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den of Earthly Delights, detail of right wing(1503-1504) Museo Nacional del Prado
Hieronymous Bosch(1453-1516)
네덜란드 출생인 보쉬BOSCH의 그림을 보다보면
과연 이 사람이 15세기에 살았던 중세인이 맞는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의 그림은 잔인 하면서도 희화적인 상상력으로 가득차 있고
악마적인 기운과 현실적이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서도 현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스페인의 필립왕은 취향이 독특했던지 보쉬 그림의 열광적인 지지자이가 최대 콜렉터였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스페인의 프라도 국립 미술관은 보쉬의 그림으로 가득 합니다.
스페인의 저 유명한 초현실주의 작가인 달리가 400년전 그의 선배의 작품에서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할수 없을 겁니다.
위 그림은 환희에 찬 동산이라는 보쉬의 작품중(3면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우측 그림의 디테일 입니다.
사람들은 악기에 묶여있거나 메달려 괴로워 하고 악마들이 연주하는 음악소리에 귀를 막으며 비명을 지릅니다.
인간들의 방종과 퇴폐스러움을 경고하는 의미이자 그림 곳곳에 속담을 이용한 장면을 그려내어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그의 작업 방식은 약 50년후 역시 같은 네델란드 화가인 브뤼겔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중세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새로운 문화인 르네상스가 꽃 피우기 이전에 보쉬같은 혁명적인 작가들의
등장으로 유럽의 회화사는 더욱 비옥하게 되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Maestro del Trionfo della Morte, Trionfo della Morte, 600x642 cm, inizio XV secolo
1450년경 제작된 '죽음의 승리란 제목의 프레스코화입니다. 현재 시칠리아 지방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회칠된 벽체에 수성물감으로 채색된 작품이라 보존 상태가 좋지 못하며 작가도 미상인 작품입니다만
이야기의 구성이나 표현 기술을 볼때 상당한 재능있는 작가의 작품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한 작품입니다.
죽음의 사신인 해골이 말을 타고 검은 화살들을 쏘아댑니다.
그 화살은 가히 치명적이어서 교황도, 황제도, 추기경도, 공주도 피할수가 없습니다.
화면 우측에는 아직도 분위기 파악이 않된 악사들이 분수대에 모여 흥겹게 악기를 연주하고 있고 여인 세명은
우아한 포즈를 취한채 바로 옆에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린 죽음의 사신은 바로 흑사병이었습니다.
아시아 내륙지방에서 옮아간 쥐벼룩으로 감염되는 흑사병.
감염되면 불과 3~4일 만에 40도가 넘는 열병으로 고생하다가 피부가 검게 변하며 죽는 당시로서는 불치의 병.
유럽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간 이 무서운 질병은 당시 중세인에게는 하늘에서 내린 무서운 벌이자 피할수 없는
숙명이었을 겁니다.
화면 좌측을 보시면 비교적 저렴한 의상을 걸치고 있는 평민들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죽음의 사신이 지나간 뒤에도 그들은 기도로 이 천형을 모면한듯 보입니다.
특히 가운데 막대기를 들고 있는 이는 바로 이 그림을 그린 작가인데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그림에 그려넣은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죽는 이들은 대부분 교회의 높은 성직 자들이나 귀족들입니다.
이는 흑사병의 무서움을 표현하는것 외에 계급사회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표현한것이라고 볼수 있읍니다.
Trionfo della morte, Clusone, Italy XV century on the external wall of the church of Disciplini
역시 15세기에 교회벽에 그려진 '죽음의 승리'라는 작품입니다.
석관안에는 이미 많은 교황과 왕들의 시신으로 가득하고 총과 활로 위협하는 사신들의 아래에는
무릎 꿇은 왕과 귀족들이 자신의 생명을 구걸하며 금은 보화를 보이며 아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생을 영위하면서 모든것을 누리려면 가장 기본이 되는 사항이 바로 '살아있는것'이겠지요.
돈도, 명예도, 사랑도 살아있지 못한다면 모두 쓸모가 없는것일 겁니다.
