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김녕마을로 내려옵니다.
김녕중학교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제주도 각읍면소재지에 일본개국신이라 하는 아마데라쓰 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시는 일본의 신사를 세워 우리 민족에게 참배를 강요할 때
유독 구좌면에 대해서만 면소재지(평대)에 추가 하여 이곳 김녕에도 신사를 세웠습니다.
그것도 하필 김녕방호소와 수전소의 무사들이 활쏘기, 말달리기 하던 군사훈련장터라 하여 속칭 사장빌레라 불리우던 곳과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本鄕堂이 있는 큰당자리에 으리으리한 도리(鳥居)와 神明神社를 세웠답니다.
해방이 되자마자 마을에서 신사를 박살내고 그 자리에 재일동포의 지원을 받아 제주동쪽에서는 제일 먼저 중학교를 세웠습니다.
김녕중학교를 세울때 도움주신 분들의 공덕비입니다.
학교 동쪽문으로 나와서 본 입산봉입니다.
김녕리에는 당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큰당, 궤눼깃당, 노모릿당, 남당하르방당 모두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중 본향당인 큰당입니다.
사장빌레에 위치해 있다하여 사장당이라고도 한다 합니다.
팽나무를 신목으로 삼고 있고 제단과 제장 바닥은 모두 시멘트로 되어 있습니다.
출입구 왼쪽 담에 "1973. 7. 11. 한임생 목돈단" 이라고 새겨 놓았습니다.
당을 새롭게 단장할 시기의 당시 심방이름이 한임생인가 봅니다.
궷문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강남 천자국 셋 아기 관세전 부인을 모시는 당입니다.
이 신은 김녕 사람들의 생산 물고 호적을 관장합니다.
제일은 1월 13, 14일(대제일), 7월 13, 14일(마불림제), 9월 13, 14일(시만국대제) 등이고 당제는 3, 4년에 한번 거행한다고 하고
당제를 올리는 시간은 정월 13일 저녁과 14일 새벽 이른 아침이랍니다.
당제를 올리고 난 며칠 뒤라서 그런지
메를 쏫아놓은 것이 그냥 있습니다.
돌담을 따라
또 돌담을 따라 가다보니
또 다른 돌담위로 절집이 보입니다.
금용사입니다.
일제시대에 입산봉을 소유하고 계시던 분의 부인이
요절한 동생을 위해 암자를 지어 시작한 곳이지요
금용사에 대해서는 별도 블로깅하겠습니다.
금용사에서 해수욕장쪽으로 갑니다.
어느집 정원에 전정된 나무..
국번이 두자리면 언젯적 이더라..
김녕리 표석
파여진 자리에 東이라고 쓰여있었겠지요.
마을안길 따라가 바다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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