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룡사
장군천에서 부터 용틀임하듯 마을안길을 굽이굽이 돌아갑니다.
용장굴, 흥룡사라고 쓴 표지석이 나옵니다.
용이 숨어 있는 골짜기랍니다.
예전에 이곳에 미륵불을 모시던 용장사라는 절이 있었답니다.
용장사!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요?
우선 경주 남산 용장골 용장사.
김시습이 은둔하여 금오신화를 썼다는 곳.
용장사터에 있는 머리부분이 없어진 삼륜대좌불의 모습이 특이 하고
그 절터 바위위로 올라가면 볼 수 있는 4.5미터의 삼층석탑.
한국에서 가장 높은 탑인데다
기단 2단 중 한 개의 기단만 쌓아 산전체가 이 탑을 떠받치는 일단기단의 역할을 하게 하여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 된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산전체가 불상이요 탑인 경주 남산이 생각나네요.
또 한곳 떠오르는 용장사.
역사 속 또 하나의 항몽유적인 진도 용장산성 옆 용장사.
옛 모습을 보수한다고 시멘트로 덕지덕지 바른 석불좌상의 참담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항몽유적이라고 하니 이 마을 인근 고성리에 항파두리성이 있지요.
이곳 도평에도 비슷한 이름 홈바두리라는 구릉지가 있습니다.
지금 이 용장굴이 사라마을 북쪽이 되는 것이고 홈바두리는 사라마을 남쪽에 있습니다.
그곳 언덕에서 나오는 물로 사라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하였던 곳입니다.
홈바두리도 있고, 용장사도 있었고, 장군천도 있고….
내가 이쪽 방면에 권위가 있다면 무언가 스토리를 만들어 우기면 넘어가겠는데요…..
앞에 있는 절집 생각은 않하고 멀리 있는 절만 생각하네요.
그 용장사는 옛날 옛날 없어졌고
지금은 흥룡사가 있습니다.
제주 양로원쪽 언덕으로 올라가 절 전체를 바라봅니다.
차분하게 절집을 한번 보겠습니다.
흥룡사..
언젠가 용장골에 숨어있는 용이 크게 기운 떨쳐 일어날 날을 기다리나 봅니다.
흥룔사는 1933년 위봉사 제주도평포교소로 설립되었다가 1943년에 조계종 백양사 포교소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포교사로 부임하셨던 스님이 4.3때 살해되고 이곳은 다시 폐허가 되었습니다.
1952년 덕종스님이 오셔서 흥룔사라 이름 짓고 절을 재건하였다 합니다.
그러나 대웅전을 중건중 스님이 1972년 돌아가시고
당시 이 절의 큰 지원자이신 당시 78세의 복덕행보살이 불사를 계승했으나
1987년 다시 화재로 사찰이 전소되었답니다.
복덕행보살이 다시 마음을 다잡고 1989년 지금의 대웅전을 완공합니다.
지금은 지화스님이 주지로 계시는 태고종 사찰입니다.
일주문은 없고 바로 사천왕문이 나옵니다.
호지문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
수미산 정상의 중앙부에 있는 제석천(帝釋天)을 섬기며,
불법(佛法)뿐 아니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호법신이신 사천왕이 그림 속에 서 계십니다.
동방지국천왕
안민(安民)의 신인 지국천왕은 선한 자에게 상을 내리고 악한 자에겐 벌을 주어 항상 인간을 고루 보살피며 국토를 수호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팔부신장의 '건달바'와 '비사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서방광목천왕
몸은 여러 가지 색으로 장식되어 있고 입을 크게 벌린 형상을 함으로써, 웅변으로 온갖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고 합니다. 또 눈을 크게 부릅뜸으로써,
그 위엄으로 나쁜 것들을 몰아낸다고 하여 '악안', '광목'이라고도 불리웁니다.
