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우리강 우리산

서울 북촌기행 3

하늘타리. 2011. 2. 22. 23:30

 원서동입니다.

 

원래 군기창자리였다가 인촌 김성수 동생 김연수집이었다라고 생각되는 곳에

은덕문화원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문화원인가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원불교 정신문화운동의 근본역할을 하는 시설인데

들어왔으니 건물 한바퀴 둘러보는 것은 허용해 주신답니다.

한옥의 멋이 살아 있는 집이라고 하면 건방진 표현이 될까요? 

 

참 좋다! 

그런데 내벽의 모습이 경복궁 꽃담하고는 달리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중국식?
아니라면 용서하세요. 배움이 부족한 탓입니다.
다시 한번 내치지 않고 둘러볼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추문앞 불교미술박물관 야외전시장에서 몇 장 꾹..

 

 

 

빨래터.

창덕궁 담 밑으로 흘러나오는 물에 동네아낙들 모여앉아 빨래를 하던 곳

지금은 폐기물 집하장. 폐기물 안보이게 꾹..

 

백홍범가옥표지판

 

 조선시대 전통적 한옥과 1930년대 집장수집 사이의 과도기적 형태를 보여준다해서

문화재로 지정되었답니다.
멀리서만 봅니다.
입구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경비원 비슷한 사람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리고 이 건물은 한샘디자인센터랍니다.
옛 건물이 아니고 한 7~8년 전에 지은 것이라 하더군요.
어느나라식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눈길을 잡아끌기는 하네요.
아 아까 그 사람은 여기 경비원이구나.

 

 

길이 막혔으니 돌아갑니다.
돌아가면서 또 하나의 골목, 원서동 공방길로 들어가니
궁중음식연구원.

 


그리고 사람이 사는 집.

동네 사람은 없습니다 

불교미술박물관옆 포스터들

돌담길 따라...

 

싸롱 마고????
은덕 문화원 옆에 있는 건데....
와본일이 없는 곳, 그런데 왜이리 그 이름이 낯설지 않나?

마고할미의 전설 때문인가????
한참 뒤에 생각났습니다.

 

그렇구나! 김지하!!!
안타까운 이름 김지하!!!


금위영서영터  

 

북촌아트홀
동치미..음식이름이 아니고 연극제목.

 

전통문화체험관
즉 게스트하우스

 

원서소공원에서 보는 현대사옥
휘문고가 있던 곳

 

원서소공원에서 본 창덕궁
인정전

 

창덕궁 금호문앞 송학선 의거터

 

돈화문 

 

돈화문옆 주차장앞 동궐도

경복궁의 동궐(창덕궁과 창경궁)을 순조30년(1830년)경 도화서 화원들이 그린 그림의 복제품.

 

다시 돈화문

들어갈까, 말까

 저녁 여섯시 반 비행기.. 시간이 없을 듯...
안국역 방향으로...

 

여기도 금위영터.

광복 후 국립국악원이 있었다합니다.

 

 버스정류장옆 북촌한옥마을 안내판.

 

사도시터

 문득 이권과 재물에 관계되는 직원을 자주 바꾸어야 좋은가?

아니면 오래두어야 좋은가?하는 엉뚱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뭔소리냐고요?
이곳은 궁중에서 소비하는 곡식을 관리하던 관청이 있던 곳 입니다.
고려시대에 비용사로 설치되어 이름과 책임자의 직급은 계속 바뀌었지만

1882년(고종 19년)까지 가장 중차대한 御供을 담당하다보니

 필요한 양의 두배, 세배는 물론이고 예상 손실분까지 징수하여
초과분은 알아서 처분, 자신들의 치부의 수단으로 씁니다.
그래서 근무기간을 짧게 하니 시간이 없다 빨리 크게 먹자의 폐단이 생기고

근무기간을 길게하니 완전히 개인금고가 되어버립니다.
실록에 보면 이러한 폐단에 대해 꽤나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지만

누가 감히 임금의 먹거리에 대해 시비를 걸 수 있나요.
결국 조선조 내내 방납의 폐단은 어쩌질 못합니다.
 

