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한라산 자락

화순리지경 창고천 김광종관련 유적들에 대한 아쉬움

하늘타리. 2015. 3. 27. 00:26


화순리지경 창고천 보막은 소입니다.


보(洑)라는 이야기이지요.


제주에는 보가 거의 없으니...
이 보를 만들때는 강정 냇기소에 보를 만들기 전이니 제주에서는 처음 보를 만든 것이지요.
그러니까 보를 막아 만들어 진 소다 하여 이름이 보막은 소가 되었습니다.


강정 냇기소는 자연적으로 보역할을 하던 것을 그 뒤 보뚝을 추가로 만들었지요..


화순과 강정이야기를 하니 1 강정 2 번내 3 도원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쌀이 나는 곳을 이야기 합니다.
이중 강정과 화순(번내 또는 벗내)은 육지사람들이 통상 이야기하는 논(畓)에서 쌀을 생산했습니다.


화순에서는 처음부터 paddy rice라고 하는 논에서 나오는 쌀을 제배한 것은 아니고

도원에서와 같이 upland rice라고 하는 육도를 주로 재배했었고 펄물 근처에서 일부 논(畓)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지역 전부를 물이 들어찬 논(畓)으로 바꿀 목적으로

김광종이라는 사람이 창고천 올랭이소 아래를 막아 보를 만듭니다

그  보에서 하천을 이용해서 물을 흘려보냈으나 그 물이 논지역에 도달하기전에 다 새어버립니다.
그래서 도수로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1833년 2월 시작하여 1841년 9월까지 근 10년동안 공사연장 670미터의 도수로를 만들었습니다.


그 도수로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화순 들에 항구적으로 물을 댈 수 있으니 그 때 부터 해방직후까지 이곳 화순은

타지역에 값비싸게 쌀을 팔아 나름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수가 있었지요.


보와 도수로의 지금의 모습은 세멘트가 보급된 1930년대 이후 보수, 보완한 것입니다.


도수로를 따라 김광종 영세불망비가 서있는 도채비빌레를 가려고 했는데

도수로 옆 공사자재들이 눈에 걸립니다.

그래서 보막은 소 옆 봉우리로 올라갑니다.



올라갑니다.









정상부에 고인돌 같은 형태가 바위 두기가 있습니다.



2004년 당시 남제주군이 제작한 문화유적분포지도에 고인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고고학적지식이 극히 적기 때문에 고인돌이라면 그런가 보다...아니라면 아닌가 보다라고 합니다만...
이곳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어서 물어보려 해도 제주도의 고고학자 중 누구하나 이곳에 올라와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누가 고인돌이라고 했는지 근거가 없습니다.


궁금증은 고인돌(돌을 고여 만든 무덤이라는 뜻이니까 고인돌보다 지석묘가 더 났겠습니다만

최근 학교에서는 다시 고인돌이라고 가르킨다하니 고인돌이라는 용어를 쓰겠습니다.)
차라리 돌무덤이라는 말이 더 났겠네요.
하여간 돌무덤이던 고인돌이던 그 명칭은 어떠하던건에 밑에 사람이 묻혀 있고 그위에 지석을 세우고 돌을 올렸다는 건데...
(개석식은 지석없이 바로 돌을 덮음. 그래서 덮을 蓋)
여기있는 돌무덤의 지석아래는 바위입니다
그럼 무덤이 아니지요.
차라리 제사터라고 하면 그럴듯하게 들릴텐데...


그래서 이번 고인돌 답사때 따라 올라가지 않고 밑에 앉아서 올라가는 사람들 뒷모습만 보았지요.


아, 고인돌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었는데...




남쪽방향으로 다래오름이 보입니다.


봉우리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옆봉우리로 올라가면 올랭이소옆 봉우리가 나옵니다.


올랭이소옆 봉우리로 오르기 전에 산방산과 용머리를 잠시 조감하며 심호흡을 하고...



봉우리로 올라 남쪽으로 걸어가면


창고천 방향으로 가는 데크길을 만나게 됩니다.


데크길을 따라갑니다


참 쓸데없는 길에 데크로드를 내었습니다.
계단이 필요한 곳만 선별해서 데크계단을 내주었다면 참 고마울텐데...
좋은 흙길놔두고 그 위를 데크로 도배를 했습니다.


너는 가고 있지않느냐고요?
데크를 벗어날 수가 없으니 할수 없이 따라갈 뿐입니다만....
예, 고맙습니다.


건너편 기슭을 따라 가는 도수로를 좀 잘 보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도수로는 않보이고 건너편에도 데크만 보입니다.


이게 뭔일이래...

도수로를 아예 데크로 덮어버렸습니다.


데크를 벗어나 벼랑끝으로 기어가 건너편을 봅니다

김광종영세불망비가 있는 도채비빌레정상에도 데크공사를 합니다.


그리고 그 정상으로 오르는 빌레에도 데크계단을 설치했습니다.


이건 아닌것 같다.

부랴부랴 올레길로 합류합니다.


이런곳

지금 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봉천수 모이는 곳에 정성드려 둘레를 쌓아 물을 가두었던 흔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런 곳을 정비해야지요.


헐레벌떡 개끄리민소를 넘어갑니다.
개끄리민소 다리위에서 북서방향 창고천을 봅니다.


경관이 다 무너졌습니다.


