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포연대(고포연대)
신흥리에 있는 왜포연대를 갑니다.
우리 이름부터 정리하지요.
신흥리가 함덕과 조천의 일부를 떼어 분향할때까지 이곳의 이름은 잇개, 옛개입니다.
옛고자를 사용 고포라 하였지요.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왜포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왜놈이 자주 출몰해서 그렇게 불리웠다는 설명이 누군가에 의해서 붙습니다.
그러면 제주도 전역의 포구는 다 왜포여야 되지요.
그게 아닐겁니다.
소롬하다다는 뜻의 잇개가 왜포로
옛개가 고포로 한역되어
혼용되어 쓰이다가
왜포라는 이름이로 통용되었을 겁니다.
여기 연대를 보면 타원형으로 축조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여기는 옛모습 유사하게 복원되어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1970년대 부터 시작된 연대들의 복원형태는
연대의 일반적인 형태가 방형이었다 하면서
전부 획일적으로 만듭니다.
배령연대같은 경우는 옛사진에 타원형이었던 것이 확인됨에도 불구하고
방형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하는말이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쳤다고 합니다.
두모리 연대는 그 윗부분이 도대불이었습니다.
그것이 현실적 필요에 의한 자연스러운 변화였습니다.
연대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합방후 쓸모가 없어지니까 그 위를 개조해 배들의 입항을 도와줄 도대불을 만들었다
그 후 전기가 사용되면서 기능을 상실하여 이상태로 보존되어 있다고 해야 역사와 사회상에 대한 교육이 되는 것이지
그걸 궂이 원형도 아닌 연대와
원형도 그 위치도 아닌 도대불로 다시 세워놓고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나요?
권위 있다는 사람들이 또 이야기 합니다.
제주도의 방어체제는 3성 9진 25 봉수 그리고 38 연대다.
숙종 28년에 부임해서 제주도 전역을 순력했던 이형상목사가
남환박물에 봉수와 연대가 63곳이 있다라고 쓴 것에 근거한 것이겠지만...
세종때 제주안무사 한승순이 봉화후망이 22개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중때에서 숙종때까지 변화가 있었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러면 숙종이후에도 더 세워졌거나 줄었거나 하는 변화가 또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왜포연대 주변을 돕니다.
연대주변에 해자도 복원되어 있습니다.
연대 전방에 연대를 보호하는 진지와 같은 것이 두곳있습니다.
부근 전경들이 축조한 것도 아니고
부근 촌로들에 의하면
일제시대에도 있었다하니
한번 규명이 필요할 듯 합니다.
그런데 규명되기전에 주변개발에 의해 없어지는 것 아닐까
공연한 걱정이 앞섭니다.
Beethoven
Orchestra of the 18th Century
Frans Bruggen, co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