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제주 올레

제주올레 5코스 1 남원포구에서 큰엉 서쪽지점까지

하늘타리. 2011. 4. 18. 11:01

올레 5코스를 가려합니다.
제주시 시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남원읍 사무소 앞에서 내렸습니다.

 

빗방울이 떨어지네요.
제주시에서는 밤새 내리다 아침에 그쳤는데

한라산을 넘으면서 빗줄기가 다시 보이더니 이곳에서도 계속 비가 내립니다.

돌아 갈수는 없고...


나름 분위기를 잡으며 걸어보자고

잔치집이라고 화살표 되어 있는 방향, 남원포구 쪽으로 갑니다.

개한마리가 앞장서 호위하네요. 

 남원포구

여기서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야 합니다.

 

준비운동 겸해서 왼쪽으로 몸을 돌립니다.

포구 왼쪽 끝에 있는 남원1리 본향 돈짓당인 널당을 둘러보고 가려고요.

 

 

돌담을 둥글게 두르고, 가운데 석궤가 있습니다.
어부와 해녀를 수호하는 돈지하르방과 할망이 한라산계 산신인 하로산영산또와 함께 계십니다.

 

하로산 영산또를 모시던 마을 본향당인 널당이 도로공사로 없어지면서 이곳으로 하로산또를 모셔왔습니다.

 

널당이었을 때는 별도의 제일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2월 15일쯤 요왕제를 지냈을 것이고

그 외에는 특별한 제일없이 어부와 해녀들이 생기맞는 날 당에 다닙니다.

 

엣포구의 흔적을 둘러봅니다.
남원포구

 

이 마을 사람들은 비안포구라 합니다.
남원리의 자연부락인 비안동에 있는 포구라는 것이지요.

 

그 보다 이전에는 재산이개라 했습니다.

 

남원리는 다른 마을에 비해 교통이 불편하여 약 120여 년 전에야 설촌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쇌앗개부근에 정착하여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이후 너브못에 또 하나의 마을을 이루어

이곳 갯가에서 바닷물을 이용하여 소금을 생산하고

해조류를 채취하여 재산을 일궈나갔다고 하여 재산이개라고 불리었습니다.  

그 후  포구인근으로 비안동이라는 마을이 형성되었고

주변의 마을과 의귀리 서쪽지역을 합쳐 1924년 께 부터 남원리가 되었습니다.

1926년에 당시 의귀리에 있던 정의군 서중면 면치소(면사무소)가 이곳으로 이전되었고

1935년에 서중면이 남원면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남원면에서 설치한 올레5코스안내도입니다.

올레에서 만들어 세운 표지석은

포구 왼쪽끝 당 뒷쪽에 있는데 주변이 공사중입니다.

 

 

포구우측 벌려진여입니다. 

 

이 여가 두 쪽으로 쪼개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어디가 벌러졋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 여에 자리 잡고 있는 해녀작업장입니다.

 3년 되었나요?
올레길이 생기기전 해녀문화 답사왔을 때

남원1리 전체 4개 자연부락에 60명이 채 않되는 해녀분이 공동으로 작업하고 계셨습니다.
이곳의 해녀분들은 70대 이상이면 어촌계를 탈퇴하면서개인지분 100만원돈을 찾아가신다 합니다.
탈퇴하는 이유는 가까운 바다, 예전에 할망바다라고 불리우던 곳에

토사물 등이 쌓이고 백화현상 등으로 인해 바다밭이 황폐하기 때문에 물일을 할 수가 없답니다.


지금은 관리선을 이용해 신성동 앞바다 등 먼 곳으로 나가 해산물을 채취하고

선박사용료를 개인당 3000원에서 5000원을 부담하다 보니

나이드신 분들은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부근바다에 10여 년 전부터 감태, 톳 등의 해초가 없어지기 시작하는 등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그 당시 작업하던 200여명의 해녀가 거의 남질 않았습니다.

 

테왁과 망사리가 그냥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은 물질을 나가지 않으신 듯합니다.
간혹 테왁이 다른 것보다 큰 것이 보이는데 보말잡는 테왁입니다.

보말은 다른 해산물에 비해서 무겁기 때문에 테왁도 큰 것을 사용한다고 하네요.

 

예전에는 이 바닷가에서 용왕맞이를 했습니다.
음력 1,2월 중에 어촌계에 개인당 몇천원씩내어 제비를 마련하고

개인적으로도 제물을 준비하여 제를 지내고 할망당으로가서 기원하였습니다만

그 풍습도 지금은 없을 겁니다.

 

 

안여입니다.

마을 앞에 책상을 받고 앉아있는 형태의 여라 하여 案礖라 한다는데

 어디서 보아야 그리 보이는지를 모르니 그냥 그렇구나 하고 지나갑니다. 

