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좌읍 하도리에 있는 금붕사를 갑니다.
일주도로변 종달교차로 못미쳐 정체모를 폐건물 뒤쪽에 있습니다.
고려시대 사찰 터라고 전해지는 곳에서 김대승각 화주가 초가 내에 불상을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1926년 아들 성봉스님(속명 이준구)을 모시고
초가 25평의 법당을 건립하여 창건한 절집입니다.
1930년대에 활발한 활동으로 신도들이 꽤 많았습니다만
1948년 제주 4·3사건이 일어나면서 그 해 연말 절집에 폭도를 감추어 두었다는 구실로 금붕사는 불태워졌고
이에 항의하던 성봉스님이 토벌대에게 8발의 총탄을 맞아 죽어갔습니다.
성봉 스님은 창흥동 주민에 의해 인근에 가매장되었다가 후에 고향 행원리에 묻히셨으며
불태워져 반만 남은 절집에서 그의 딸 행안스님이 불사를 이었고,
이후 행안 스님의 외조카인 수암 스님에 의해 현재의 금붕사로 중흥되었습니다.
이런저런 불사를 거쳐 1997년 11월에 대웅전과 종각을 새로 완공하였으며
2004년에는 나유타 합창단을 창설하여 구좌읍 지역의 불교 포교의 중심으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절집 큰 법당으로 갑니다.
주련으로 화엄경 청량소초 제 63권 제 52경의 내용이 쓰여져 있습니다.
金翅在空觀大海하고 闢水搏取龍男女하나니 十力能拔善根人하사 令出有海除衆惑이로다.
부처님을 뵙습니다.
오백나한도는 일설에는 조선시대 작품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만...
제작년도를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큰법당안에 좌우 출입문을 지키는 동자상이 조금 특이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요사이 법당내 천정부에 매달아 놓은 연등때문에 잘 보지 못하는 닷집과
천정의 각종 그림을 볼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연한 건데 이게 인상적인 모습이 되어 버렸네요.
후원을 돌아 종각으로 갑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범종을 두드리는 나무망치를 메달고 있는 두줄 중 한줄이 종각 밖에 있습니다.
종각을 지을때 스페이스계산을 잘못한 것인지, 새로운 사조인지 알길이 없네요.
옛 대웅전
옛 대웅전옆, 예전 종각 올라가는 길에 있는
지금은 말라버린 연못 뒤에 있는 1984년에 건립한 국묵담대종사 사리탑입니다.
국묵담대종사는 1981년에 단좌입정하셨는데 다비후 사리가 9과가 나왔습니다.
이 사리를 장성 백양사, 담양 용화사, 전주 관음선원, 부산 금수사, 안양 연화사,
그리고 제주의 성광사, 선광사, 성림사, 금붕사에 각각 한알씩 나누어 봉안하였습니다.
국묵담 대종사는 한국불교조계종종정이시다가 태고종과 통합 태고종종정을 하신 분이지요.
지금 통상 이야기하는 조계종은 대한불교조계종이라 한국불교조계종과는 다릅니다.
태고종과 현재의 조계종이 다른 가장 큰 차이는 태고종은 태고보우국사를 종조로 하고 있는데
조계종은 1962년도 창종하면서 보조국사로 종조를 바꾸었지요
.
그리고 스님들의 결혼에 대해서는 태고종은 결혼을 자유의지의 문제로 보고있고
조계종은 금혼을 강요합니다만
해방이후 태고종 초대종정 박한영스님부터, 방한암, 송만암, 국묵담, 박대륜, 안덕암 스님등이 독신 비구승인데 반해
조계종 종정이었던 효봉스님, 하동산, 이성철, 이청담스님등은 출가전이나 후에 결혼한 이력이 있습니다.
사리탑 앞 마른 연못을 지나갑니다.
요새는 절집형편이 좋다고 그러니 이 연못에 물을 채워도 될 듯 합니다만
이제는 대웅전과 종각 모두 옮겨지어져 이곳을 오르 내릴일이 없으니
그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옛 종각을 가기전에 1954년에 신도들에 의해 세워진 창건대시주 대승각과 성봉스님기념비로 갑니다.
어딘가에서 옮겨 온듯 밑둥이 뽑혀 있습니다.
불기 2981년 금붕사신도일동이라고 쓰여있습니다.
불기 2981년은 세계불교도우의회(WFB)가 1956년 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개최한
제4차 세계불교도대회에서 불기를 통일하기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쓰던 북방불기입니다.
당시 불기 2981년은 서기 1954년이 됩니다.
년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비석에 적힌 내용이 궁금하시지요.
절의 창건과 제주 4·3사건때의 비극에 대해 간략히 적혀 있습니다.
1997년 대웅전과 종각을 새로 짓기전까지 사용하던 종각으로 갑니다.
불기 2999년 5월에 주조되었다는 범종이 걸려 있습니다.
주지 김종식, 회장 홍성보 그리고 여러 화주들의 이름이 양각되어 있고
또 그위에 못으로 긁어 파놓은 이름들이 빙둘러져 있습니다.
불기 2999년이면 1972년입니다.
불기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불교 조계종에서 1970년대 중반에 그때까지 우리나라 불교계에서 써오던 불기를
다른 불교국가와 통일하겠다고 하여 근 20년전인 1956년 11월 네팔에서 열린 세계불교도대회에서 정한 불기를 따르기로 합니다.
당시 세계불교대회에서는 석가모니생존시기를 기원전 624년에서 기원전 544년까지로 하여
1956년을 불기2500년으로 정하였으며
부처님의 탄신일은 양력 5월 15일로 채택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불기의 시작을 기원전 544년으로 한 것은 받아들이고
부처님의 탄신일 양력 5월 15일설은 배척하여 음력 4월 8일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오고 있으니 불기라는 용어를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기는 석가모니가 태어난 해를 기원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부처의 입멸(入滅),
즉 부처가 '죽은 해'를 기원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멸기원'이라고도 합니다.
세계불교도대회에서 확정된 불기의 기원인 기원전 544년은 석가의 입멸년도입니다.
따라서 금년은 불기 2558년(2014+544=2558)이자
부처가 탄생한 지 2638년째가 되는 날인 것이지요.
몇일 뒤면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그때는 이 앞마당이 꽉 찰것입니다
예전길로 갑니다.
이길은 아니고...
이길이 예전에 창흥마을 펄개에서 오고, 종달리 알개에서 오던 길이지요.
지금은 4차선 넓은 도로공사로 중간이 막혀 있어 통행이 불가합니다.
금붕사 표지석있는 길로 돌아나와 성산방향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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