의료기술이 발달 하지 못하고 수없이 크고 작은 전쟁에 참가해야만 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살아있음은 가장 큰 소원이자 목표였을 겁니다.
이러한 인간들의 가장 큰 소망을 담보로 교회는 많은 돈을 모을수 있었고
그들은 더 큰 교회를 짓고 더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구원해준다는 명목으로 신도들을 늘릴수 있었습니다.
Clusone danza macabra detail
우측에 팔짱을 끼고 즐거운듯 나란히 걸어가는 해골을 억지로 외면하며 걷는 남자의 표정이 재미있습니다.
중세인들에게(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 가지지만) 죽음은 항상 가까이 있었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에 대한
열망은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요구라고 할수 있습니다.
당시의 교회는 전쟁은 물론이고 흑사병이 기독교 신앙을 지키지 않는 인간들이 저지른 죄를 벌하기 위해
하늘이 내린 천벌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위와 같은 사람들의 죄의식을 불러일으키고 두려움을 유발시켜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었습니다.
교회안에서 안식을 찿고 무서운 악마의 저주를 교회가 지켜준다는,,
이러한 교회의 대대적인 공포분위기의 조성은 죽음보다는 사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사람들을 교회의 울타리안에 단단히 가두어 놓을수가 있었던 겁니다.
이러한 그림들은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모으는데 큰 역할들을 하였습니다.
Black Death
죽음의 관위에 커다란 낫을 들고 서있는 사탄은 기세가 등등 합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천사들마저 사탄을 피해 하늘위로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Black Death흑사병입니다. 흑사병의 공포가 얼마나 컸던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교회는 스스로 흑사병의 안전한 피난처라고 선전합니다.
역사적 사실로도 남아 있지만 이시기 교황, 주교, 사제등이 모여사는 수도원은 치사율이 가장 높았던 지역 입니다.
농촌보다는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더많이 죽은것과 같은 맥락 입니다.
흑사병이라는 재앙을 교세 확장의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교회는
스스로 가장 큰 재앙을 자신에게 불러왔던 겁니다.
중세말 흑사병이 한참이던 시절 시신을 화장했던 곳의 사진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이사진으로도 경악할 만 합니다.
흑사병은 유럽인들의 아시아권 진출과정에서 본인들이 스스로 묻혀온 재앙이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타인의 것을 탐내지 않는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었다면
어쩌면 이런 큰 재앙은 피할수도 있었을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생명. 자신의 생명도 타인의 생명도 중요한것입니다.
Pieter Bruegel the Elder(1525-1569)
The Triumph of Death (1562)
피터 브뤼겔은 보쉬를 잇는 아주 특별한 작가입니다.
그의 그림들은 보쉬의 영향하에 있다고 할수 있지만 보쉬 보다 더 풍부하고 더욱 교훈적인 그림을 그리는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나무 판넬에 작업한것들이 많은 편이라 지금까지도 보존성이 좋고 그림이 선명한것이 또다른 특징 입니다.
이그림 역시 '죽음의 승리'라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좌측 상단에는 악마들이 죽음의 종을 열심히 울리는 장면이 보입니다.
우측 상단에는 이미 악마들이 사람들을 십자가에 메달거나 목을 메달고 있습니다.
우측 하단은 조금 특이한 장면입니다. 청년하나가 연인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데
바로 뒤에는 사신이 같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셀수없을정도로 쌓여있는 시신들위로 죽음의 사신들이 밀려 들어 옵니다.
몇몇이 저항 하기는 하지만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죽음의 그림자는 거침없이 밀려 들어오고
죽음의 승리 입니다.
인간은 죽음앞에 무기력 하기만 합니다.
아름다운 귀부인에게는 해골이 들어간 스푸가 제공되고 이를 보고 놀라 도망가는 그녀를 희롱하는 사신들.
관뚜껑을 방패삼아 대기하고있는 질서 정연한 죽음의 사신들은 여유가 있어보입니다.
