 다시 일부를 지역 주민들에게 매각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다보니 수리 시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관리 또한 소홀해지면서
논은 차츰 습지대로 변해 현재는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고
그 옆으로 일주도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염전이 생기고 수답이 생겨
은월봉일대의 주민들이 거주지를 동쪽으로 옮기기전의 옛들판을 걸어봅니다.
이 무덤의 묘비는 이해가 않갑니다.
누군가가 못된 장난을 친 것인지,
후손이 우매한건지,
아니면 우리나라에 니가 내가빼놓고 다 있다고 하니 정말 墓氏가 있는 건지(苗씨는 있습니다),
그냥 기가 막힐 뿐입니다.
시흥리 두산봉이 머리를 내밉니다.
세화리 다랑쉬를 보고
다시 두산봉을 보고...
고개를 뒤로 돌려 성산리 일출봉을 보고
저 일출봉도 원래이름은 성산입니다.
성산이 있는 마을이라서 성산리이지요.
70년대에 일출봉이라는 이름을 하나 얻었습니다.
다랑쉬가 크게 나타나네요. 그 왼쪽은 높은 오름인데 멀리 있다보니 높아보이질 않네요.
다시 고개를 돌려 성산
뒤로 돌아 보니 지미봉이 보입니다.
그 오른쪽으로 우도가 보이네요.
다시 다랑쉬
다시 우도
이번엔 두산봉
다시 지미봉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며 사방을 보다가
자 앞으로 가자!
다랑쉬를 보며 갑니다.
지미봉이 궁금해서 한번 더 돌아보고...
홍당무를 수확합니다.
현장에서 바로 박스에 넣는 군요.
무우는 인건비가 않나온다고 그냥 밭에 버려져 있는데..
그래도 농민들은 처음에 밭데기로 거래를 했기때문에 돈은 계산이 이미 끝난것이지요.
중간상인들이 않가져가면 나중에 한꺼번에 갈아엎습니다.
다랑쉬를 보며 계속 서쪽으로 걸어갑니다.
아마도 한동리 둔지봉인듯하고...
오른쪽부터 다랑쉬, 아끈 다랑쉬, 높은 오름, 동거미, 용눈이와 손지 그리고 은월봉입니다.
동거미, 용눈이와 손지 그리고 은월봉은 행정구역이 종달리이고
이 오름들 앞 이 들판에 옛사람들이 지금의 종달리 원마을을 설촌한 것입니다.
종달리 구역만 볼까요.
세화리 다랑쉬 우측으로 평대리 비자림뒤 송당리 돝오름이 삐죽이 고개를 내밉니다.
어, 여기서는 무우를 수확하고 있습니다.
모든 무우가 다 버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것은 버려지고....
마을 농로를 지나 포장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은월봉이 가까이 보이는 군요.
왼쪽 더 가까이 두산봉이 길게 누워 있습니다.
두산봉로타리까지 왔습니다.
두산봉을 보고...
다랑쉬를 보고...
몸을 뒤로 돌려 지미봉을 봅니다.
지미봉아래 종달이 전수동 복지회관까지 다시 내려와
제주시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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