 

마을 쪽으로 방사탑의 모형을 만들었고 그 위에 솟대를 세워놨습니다.

 육지풍습으로 장승과 솟대는 마을 입구에 세워져 마을을 지켜주고 잡귀를 막아준다합니다.

이 중 솟대의 장대는 잡귀를 막아주고, 그 위에 얹혀진 새는 풍농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지요.

그에 추가하여 솟대는 풍수지리 사상과 과거급제에 의한 입신양명의 풍조가 널리 퍼짐에 따라서

급제를 기념하기위한 화주대로 분화 발전되기도 했습니다.


관광객들을 위한 시설이겠지만 제주의 마을의 솟대, 그것도 방사탑위에 화려한 솟대는 조금 어울리지 않은 듯 보입니다.
제주의 전통을 보이려면 방사탑 위에 장대없이 신의 사자인 새가 바로 올라 앉아야 할 것 같습니다.

육지풍습을 재현하려면 장대 밑에 방사탑은 없어야 하지요.

왜냐? 둘의 기능이 중복되니까요.

 

안여의 허리를 끊어 그 위로 연결한 해안도로에 연해 시비가 서 있습니다.

 

혹시 마음에 드는 글이 있으면 천천히 음미하며 가세요. 

 

해안 반대쪽 통일교연수원 못 미쳐서 남원의 설촌터, 쇌왓개입니다.
지금은 폐가가 남아 있습니다.

경작지 중에서도 면적이 크고 땅심이 좋아 소를 들여야만 밭갈이를 할 수 있는 바닷가라 하여 쇌왓개라 불렀다는데

일부는 통일교연수원으로 일부는 텃밭으로 남아 있다가 폐허가 되어 갑니다.

아니다. 누군가 땅을 산후에 경작을 금지했나 봅니다.


밭 한 편으로 등대풀이 있습니다.

 가을에 새순이 나와 다음 해에 무성해집니다.

잎 사이로 조금 밝은 녹황색으로 피어난 모습이 마치 캄캄한 어둠의 밤바다를 밝혀주는 등대 같다고 해서 등대풀이라 합니다.
그래서인지 거의 비슷한 형태에서 더 밝은 색으로 보이면 괭이눈이라 합니다.


장딸기꽃
하얗고 청초한 꽃이 예쁘다고 다가가서 만져보다간 따가운 가시에 사정없이 찔립니다. 

 

 통일교연수원 앞에서 다시 바닷쪽을 봅니다.
이 앞으로 건드르물과 석산수라는 갯샘이 있었습니다.만
연수원이 일화공장이던 시절 지하수를 파올리면서 다 말라렸습니다.


저기 구럼비엉까지 쇠누랭이라 불리우는 곳입니다.
바닷가 암반의 질이 쇠와 같고 그 색이 누렇다해서 마을사람들이 그리 부릅니다만

질이 어떠하면 쇠와 같다고 하는 가를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제주어로 쇠터럭이라는 해조류(김의털)가 많아서 쇠누랭이라 불린다고도 합니다.


구럼비엉 입구입니다.

큰엉 안내판이 붙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황토개까지 높이 15~20미터 절벽 위로 2.7킬로미터의 길이 시작되는 곳이랍니다.

 

큰엉길이 아닌 왼쪽 길로 해서 바닷가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구럼비엉덕과 소롱코지.
바위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엉이 있고 그 위가 구렁비 엉덕입니다.

그리고 저기 삐죽 나온 코지가 소롱코지라고 합니다.

 


가뭄이 들면 이 엉덕에서 기우제를 올릴 제단을 마련하고 제를 지낸 후

큰 돌덩이 세 개를 세 번 굴린 다음 함성을 지르고 나서 바다에 떨어뜨렸다 합니다.

이렇게 기우제를 지내고 나면 3일 후에 비가 꼭 내렸다고 하네요.

동네 사람들은 바윗돌을 굴려 비를 내리게 하는 곳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까마귀쪽나무를 제주어로 구럼비낭, 구룸비낭이라고 하는데

이 구럼비낭이 많은 엉덕이라해서 구럼비엉덕이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소롱코지는 이 곶(串)의 지형지세가 마치 작은 용이 머리를 쳐들고 승천할 듯 한데서 연유한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암반이 뻗어나간 지세가 비스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 바위들이 절경을 이루고 있어 다가가 봅니다.

엉에도 한번씩 몸을 넣어 보고... 바닷가 암반 위를 가다 돌아오다 가다 돌아오다 하며 파도치는 바닷가를 떠나지 못합니다.

 

 

 

 

 

 

 

 

 

 

 

 

 

 

계속 이어지는 바윗길이 비와 바람과 파도에 제법 힘들군요.