살겠다고 커다란 나무상자안에 몰려 들어가는 인간들은 그것이 덫이라는걸 알지 못합니다.
커다란 수레에 가득 담긴 해골은 사신들의 전리품입니다.
간신히 수레밑에 몸을 숨긴 사람들도 자신의 운명을 예측하기 힘들 겁니다.
갑옷으로 완전 무장한 왕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닌듯, 금화와 은화는 이미 사신들의 차지 입니다.
죽음 앞에서 권력이나 재화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소용이 있다면 조금더 좋은 묘자리와 많은 문상객수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구도 피해갈수 없는 죽음,
유럽인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대한 미련을 이렇게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표현 했다면
아시아에서는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래의 글을 잠시 앍어 주시기 바랍니다.
오 고귀한 집안의 사람이여, 투영들이 이와 같이 나타날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무의식의 성향들로 이루어진 사념체이기 때문에 설사 당신이 죽임을 당하고
여러 조각으로 잘린다 해도 당신은 죽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진실로 비어있음의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의 지배자들 또한 당신 자신의 마음의 광휘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아무런 견고한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비어있음은 비어있음에 의해 해침을 당할 수 없습니다.
외부에서 나타나는 평화나 분노의 신들, 피를 마시는 헤루카들, 동물의 머리를 한 신들, 무지개 빛들
그리고 죽음의 지배자들의 무시무시한 형상 등은 아무런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그들은 다만 당신 마음의 자발적인 활동으로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이런 사실을 이해한다면 모든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당신과 분리할 수 없는
하나가 되어 당신은 깨달은 자가 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이와 같이 알아차린다면 그들은 당신의 원불이 될 것입니다.
티벳 사자의 서 - 열넷째 날(8세기)
15세기의 유럽인들의 "죽음의 승리"라는 그림들을 보다가 위의 '티벳 사자의 서'(8세기)라는 글을 읽다보면
사고의 깊이와 현상에 대한 반응 방식이 이렇게나 많이 틀리는가 하는데 충격을 받을 정도 입니다.
무려 700년이라는 세월의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죽음을 맞는 방식이 이정도로 많은 차이가 있을수 있는 것인지.
이러한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바꾸지 못할겁니다.
그들의 철학이 에피쿠로스 와 플라톤 그리고 사르트르에서 해방되지 않는한은.
The Third of May
1808년 5월 3일 프랑스 기병대는 스페인 마드리드 시내로 들어와
나폴레옹군에 결사 저항하는 민병대들을 처형하기 시작 합니다.
고야는 이 처참한 광경을 캔버스에 옮겨 당시의 상황을 전하게 됩니다.
이전의 많은 죽음들이 질병과 굶주림으로 인한 거였다면 지금부터는 인간의 죽음은 인간에 의해서 더 많이 진행됩니다.
지금까지는 가장 무서웠던것들이 자연과 하늘이었다면 지금부터 그 두려움의 대상은 나와 같은 인간으로 바뀝니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 흑사병도 인간들의 욕심에 의한 것이라 할수 있겠지만 - 자행되는 죽음.
에스파냐인들의 많은 죽음은 이전의 흑사병의 승리와는 달리 인간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그것은 바로 나폴레옹의 몰락이었습니다.
에스파냐인들의 '죽음의 승리'라고 할수 있을 겁니다.
Pablo Picasso - Massacre in Korea (1951)
피카소가 그린 한국의 학살이란 그림 입니다.
강대국의 대리전(저의 개인 관점입니다)으로 벌어진 동족간의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또한 외국인들이 이땅에 들어와 얼마나 많은 우리 민족을 학살했습니까?
그분들의 그 비통한 죽음이 아직 승리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땅에서는 , 아직 까지는.
언젠가 그분들의 억울한 죽음이 승리할날이 오겠지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승리는 역사의 당연한 보상이자 입증된 사실 이니까요.
베트남전.
어렸을때 부터 저는 이사진을 보며 사람의 잔인함에 치를 떨곤 했습니다.