문화나눔활동을 열심히 하는 바움갤러리

저 곰의 의미는 ?

 

관상감터 

 

공간신사옥은 그냥 넘어가고 나한테는 공간구사옥만 보입니다.

 정주영이라는 사람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현대그룹에서 현재의 사옥을 신축하면서

휘문고와 그 주변 창덕궁 바로 옆까지의  넓은 대지를 매입합니다.

그런데 그사이에 1977년 준공한 공간건축 사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김수근 선생이 설계하고 직접 현장감독까지 하며 지은 건물이지만

그 당시의 세태가 그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때가 아니고

새로운 그리고 커다란 것들이 더 각광받는 시절이었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간사옥도 어디론가 이전하겠거니 생각했을 겁니다.
당시의 정주영회장정도의 파워면 정회장이 그 건물터를 사서 다른 어떤 것을 짓겠다고 하면

설령 김수근선생이 그 건물을 안판다고 해도 버티지를 못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정주영은 공간건축사옥을 매입하지 않고

공간사옥이 가려지지 않게 현대건물을 짓도록 설계하라 하고

현대건물 신축간 공간건축건물의 파손을 염려해

공사간 공간건축과 현대그룹본사 사이에 돌담을 세우라고 지시합니다.

 

김수근 선생님이 암으로 투병하시다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현대가 이 자리에 들어설 때 당연히 공간사옥부지도 매입할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우리가 여기서 버티면 현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꼴이고,

주변 대지가 다 현대 땅인데 사실 여기도 현대 땅이나 다름이 없지 않느냐. 생각하여

현대에 사옥과 대지를 넘기려고 하셨다더군요.


 

정주영 한사람의 결정이 김수근의 작품을 지금도 유지하게 합니다.

 

현대사옥앞 너른 공간을 통해 공간사옥을 봅니다.

현대

지금의 현대. 선대회장보기 부끄러울 텐데...

 

계동궁터 

갑신정변때 고종이 잠시 피난와 있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고종 이명복

조선의 망국군주이자 허울뿐인 대한제국의 개국군주이지요.
무언가 변화를 하긴 해야 하는데

우유부단하고 피아구분이 않되고

어찌 어찌 자리를 잡으면 늘 개혁반대편에 선 인물

황현의 말에 따르면

친정 1년도 안 되어 대원군이 10년 동안 쌓아 둔 저축미가 다 동이 났고

그것을 賣官賣職으로 보충하려 했던 우매한 임금.

갑신정변 와중에도 좌고우면하다 결국 악수를 두고만 임금.


그와 국가의 종말이 그 스스로에 의해 결정된 곳입니다.

 

북촌문화센터 

북촌을 둘러보기 전에 맨 처음 다녀가야 하는 곳인데 마지막에 왔습니다.


1921년에 지어진 당시 탁지부 재무관 민형기의 저택을 복원한 한옥입니다만

1900년 이전에 북촌에 지어진 전형적인 양반집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2002년 서울시가 매입해서 북촌문화센터로 이용하고 있는...

근대 한옥 건축술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건축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입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발이 쳐져 있고 발사이로 사랑채가 보입니다.

그리고 솟대 같은 나무

 각종 사무실로 쓰이는 듯한 별당

 

뒤돌아본 사랑채

중문과 안채

홍보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는 행랑채로 들어섭니다.

 

 

 

 

 

한옥의 구조와 짓는 과정  

 

 

 

 

 

 그리고 홍보사진들

 

 

 

안채뒷면


그리고 사당을 개조한 것이라는 정자.

 사랑채에서의 다도체험후..  

 

사람없는 먹거리골목을 지나 운현궁으로 갑니다.

 

 

생각 없이 표를 끊고 운현궁 안으로 들어가다가..

 

 

 

 

 깜짝 놀라 뛰어갑니다.

 

안국역

 숨 한번 돌리고...

공항

너무 많은 것을 생각했던 길고긴 하루를 마칩니다...

Robert Alexander Schumann
Fantasia in C major Op. 17  1. Durchaus Phantasticsch Und Lidenschaftlich Vorzutragen 

Maurizio Pollini,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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