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블로거기자단팸투어

비단뫼 금산 여행 1. 태조대왕 태실

하늘타리. 2015. 10. 1. 13:30

"이 포스팅은 금산향토음식 힐링여행, 문화 관광 맛집 농특산물을 알리기 위하여

 충청남도 금산군농업기술센터 에서 초청하여 진행한 공공 팸투어에 참가한 후에 쓴 기록입니다.”


금산으로 갑니다.
금산군(錦山郡)은 1914년 3월 1일 옛 금산군(錦山郡)과 진산군(珍山郡)이 병합되어 형성된 곳입니다.

 

옛 금산군(錦山郡)은 백제시대에는 진내군(進乃郡)또는 진내을군(進乃乙郡)이라 했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경덕왕때 진예군(進禮郡)이라 고치고 고려초에 현(縣)이 되었습니다.
그 후 1305년(고려 충렬왕 31년)에 금주군(錦州郡)으로 승격시키고,

부리현(富利縣), 청거현(淸渠縣), 무풍현(茂豊縣), 진동현(珍同縣)의 속현을 두었습니다.
1413년(조선 태종 13년)에 금주군(錦州郡)을 금산군(錦山郡)으로 개칭하여 조선말까지 이르렀습니다.

 

옛 진산군(珍山郡)은 백제시대에는 진동현(珍同縣)이였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황산군(黃山郡) 의 속현(屬縣)이 되었지요.
고려초에 옥계부(玉溪府)가 되었다가

 1305년(고려 충열왕 31년)에 진동현(珍同縣)의 이름으로 금주군(錦州郡)에 속현이 되었습니다.
그후 1390년에 다시 고산현(高山縣)의 속현(屬縣)으로 한 것을

조선에 와서 1393년(태조2년) 에 만인산(萬刃山:胎峰)에 태조의 태(胎)를 모신후 진주군(珍州郡)으로 승격되었습니다.
1413년(조선 태종 13년)에  진산군(珍山郡)으로 개칭하였습니다.

 

1896년 8월 4일 조선의 13도 실시에 따라

 충청남도 공주부(忠淸湳道 公州府)의 금산군과 진산군을 전라북도로 편입하였고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에 금산군(錦山郡)에 진산군을 병합하였습니다.

 

그후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전라북도에서 충청남도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추부면 사무소앞에서 잠시 정차하여 기다리고 있던 일행을 태웁니다.

금산군 추부면이라 하면 깻잎과 충청도식 추어탕 특화거리가 꽤나 유명한 곳입니다.

 

추부에서 대전으로 넘어가는 17번 도로 길목 만인산자락에 차가 섭니다.


자생식물원.

 

 

자생식물원은 내려와 돌아보기로 하고 우선 태실로 올라갑니다.

 

정자

 

길이 넓어지네요

 

태조대왕 태실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태(胎)를 안치했던 곳으로,

 본래 함경도 용연(龍淵) 있었습니다.

 

태조 2년(1393)

당시 전라도 완주군 진동현이었던 현재의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로 옮겨온 것이지요.

 

태실의 본래의 위치는 이곳에서 1km남짓 남서방에 위치한 중부대학교 본관 뒤편의 봉우리라고 합니다.

태실은 몇 차례 중수 및 개수되어 오다가

일제강점기인 1928년 이왕직에서 태 항아리를 서삼능으로 옮겨갔고

 그 자리에는 석물만 남아있었습니다.

 

그 후 지역에 사는 모 가문에서 태봉 위에 조상의 묘를 안치하면서 남아있던 석물이 치워지자

 1993년 지역 주민들이 남은 석비와 석물을 수습하여 현재의 위치에 태실을 복원하였습니다.

 

태조대왕태실의 귀부는 네모난 바닥돌을 초석으로 놓고 그 위에 큼직한 한 돌을 조각하여 만들었습니다.

거북의 머리는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표정이 풍부하여 유적답사의 묘미를 더한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익살스러움이 묻어나는 이 귀부의 등에는 비를 끼우는 곳인 비좌를 갖추었습니다.

 

비석 전면에는 '태조대왕태실'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고, 후면에는 중건한 시기(1689년)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수와 비신, 귀부 모두가 완벽히 갖춰져 있으나  훼손된 흔적 또한 역력합니다.

 

대전 둘레산길 3구간 표지

조선시대까지는 감히 이 만인산을 넘어다니지 못하였다고 하지요.

신성불가침의 산이었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동북쪽으로 직선거리 4.3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마들령(지금의 대전-통영고속도로 마달터널)이 금산-대전을 잇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랫쪽으로 터널이 뚤리고

산위에는 이리 넓은 임도가 있습니다.

 

만인산과 만인산 휴양림으로 가는 표지

 

태조대왕 태실이 이 만인산에 위치한 데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주로 마이산의 반궁수적인 풍수를 누르려고 하는 목적이다라고 이야기들을 합니다만

그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비록 어느시기 이 태실이 수난을 당하더라도

 뜻있는 지역민에 의해 다시 설자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합니다.

 

 

태실의 풍수에 대해 궁금하신분은 태실자생식물원 주차장에 서있는 이 안내문을 자세히 읽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