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한라산 자락

제주도 한경면 청수리 방사탑답사

하늘타리. 2015. 1. 13. 21:06

청수리입니다.

 

제주시 한경면 남동쪽에 위치한 청수리는 저지리, 산양리, 낙천리가 인접해 있습니다.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1650년 경이라 하며

마을이름은 당시에는 청수리(淸秀里)라 불리었다고 합니다.

 

이 일대는 정말 물이 없던 지역입니다.
속칭 ‘흙승물’이라는 봉천수를 의지해 살다가

‘곱은덴밭물’, ‘돗죽은물’, ‘헉게물’, ‘동산알물’, ‘검부낭치물’, ‘냇골물’등의 음용수를 개발하면서

마을 이름을 지금의 청수리(淸水里)로 바꾸었습니다.

 

1872년 제주삼읍전도(고종 9년)에서 부터 지금의 청수리(淸水里)로 표기되기 시작합니다.

 

청수리는 주로 농업과 수렵에 의지해 살면서 약간의 목축을 해왔습니다.
농업의 중심지역은 웃동네 상뒤왓주변과 알동네 고래머들주변이었지요.

 

상뒤왓과 고래머들인근에는 각각 2기씩의 방사탑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고래머들은 머들 그 자체를 마을의 수호신이라 여기고 신성시 여겨

머들속의 돌 하나, 나무 한그루를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게 하여

몇년전까지만 해도 멋진 원시정글의 모습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고래머들로 갑니다.

고(아래아 고)래, 즉 멧돌을 만들때 쓰이는 돌을 채취하던 곳이라 고래머들이라고 했다고 새로이 만든 안내팥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아래아 고)래머들...

그러니까 크고 단단한 돌무더기가 많아서 맷돌을 만들 때 쓸 돌을 채취하던 곳에 관한 이야기는 원래 무릉곶자왈에서 써먹던 이야기인데

그 장소로 접근이 어렵다보니 스토리가 용도폐기되어 이쪽으로 옮겨왔네요.

 

고래머들로 가려고 소로길로 들어갑니다.

북쪽으로 저지오름과 그 옆 이계오름이 보입니다.

 

 

북동쪽으로 난 길

예전에는 이길로 가면 북서쪽으로 진행하여 이계오름으로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고래머들입니다.

머들을 공원화 하였고 입구에 고(아래아 고)래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옛 안성리 상동, 지금의 구억리자리에도 멧돌과 관련된 고(아래아 고)래동산이 있었긴 합니다만..
이곳 청수리의 고래머들은 이름은 같지만 발음은 아래아 고가 아니고 내세우던 스토리도 달랐습니다.

 

바로 인접한 포제동산과 함께 서쪽의 허함을 막아준다하여 이 머들자체를 마을의 비보로 여겨왔으며

그래서 고래로 부터 지켜온 머들, 즉 고래머들이라고 한다고

한경면 마을지등 예전자료에는 기록되어 있었는데

공원을 만들면서 스토리가 바뀌었네요.

 

아마도 인근 지역인 낙천리와 산양리, 저지리와 함께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지원하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인 웃뜨르권역사업에 선정되어

2009년 부터 2012년까지 네 마을에서 59억의 지원금을 나눠받았다는데

그때 이런저런 사업중 고래머들도 공원화하면서 스토리를 바꾼 것 같습니다.

 

낮선 곳에 온 것 같아서 머들로는 올라가지 않고 답아진밭 숫탑으로 갑니다.

 

한바퀴를 돌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형태가 바뀐건지
주변이 바뀌어 달리 보이는 건지
이 방사탑도 낮설게만 느껴집니다.

 

 

 

고래머들 북쪽으로 가면서 고래머들을 봅니다.

지금 내가 가는 길 오른쪽에는 무슨 캠핑장이라고 커다란 시설이 있습니다.
캠핑장 북쪽으로 낙천리에서 저지오름으로 이어지는 올레길이 지나갈겁니다.

 

고래머들 서쪽 포제동산으로 왔습니다.

 

그냥 지나치고 고래머들 서쪽입구로 들어가려다가 포제동산 남동쪽으로 올라갑니다.

정자를 보고..

 

포제단 비석을 보고

 

비석은 앞면은 백비이고 뒷면에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방사탑이 있습니다.

 

2009년 포제단을 재개설하면서 세운 방사탑인듯합니다.

 

 

주변 사진 몇장을 찍고

 

정자에서 보이는 한라산을 찍어봅니다.

 

청수공소가 보입니다.

저자리가 150여년전에는 마을의 중심으로 포제를 지내던 곳입니다.

