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25....
제주시 중앙로타리 인근 화단에 심겨진 꽃입니다.
왜 여기 있냐고요?
동문로타리에서 올레 17코스를 마치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고 중앙로타리 버스정류장으로 오다가
몇장 찍었습니다.
아직 어두워 지지 않았는데
버스를 타려니 조금 아쉬워서
용연까지 다시 가서 복각하여 놓은 마애를 좀 찬찬히 보고 싶어지네요.
제주체신청앞
옛 성주청터를 지나고
목관아앞을 지나고.
옛시청앞을 지납니다.
옛 서문다리자리에 핀 꽃도 찍고
용연야범 홍보사진도 찍고
용연으로 통하는 절동산 골목 좌우도 찍습니다.
용연 마애들을 복각하여 세워둔 곳입니다.
마애명들을 둘러봅니다.
찬찬히...아주 찬찬히...
혹시 무어라 써있나 궁금하시면....
놀러오세요.
시간이 꽤 늦었는데..
가시락당에 가서 용연을 굽어보다 보니
용연 그 자체를 한바퀴 돌아보고 싶어서..
이리저리 다닙니다.
돌아나옵니다.
서자복.
복신미륵이라고 하지요.
이곳 미륵은 애기와 함께 있는 할망이라하고
건입동에 있는 동자복은 하르방이라 합니다.
예전에는 옆에 있는 애기돌머리부분에 걸터 앉아 빌면 득남을 시켜준다하였는데
요사이는 앉으면 흉하다하니 빌수도 없네요.
용화사.
옛 해륜사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태고종 절입니다
선반수 표식
비석에 보면 물을 파는데 든 돈을 낸 기관과 개인의 이릅이 적혀 있습니다.
소화 10년 그러니까 1935년 중추에 용담리신교동주최로 수축되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곳 병문천이 복개되기전 이자리에 부러리로 연결되는 배고픈다리가 있었죠.
그 서북쪽에 붙어 있던 물입니다.
이물은 주로 무근성사람들이 먹었고
조금더 바닷쪽에 있는 중물이라고도 하던 한두기물은 한두기사람만 먹었답니다
방사탑과 탑동유래설명비
지금 이자리가 아니고 무근성 북쪽지역이 예전에는 인가가 없고 밭이었는데
강한 서북풍이 불어오고 자주 해일이 넘치니까 마을 북쪽 좌우에 탑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이 탑바리, 탑알이라고 불리었답니다.
바다를 매립하여 지금은 그 흔적이 없어
옛것을 오늘에 되살리는 의미에서 동민들 뜻을 모아 탑을 세웠답니다.
올레표식따라
무근성마을 안으로 들어갑니다.
무근성은 옛읍성을 말합니다.
그 구역은 말하는 이마다 조금씩 다릅니다만
새로축조한 성 이전성이라하고 민가로 말미암아 옛성의 흔적이 사라졌다합니다.
증보탐라지에 古州城 : 주성 서북에 옛성터가 있으니 陳城洞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새성은 어느 것이고 헌상은 어느 것이냐에 대해 말도 많아요.
대다수의 의견이 병문천냇가로 둘렀던 성의 관리가 어려워지자 옛 제주의료원 서녘길로 해서 김판규외과 있는데로 성을 쌓았다
그러므로 병문내위 한질과 탑알로 난 작은 길인 구린질 사이를 무근성이라한다고 합니다만...
하여간 무근성이라고 하는 마을 안길을 지나
옛 서문자리인 진서루표식에 왔습니다.
누구는 이것도 잘못되었다 하는데
그럼 제대로 된 게 무었인가요?
왜 바로 잡지 않나요하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나하고 말도 않하는 사람이 생각납니다.
점집들 골목을 지나
목관아지 성벽에 붙어 있는 이익적거터표식.
관덕정 공사한다고 꽁꽁 싸메어놔서 안내판을 다시 찍고
다시 올레코스를 벋어나서
목관아지 정문을 지나
원병들이 주둔하던 좌위랑터
1902년 제주우체사가 처음 설립되어
제주최초의 전신전화업무가 시작된 곳
칠성골입구
한때 제주 최대의 번화가이었던 곳
중앙로 지하상가를 거쳐 동문시장앞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버스정류장을 지나쳤군요.
다시 또 빠꾸
집으로
룰루랄라 즐거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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