당당하게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수 있는자. 묶인채 자신의 죽음을 공포에 떨며 기다릴수 밖에 없는자.
둘과는 아무 관계 없다는듯 바라보는 한사람. 그리고 이런 장면을 기록하는자.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수 있는지.
그들도 우리같이 대리전을 치루었던 같은 민족의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의 베트남을 보면 오히려 우리들보다 잘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경제적 수준이 좋지는 않지만 그들은 진정한 독립을 한듯한 나라라는 인상이 많아서 일는지도 모릅니다.
2000년 9월28일 알 아크사 인티파다가 시작된 이후 2004년 9월 25일까지 이스라엘 점령군은
209명의 여성과 여자 어린이들을 포함해 3,334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살해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424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자동폭탄설치, 미사일 폭격 등의 방법으로 암살 당하였습니다.
또한 같은 기간 약 53,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부상을 입었으며, 약 2,500명이 영구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부상자들 가운데 약 1만명이 어린이라는 사실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지금 그들이 살던곳에서 몇천년을 살아왔던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은 2차 대전후 그곳에 이주 하여 살았습니다.
그들이 팔레스타인들을 조용히 보이지 않게 학살 하고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눈도감지 못한채 숨진 딸을 손수 입관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수나 있을까요?
수 많은 그들의 죽음이 승리할수 있을까요? 저는 그들이 승리 하라고 응원 할겁니다.
2974명이 숨졌습니다. 2001년 9월 11일에 뉴욕에서
3025명이 숨졌습니다 . 2003~2006년 3년간 이라크에서 미군들이.
미국은 수많은 청년들의 죽음의 댓가로 승리하였나요?
NOT YET,
이명복 죽음의 승리
민중미술작가인 이명복작가의 작품입니다.
벌거벗은 포로와 전쟁의 참상을 배경으로 부시, 고이즈미등 현시대의 문제아들을 그려 놓았습니다.
흑사병, 나폴레옹, 두번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을 이은 지금의 이슬람권과의 전쟁등..
참으로 인류의 치부를 드러내는 과정이어서 글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니, 글쓰기가 어려운것이 아니라 쓰기가 싫었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살벌한 살육과 죽음으로만 일관했다면
아마 인류는 벌써 옛날에 멸종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류가 그나마 삶을 영위하고 무언가 쓱싹 만들어 내기도 하며 그나마 종을 이어가게한 원동력은
바로 아래에 있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해준 사람들....
Fancy dress: the former King of Pop is celebrating 25 years since the release of Thriller
그가 빌리진이라는 음악을 들고나와 뒷걸음질 치는 댄스를 보여줄때 모든 인류는 그를 보고 행복해 했습니다.
흰장갑에 멋들어진 춤과 특유의 바이브레이션으로 들려주던 그의 댄스와 발라드곡들은 전쟁과 죽음으로
피범벅이던 지구에 내려진 한줄기 축복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는 얼마전 축복을 내리던 천사를 하나 잃었습니다.
그는 천사이자 예술가 였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내부의 야수성을 잠재울수 있었고 잠깐이지만 이웃을 생각 할수도 있었습니다.
Yor're not alone
잭슨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있자나요.
We're not alone
당신은 갔지만 우리는 외롭지 않아요. 당신의 노래가 있으니까.
Thanks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낮춤이 선행된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온는데 칠 십년 걸렸다."
죽음의 승리는 여러가지로 해석 되어 질 수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죽음 앞에서 느껴지는 감정도 그만큼 다양해 질수 밖에 없는겠이겠죠.
우리 시간이 나고 여유가 조금 있다면
나와 이웃의 죽음에 대해 쟁각해 보야야 하겠습니다.
'모셔와 가꾼 아뜨리움 > 그림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Marc Chagall (0) | 2009.08.10 |
---|---|
Modigliani, Amadeo (0) | 2009.08.10 |
Renoir (0) | 2009.06.29 |
Faure : Penelope - Prelude (0) | 2009.06.10 |
밀레의 만종 (0) | 2009.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