 

포제단 북서쪽에 예전에 고래머들에서 포제동산까지 이어져 있었다는 잣질을 일부 재현한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걸어보고
다시 비석으로 왔다가

 

다시 한라산을 봅니다.

 

청수리에 왔는데 고래머들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고래머들로 갑니다.

 

고래머들 남서쪽 길로 올라갑니다.

 

제법 오래된 폭낭, 검폭낭, 육박나무, 멀구슬나무들이 자라고 있지요.

 

사실 곶자왈속의 나무는 나이 60살이 넘는 것이 드물어요.

 

곶자왈은 예전에 사람들이 밭을 경작했다던가 여러용도로 개발을 했었던 곳이지요.

 

인적이 끊기자 숲이 복원되고 있는 곳으로

교란되어 있는 식생이 질서를 찾아가느라 넝쿨과 관목 등이 아직 대혼전양상을 보입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경탄하는 것이지요.

 

이곳 고래머들에 굵기가 굵은 교목들이 안정적인 틀을 잡고 있는 것은

상당히 오래전 부터 이 일대를 보호해 왔기 때문입니다.

 

고(아래아 고)래용 돌을 뜨며는 그 옆에서 나무가 남아나질 않지요.
제주 속담 그대로 "낭은 돌의지, 돌은 낭의지"이기 때문이지요.

 

 

 

 

 

고래머들의 북동쪽 입구로 내려와서 뒤돌아 봅니다.

 

개인적으로 고래머들 공원화사업은 하지말았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라고 생각이 되요.


머들앞에 뚱단지 같은 맷돌을 같다놓고 데크 산책로를 설치한 것 까지는 그렇다 쳐도

머들앞으로 주차장을 만들겠다고 황량하게 밀어 놓으면 참 가관일겁니다.

 

어디로 갈까?
물토답사를 할까하다가 방사탑담사로 마음을 바꿉니다.

 

알동네 암탑으로 갑니다.
귤밭속에 머리가 보입니다.

 

귤밭으로 들어가 방사탑으로 다가 갑니다.

 

앞부분은 멀쩡한데 뒤에서는 무너져 갑니다.

 

 

방사탑옆 작은 돌무더기가 차라리 더 온전한 답의 모습입니다.

 

 

 

상뒤왓 암탑입니다.

 

 

성읍2리의 까마귀동산 답과 크기와 모양이 흡사합니다.

 

혹시 머리부분에 까마귀돌이 있나 찾아 봅니다.

 

상뒤왓 숫답입니다.

 

 

 

 

 

이 백캐담 뒷부분에 하나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여긴가??

눈에 않띕니다.

 

건너편이었나?
무언가가 허물어진 돌무더기는 있는데 여기는 아닌것 같습니다.

 

공연히 세구분으로 나뉘어 쌓인 돌무더기에 미련을 가지고 돌아봅니다

 

 

 

 

 

 

 

밭을 돌아 나옵니다.

마을로 다시 나와 몇몇분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만 고래머들 옆 답아진밭 숫탑외에는 아는게 없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외지인은 마을 옛주민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오고

막상 이곳 주민들은 예전것을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훼손및 변조하고

그것을 옛날 그대로 보존해서 무엇하려고 하느냐고 도리어 우리에게 물어봅니다.

 

곶자왈로 갑니다.

 

곶자왈 가는길에 지나친 충혼탑

6․25 전쟁 때 산화한 청수리 출신 16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입니다.


충혼탑 뒤에 서있는 것은 6.25종군탑입니다.
이것은 산이들을 기념하는 비석일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평화박불관 들어가는 길목 지경청쉼터라는 곳

 

이 쉼터비석에 보면 작은 글씨로 옛 지경청, 목관과 대정간의 경계지점인 소역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가 지경청이라는 조그마한 역원이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 기록을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지경청 쉼터에서 한라산을 봅니다.

 

청수곶자왈을 가로 질러 산양곶자왈입구로 왔습니다.

 

청수리 남쪽으로 산양, 무릉, 신평, 저지일대에 걸쳐 있는 곶자왈도 개발의 바람은 피할 수 없습니다.

곶자왈 가운데로 이렇게 포장까지 해서 길을 만들어 놨습니다

2010년초 부터 2011년말까지 곶자왈사람들 정기탐사 안내를 다니며 많은 곶자왈을 다녀 봤습니다만

지금의 곶자왈과 그 일대는 이미 제모습이 허물어 지고 있습니다.

특히 청수, 산양, 저지 곶자왈은 가슴이 아픕니다.

 

길옆 옹기가마터

 

예전 자료에는 청수노랑굴이라고 되어 있던 산양 조롱물 옹기가마터를 잠깐 둘러보고...

 

 

 

그렇게 툴툴거리던 곶자왈을 가로 지른 포장도로를 달려 제주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