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리 마을입니다.
일과리 날뤠 장수원 일렛당을 블로깅할 때
일과리의 옛지명이 날뤠 또는 날웨라고 했습니다...
이곳의 옛 이름은 웃날뤠입니다.
이름에서 아시겠지만 일과리 일부가 보성리 일부와 합쳐서 새로운 마을을 일구게 되어
고종 원년(1864년)에 지세가 평지라는 한자표기 신평으로 부르게 됩니다.
이 마을 어르신들이 가장 자랑하시는 열녀오씨문입니다.
안내판을 직접 보시고 한번 둘러 보시지요.
마을로 들어와서 경로당 앞 비석거리를 지나고
옛도요지를 잠시 들러봅니다.
신평리는 제주도에서 가장 많은 석요가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곳곳에 터만이 남아있습니다.
이곳도 전형적인 제주 옹기가마 형태로 초기 옹기가마중 보존 상태가 양호해 학술적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하여
예전에는 주변도 정비해 놓고 안내판도 세워놓고 했는데 지금은 안내판도 다 지워지고 전혀 정비가 않되어 있습니다.
이곳 분들이 도요의 전통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지금 대다수의 사람들은 제주 최대의 도요지가 구억인 줄 알고 있고
구억에서 옹기를 굽는데 필요한 진흙을 이곳 신평마을에서 구하였다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1992년 폐교된 신평분교장 자리입니다.
독지가 재일교포 고려경님의 송덕비만 허망한 표정으로 서 있습니다.
웃보입니다.
이곳은 이 지역 훈장을 지내셨던 고영신님의 출연으로 조성된 못입니다
기념비에 천리피택이니 은존감당이다 영세불망하겠다. 했지만 누가 기억해 줄까요?
이 생각 저 생각 걷다보니 신평리 본향 일뤠당입니다.
다가오는 길의 일부가 올레코스와 겹치는 군요.
나는 웃보를 둘러보고 북동쪽으로 해서 왔는데 신평마을 서쪽 뒷길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이 올레코스로 되어 있네요.
올레꾼들이 찾으려 하면 금방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만...
아마 다들 무심히 스쳐가실겁니다.
저지 오름허릿당에서 가지갈라온 당으로 저지오름허릿당의 따님이
일뤠할망으로 독좌해 계시는 곳인데 제단에 궤는 4곳이나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당은 이재수의 난 3년 전에 현 씨 할머니가 세운 당인데
이재수가 신축난리때 출정하기전 이곳에서 당제를 드렸답니다.
그 때 성교문이라는 자가 이재수를 잡으러 신평리로 들어왔는데 당신의 도움으로 위기를 면하였다 합니다.
당을 둘러보고 4·3당시 무장대들이 은거했던 역구왓 무장대 매복지역을 찾아가서 돌담을 돌아봅니다.
요새는 4.3당시 경찰과 토벌대에 의한 피해는 누가 들어주던, 않들어주던 이야기할 수 있는데
무장대에 의한 피해는 밝히려는 의지도 없고 말하기도 이상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현상이 4.3실체규명에 도움이 될까?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대정성지가 있는 한굴밧쪽으로 해서 보성쪽으로 갈까하다가 구억리 쪽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신평리, 구억리, 보성리 합쳐서 약 380만 평방미터의 영어교육도시 현장이 보이는 군요.
영어교육도시에 대해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대정읍 일대 주민들은 영어교육도시로 인해 낙후된 대정지역이 한 단계 발전하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답니다.
잘 되길 바랄뿐입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구억리 공동목장부지에서 소를 기르던 사람들은
1㎡에 겨우 1353원꼴의 보상만을 받고 최소한의 대체 부지 제공도 없이 떠나라는 문서를 지난 3월말 받았다 하니
과연 주민들 바람처럼 낙후된 대정지역이 한 단계 발전한다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이 지역에서 농사짓고 살아오던 주민에게 득이 되는가 하는 궁금증이 듭니다.
이런 저런 생각속에 저기 보이는 산방산과 단산도 그 답은 못할거다라는 생각에
그저 처다보기만 할 뿐입니다.
Gabriel Faure
Romances sans paroles (3) for piano, Op. 17
침묵의 로망스
Kathryn Stott,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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