광목천의 근본 서원은 죄인에게 벌을 내려 매우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해 도심(道心)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라 하며
팔부 신장의 '용'과 '부난다'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남방증장천왕
자신의 위덕을 증가하여 만물이 태어날 수 있는 덕을 베풀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팔부신장의 '구반다'와 '벽협다'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북방다문천왕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라고도 하는데,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 하여 '다문'이라고 합니다.
암흑계의 사물을 관리하며 팔부 신장중 '야차'와 '나찰'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대웅전으로 가는 길
한쪽으로 도량을 고풍스럽게 하는 빽빽한 대나무 숲이 있고 또 한쪽으로는 산뜻한 요사채가 있습니다.
물이 말라버린 작은 연못.
그 옆 바위위 벌겋게 파여 쓰여진
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사람은 한순간에 삶과 죽음에서 벗어난다.
또는 모든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은 삶과 죽음이 하나다. 라고 해석되는 법화경의 한 구절...
불도를 수업하기위해 당으로 가던 두 번째 길에서 강을 건널 배를 기다리는 어느 날 밤
땅막인지 알고 유숙한 곳이 시체를 보관하는 곳이고 바가지에 담긴 물이라 생각하고 마신물이 해골에 괸 썩은 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큰 깨달음을 얻고 돌아온 원효가
지방의 촌락이며 시장거리며 뒷골목을 승려가 아닌 세속인의 모습으로 무애가를 지어 부르고
가무와 잡담으로 서민들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에게 가슴 절절히 와닿는 생기를 얻게 하고,
염불을 따라 부르며 정토에 때어날 희망을 키우게 하였다는 일화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 옆에 누군가 따라 쓴 금강반야바라밀경의 한 구절..
그리고 마애관음상
아랫부분이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탑을 한바퀴 돌고
대추나무
다산을 기원하는 여염집에나 심는 거지 절집에 웬 대추나무?
이유가 있겠지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좌우 협시하고 있는 가운데 계신 석가모니부처님께 인사드리고
불전 내부를 둘러봅니다.
대웅전 문밖으로 산신이 보입니다.
부처님을 모시고 있군요.
부처님 오른 무릅 뒤로 보이는 토굴
그리고 그 앞에 나와 계시는 미륵불 3기
어디서 어떻게 오신 부처님인지는 모르지만 제주 무불시대에 땅에 묻혀 계셨거나
이 토굴 속에서 누군가가 모셔왔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彌勒佛, 未來佛, 즉 먼 훗날의 부처님이십니다..
언제나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부처님
오직 어질고 가난한 사람만을 챙기시는 부처님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시는 부처님.
억겁의 세월이 지나고
천지가 개벽한 다음
이 지구상으로 내려와
뭇 중생들을 제도할 부처님이십니다.
그 때가 언제..
56억7000만 년 후에 .....
지금은 도솔천에서 준비 중에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슬프고 허망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입니다.
결토 도래할 수 없는 이야기.
결국 세상의 모든 질곡을 받아넘기며 하루가 천년 같은 억겁의 시간이 지나야 나를 구원할 부처님이 오신다는 건데...
그때까지 우리 남아있을 수 있긴 한건가요?
미래불 기다리기 너무 힘드니 현세불은 장엄하게 장식하지만
미륵불은 항상 무언가 부족한 모습의 형상 이나 고졸한 형상만이 새겨지는 것인가요?
현세불은 항상 결가부좌해 계시고
언제 오실지 모를 미륵불은 앉아계신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이 또한 무슨 연유인가요?
미륵부처님을 뜻하는 영어 Meitreya,는 개신교에서 이야기 하는 메시아 Methia, Mesiah 와 동일한 어원이라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약수터에 가서 물 한잔 마시고
머리만 남아계신 부처님의 뻥뚤린 가슴에 같이 가슴아파하고
절집에서 나옵니다.
팔만대장경 八萬大藏經 (1998, 삼성뮤직) 김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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