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와 가꾼 아뜨리움/그림읽기

고통의 위장

하늘타리. 2008. 11. 27. 21:07

[한국화가 남학호
아내 사고 후 밝아진 그림 ‘고통의 위장’
新 LOVE STORY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서른 일곱에 세상을 떠난 그녀를…

웃으며 여행가방을 싸더니

시신으로 돌아온 그녀를…

7년째 미국과 소송 중인

의문의 교통사고 주인공 그녀를…

돌과 나비와 그림과

그리고 나를 사랑했던 그녀를…

2000년 8월 5일 오전 2시. 한 통의 국제전화는 한 남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안 좋은 소식을 전하게 돼서…."라고 시작된 송신자의 목소리는 아내의 죽음을 알렸다.

비몽사몽, 황망하게 받은 전화. 남자는 믿을 수 없었다. 며칠 전만 해도 밝은 얼굴로 여행 가방을 챙기던 아내였다. "무슨 소리하십니까? 다시 한번 확인해 보세요. 그럴 리가…."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한국화가 남학호(48)는 "상처는 자기 몫이다. 안에서, 깊은 속에서 덧날 뿐이다."라고 했다. 그는 "치유가 안 된다. 치유를 기대하지도 않는다."고 절망했다.

'조약돌 화가' 남학호의 작업실 한쪽에는 큰 수족관이 있다. 종개·떡납줄갱이·자가사리 등 우리 민물고기를 기르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생명체가 있다. 바로 나비다. 한쪽 벽면을 채운 작품 속 나비들이다. 구형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마치 화실을 날아다니는 듯하다.

그는 인터뷰 도중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복받치는 감정을 어찌할 수가 없어 인터뷰가 중단되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분노하고 있었고, 슬퍼하며 아내의 빈자리에 고통스러워했다. 아내의 사인은 사고사였다.

당시 미 국방부 초청으로 워싱턴을 방문해 도착 1시간여 만에 숙소를 향해 달리던 택시에서 떨어져 숨졌다. 시속 115㎞로 달리는 택시에서 몸무게 45㎏의 여자가 혼자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당초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하려던 경찰은 유족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재수사를 벌였으나, 사건 발생 9개월 만에 자살도 타살도 아닌 사고사로 결론 내렸다.

의문을 파헤치기 위해 택시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그런데 사건을 맡은 미국 변호사가 돈을 돌려줘요. 너무 힘들다는 것이죠" 이제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적어도 세인들의 관심에서는 멀어졌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아직도 투쟁 중"이라고 했다.

그의 옷장에는 아직 영정사진이 있다. 애들이 볼까봐 깊숙이 숨겨놓은 것이다. 화실 옆 빈 방에는 아내의 짐을 모두 옮겨놓았다. 책과 화장품, 심지어 속옷까지 그대로 있다. 화실에 하루 종일 왕왕거리는 구형 라디오도 아내가 아끼던 것이다.

그는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잊어요. 기억 속에서 없어질까봐 두렵습니다. 좀 더 살갑게 대했더라면…." 차라리 병으로 죽었다면, 의문 없는 죽음이었다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의 작품이 더 화려해졌다. "그 일 이후 그림이 밝아졌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예전에는 단색에 어두운 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돌이며, 물이며, 나비의 색깔이며 모두 화사해졌다. 일종의 반작용이다. "주변의 동정도 길어지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말대로 그는 '위장'하고 있었다.

"술을 마셔도 급하게 마시는 버릇이 생겼어요" 어설프게 마셔 고통스러우니 차라리 폭주로 잊자는 생각이다.

작품 속에 또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 나비다. 예전에는 그림 속에 여럿 등장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만 나온다.

"사람들이 물어요. 왜 나비가 나오느냐고. 이제야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건 제 아내입니다." 그러고 보니 돌에 앉은 나비의 눈을 가만히 보면 여간 황망하지 않아 보인다. 중국 그림에서 나비는 80세를 뜻하는 질수(질壽)로 읽는다. 작품 속에서나마 오래오래 살라는 뜻이다. 서른일곱 나이에 비명에 간 아름다운 사람, 그래서 두 마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사이트(www.koreacolor.com)에 '나비의 꿈'이라는 글이 있다. '나비는 날아갔다. 이승의 인연은 흔적 없이 그야말로 조용히 사라졌다. 나비는 생명이다. 돌과 나비는 이원(二元)이 아닌 불이(不二)이다. 오늘도 나비를 찾아 피안의 세계를 기웃거린다'.

마치 지하세계에 간 프시케(나비)를 구하려는 에로스 같다. 불로불사의 음식인 암브로시아를 먹고 에로스와 결합하는 지순지고한 신화 속 사랑을 꿈꾸는 것일까. 그는 몇 년 전 '돌 시리즈' 100개 연작을 시작했다. 그림을 모두 이으면 하나의 거대한 그림이 되는 작품이다. 그러나 2년 전 54개에서 멈추고 있다. 내면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때다.

취재 이튿날 그는 기자에게 메일을 한통 보냈다. '헤어지고 난 후 오후 내내 붓을 잡지 못했다. 안으로 파고드는 상처를 밀어내려고 노력하겠다. 남은 세월이 억울해서라도 새로운 나의 역사를 쓸까 한다.'고 적었다. 상처를 보듬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뼛속까지 저며드는 모진 상처를 스스로 꿰매고 어루만져야 하는 그 고통을….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약력

1959년 경북 영덕 출생. 대구대 미술대 및 동대학원 졸업. 수묵풍경화 등 5번의 개인전 개최.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심사위원 역임. 경북미술대전, 대구미술대전, 신라미술대전, 삼성현미술대전 등에서 초대작가로 활동. 현재 대구예술대, 대구대 평생교육원, 문화센터 한국화반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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