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사는 통일신라시대때 창건하여 고려 충렬왕 10년에 중창한 사찰로
조선 숙종 15년(1689)에 세운 청계사기적비가 있고
조선후기의 건물로 보이는 극락보전이 있습니다.
청계사의 동종은 보물 제11-7호로 조선 숙종 27년(1701)에 제작되었으며
청계사의 극락보전과 삼성각 바로 앞에 있는 종각안에 있습니다.
종에 쓰여 있는 명문은에
"강희 40년(1701) 신미 4월에 주성(鑄成)하였고 광주 청계사에 보관 하였는데 대종의 무게는 7백근"이라 새겨있습니다.
이 명문에는 청계산이 청룡산으로 청(淸)자가 청(靑)자로 쓰여있습니다.
사찰에 도착하면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것은 바로
"우담바라 핀 청계사"라는 표지석입니다.
우담바라는 3000년에 한번 핀다는 전설의 꽃이라 하는데
이곳 청계사에서는 2000년 10월 극락보전에 봉안된 아미타 삼존불 가운데
관음보살상의 상호 왼쪽 눈섭 주변에 우담바라 꽃이 피었었다고 합니다.
청계사는 조선 연산군 시절 도성안에 있는 절을 폐사했을 때
봉은사를 대신하여 선종의 본산으로 정해지면서 중흥기를 맞이했고
지금의 모습은 1955년 완성되었다 합니다.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선사와
그 선맥을 이은 여러 선사의 체취가 경내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합니다.
지금의 청계사를 대표하고 있는 것은 1999년에 완성된 와불로
당시 주지인 지명스님이 원력으로 조성을 했다는데
자그마한 조각돌인 호박돌로 만들어진것이 특이했습니다.
또 한 곳의 특징적인 곳은 극락보전 뒷편으로 자리한 작은 부처상들입니다.
동자승상을 비롯하여 다양한 모습의 부처상들이 모두 모여 있습니다.
청계사의 주불전인 극락보전에는 아미타여래 삼존좌상이 유리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또한 청계사의 신중도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74호로 지정 되어 있는데
1844년에 조성된 것으로
존상표현에서 타원형의 상호에 세장한 신체로 묘사하면서 이목구비에 음영을 주고
색채에 코발트색와 금니를 사용하는 등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활동한 경성(京城)화파의 화풍이 반영된 작품으로 가치가 인정된다고 합니다.
절집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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