왼쪽도 데크, 오른쪽도 데크
데크로드경연장입니다.
도채비빌레의 그 멋진 모습은 흉물스럽게 변해있습니다.


보기싫어 몸을 돌려 개끄리민소 동굴앞쪽으로 내려갑니다.


저 동굴앞 물속이 꽤나 깊다는데...
저속에 풍덩 잠겼다 나오고 싶습니다.


다시 몸을 돌려 도채비빌레로 갑니다.
생소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현실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해놓고 참 편히 다녀올수 있도록했으니 나는 큰 공을 세웠노라하면서 흡족해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게 맞을 수도 있습니다.
명산에는 가고 싶고 험한길은 걷기 싫으니 케이블카를 놓는것과 같은 심리이지요.


아직 공사중이었습니다.


지금쯤은 공사가 끝났으려나...
벌건 색깔은 없어졌겠지요.


여긴 서쪽 기슭 세멘트도로에서 비석있는 곳으로 내려오던 옛길입니다.

여기도 데크로드로 바꾸어 놨습니다.


그리고 도채비빌레정상에는 데크로 전망대만드느라 지금 엉망입니다.


카메라 고발도 아니어서...
그래도 예쁜 모습만 찾아 찍느라고...


비석 두기가 온전하게 있는게 그게 고마워서 비석앞으로 헐레벌떡 다가갑니다.


옛 비석 앞 뒤



새 비석 앞 뒤



도수로쪽으로 내려갑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쩌면 좋은 일일수도 있겠구나 했습니다.


이렇게 도수로를 따라 길이 생기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도수로를 옆에 끼고 걸으며 그 당시 쌀에 관한 이야기..
왜 그렇게 도순도 그렇고 하례리도 그렇고 왜 그리 쌀농사를 짓겠다고 물을 끌어들이려 했는지
그리고 그 당시 이 도수로 공사가 얼마나 힘들어서 10년이나 걸렸는지 등 등을 이야기를 할 수 있겠거니 했습니다.


그래서 도수로 한쪽면...

어쩌면 1930년대 중반 어쩌면 1970년대에 보수, 보강한 도수로  위에다

 데크로드 지지를 위해 보드를 박는 것이 잠시 눈살은 찌푸려졌지만 견딜수가 있었는데...


이 커브지점을 지난 다음에는 그게 아닙니다.


도수로를 보여주기 위한 데크로드가 아니고 도수로를 데크로드로 덮어버렸습니다.


서쪽 기슭 세멘트도로에서 도수로로 내려오던 옛길입니다.


그냥 이렇게 옛길로 내려와 도수로 위를 걸어 불망비로 가면서

김광종과 쌀, 김광종과 화순, 화순과 쌀 이야기를 하면 될것을

무엇을 위한 데크로드인가요?


어느시기부터 육지쌀이 값싸게 들어오면서 예전에 쌀로 인해 흥하던 화순은

작물의 전환이 늦어 아 옛날이여를 노래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김광종영세불망은 허망한 세리프가 되었지요
그렇다고 해도 그 도수로를 이렇게 덮어버려서는 않되는 것이지요.


창고천의 풍광을 보여주기 위해서 인듯 한데...


왜 옆동네 사례에서 배우는 것이 없나요.
감산리 창고천지경의 서안골 데크로드는 길이도 제법되고 자연속에 융화되도록 잘 만들었습니다...만 ..

.하루 방문객이 몇명이고 그렇게 강조하는 마을경제에 얼만큼의 기여를 합니까?


그냥 옆동네가 얼마의 지원받아 데크로드를 깔았으니 우리도 데크로드깔게 얼마를 지원해주소하여 하는 사업은 아니겠지요.


옆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연속에 융화된 데크로드가 아니고

 1833년 2월 시작하여 1841년 9월까지 근 10년동안 만든...

그리고 1930년대와 1970년대 마을사람 힘을 합쳐 보수, 보강한

공사연장 670미터의 도수로를 덮어버리고 있으니

 잘한다고 말하기가 너무 너무 어렵습니다.


덮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어쩌면 근대문화유산일 수도 있는 도수로 좌우벽에 보드를 박아

그 위에 데크를 지탱하게 하고 있으니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역사유물의 훼손일 뿐입니다.



지금쯤은 공사가 다 끝났겠지요.
누군가는 찾아오겠지요.
그리고 누군가는 뿌듯해하겠지요.


나는 변화를 인정합니다.
세월이 흐르며 용도가 바뀌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굳이 옛 모습으로의 복원보다는 현재의 선량한 관리를 지지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런 인위적인... 훼손에 가까운 용도변경은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가 저어집니다.


사람사는 세상에 개발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꼭 필요한 개발이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문화와 경관의 보존이 미래성장동력으로 당장의 개발보다 시책의 중점이 되어야 할 제주에서...
최근 이곳 저곳 제주가 이상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목도하게 되는게 가슴아플 뿐입니다.


출발점이었던 보막은 소 옆 봉우리 앞으로 다가갑니다.



아직 손대지 않은 도수로의 모습

어쩌면 이 투박한 모습을 두번 다시 볼수 없을겁니다.


그 생각이 문득 떠올라

  마음 상해서 어느 한구석에 박아두었던 사진파일을 다시 꺼내어 이 포스팅을 올립니다.


건너편을 기슭을 오르며 다시 한번 뒤돌아봅니다.


다시 한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