바닷가로 내려간 입구 쪽으로 돌아오며 식물관찰모드로 돌입합니다.


처음부터 헷갈리네요.

열매는 갯까치수영인데 잎은 엉뚱한 놈입니다.

 

 밀사초 같은데 밀사초가 바위틈에서 자랄 수 있나?


갯메꽃

 

갯까치수영 

 최근 이 갯까치수영에서 사포닌계열의 물질 3종을 추출해 냈는데

이것이 작물 도열병·골프장 잔디 뿌리썩음병에 아주 효과가 있더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 것 같고..

 

번행초

갯상추라고도 부르는 번행초는 위염. 위궤양. 위산과다. 소화불량 등

갖가지 위장병에 치료 및 예방  효과가 높은 약초인 동시에

맛 좋고 영양가도 높은 야생 채소라고 하도 많이 캐가서

그 흔하던 것이 지금은 보기가 힘들어요.

 

개미자리

 

큰개미자리인지, 갯개미자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궁금하시면 꽃이 피면 갯개미자리는 암술이 3개고

 큰개미자리는 암술이 다섯 개라니 늦은 가을 다시 한번 오세요.

 

해국이겠지요?

 늦여름에 오시면 지천으로 핀 꽃이 반길 겁니다.

갯기름나물

식방풍이라고도 하고 36가지 풍증을 치유하는 명약이라 합니다.
제발 나는 이 꽃과 가까이 할 기회가 없기를 바랍니다.

 

바닷가로 내려온 초입 바로 옆에 구럼비엉 잠녀당이 있습니다.

해녀를 수호하시는 돈지할망인 용왕또를 모시고 있는 곳으로

잠녀들이 바닷가 나가면서 비념하고 가던 곳입니다.
길쭉한 나뭇조각위에 못을 박아 촛대를 만들어 초를 고정한 흔적이 있습니다.

 

그 옆 굴, 또 다른 비념의 흔적

 

또 그 옆 굴, 어느 망자를 위한 기원의 흔적인 하얀 조화. 그 앞의 조그만 불상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먼바다를 힐끗 바라보고

산책로로 올라갑니다.

 

엉덕 산책길 산비탈 국수나무 

 

딱지꽃?

아니면 말고...

 

 

저기 새부리처럼 생긴 바위...

 

당겨보고

 웅크리고있는 독수리한마리

날자

그래 날아보자..

 

 실망초인지...

 큰망초가 덜자란상태에서 꽃을 피우는 건지
둘 중의 하나는 맞지 않을까?

 

영화박물관. 죠스가 나타났다. 아니 잡혔다.

 

바다로 내려가는 길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고..

 

  

나무숲! 아니 굴.

쇠 떨어지는 고망이라 우렁굴이라 합니다.

10m 높이의 절벽 사이에 직경이 4m 가량 되는 큰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그 밑에 큰엉이 있습니다.

주위에 나무와 풀이 우거져 구멍이 잘 보이지 않는 까닭에

옛날 이곳에 소를 방목하던 시절,

이 구멍으로 소가 자주 떨어져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금도 바닷가 절벽에 구멍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 구멍을 보러 옆의 바위로 갑니다.

 

 반대쪽으로 눈을 돌려도 또 하나의 굴이 어흥 하고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황고지못 입니다.

 

제주어로 황고지, 항고지는 무지개를 말합니다.
비가 온 뒤 무지개가 서는 연못이라는데서 연유한 이름으로

예전에는 바위가 많다고 하여 바위못 이라고도 불렀습니다만

지금은 주변 구색용 운동시설과 몇개와 더블어 연못하나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연못 반바퀴...

 

 

 


아직도 버티는 갯쑥부쟁이 

 

 개구리발톱

 

바다로 돌아가려는 거북이 한마리

 

예덕나무 새싹 

 위장 계통에 여러 효능이 있다하여 예와 덕을 갖추었다 하는지 모르지만

지친피부에 비타민을 먹일 때 쓰는 주름개선기능을 가진 화장품성분이

바로 이 예덕나무 껍질에서 나온답니다.
아주 오래전 일본에 갔을 때 이 예덕나무잎으로 떡을 싸서 주더군요.

 

큰엉 산책로의 끝부분.
정자에 엎드려서 보고픈 이에게 엽서 한 장

 

큰엉 안내판

 

큰엉 표지판 

 
바다야 갈라져라. 얍!

 

내려가 봅니다.

 

 

 

 

 

 

 

 

 

 

 

포말에 필이 꽂혀 꽤 오래 있었네요.

다시 올라오며
이쪽으로 쭉가면

암반의 형태가 용처럼 길게 뻗은 용코지를 지나 황토개까지 이어지는데 어쩔까하다가..

코스따라 선광사로 발길을 내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