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복리는 구좌읍의 가장 서쪽에 위치하여 구좌와 조천의 경계를 이루는 마을입니다.
김석익의 탐라기년에 의하면
연대미상에 한 노인이 오막살이 한 채를 지어 살기로 속칭 곤막(邊幕)이라 불리었으나
그 발음이 변하여 곧막, 골막이라고 부르다가
동쪽의 복받을 마을이란 뜻인 동복리(東福里)라고 했다합니다.
동쪽의 복받을 마을이라고 이름 붙인 간절함에서 알 수 있듯이
바다 어장 면적이 좁고 북촌이나 김녕 등 인근마을에 비해 해산물도 많지 않아
‘생이(새)다리 하나로 잔치한다’고 할 정도로 과거 동복리 사람들의 삶은 영세했다합니다.
지금의 마을은 장상물, 도화치물, 민물과 같은 용천수를 중심으로 확장되어
현재는 안카름(동하동), 동카름(동상동), 서카름(서상동, 서하동)으로 구분됩니다.
김석익은 이 마을 설촌이 한노인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만
구전에 의하면 이곳 굴묵밭에 한 여인이 살면서 마을을 설촌했다 합니다.
사실 오라3동(월구동) 설촌유래처럼 제주 마을 설촌 유래에
여인이 먼저 들어와 살고 그뒤에 남성이 유입되어 형성되는 사례들이 많이 등장합니다만
유학을 공부하시는 마을 문장어른 들에 의해 주인공이 거의 바뀌었듯이 이곳도 글과 구전은 다릅니다.
이 마을의 설촌구전이 남아있는 이유는 이 당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곳 동복리 본향 굴묵밭 할망당은
굴묵밭에 살다가 이 마을을 설촌하였다는 굴묵밭할망과
그 뒤 들어오신 송씨하르방을 모시고 있습니다.
입구정면좌우에 삼단으로 된 제단이 둘 있읍니다.
왼쪽 제단의 신목은 동백나무 오른쪽 제단의 신목은 사철나무입니다.
입구왼편에 현무암으로 만든 제단은
한동안 지내지 않던 포제를 지낼 목적으로 관의 지원으로 만들었다 합니다만
지금도 포제는 지내지 않는다 합니다.
이곳도 2월 15일에 신과세제를 지낸다 합니다만 그렇다는 이야기이고...
몇몇 분이 생기맞는날 오셔서 액운방지를 비념하고 있습니다.
뒤돌아 보고 당을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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