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블로거기자단팸투어

의정부 사패산 석굴암

하늘타리. 2013. 12. 28. 19:24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며, 生과 死가 둘이 아니며  번뇌와 깨달음이 둘이 아니니라...

절집의 불이문이야기입니다.


이 문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불법의 진리 속으로 들어가 부처님과 하나가 된다는 뜻이랍니다.

그 오묘한 뜻은 알바 없으니

이 절집의 불이문이 참으로 멋있다라는 생각만이 들 뿐입니다.

 

어느 절집이 이렇게 웅장한 바위로 만들어진 불이문을 가졌던가?

기억해 내질 못합니다.

 

의정부 사패산 석굴암앞입니다. 

 

행정구역으로는 의정부시 호원동이 될겁니다.

사패산 회룔골로 회룔사로 가다가 회룡샘 갈림길에서 사패산쪽으로 약간 높은 경사를 따라 오르다 보면

석굴암으로 가는 불이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절집에 들어 가기전 왼쪽에 안내판이 있습니다.

 

현지 안내문을 옮겨 봅니다.
"백범선생이 상해로 망명하기 전에 한때 피신하였던 곳으로, 

해방 후에도 선생께서 이곳에 자주 들려 소요하며 고금을 회상하곤 했다.  
석굴암입구 거대한 3개의 자연석 위에 새긴 『석굴암 불 무자 중추 유차 백범김구(石窟庵 佛 戊子 仲秋 遊此 白凡 金九)』 명문은

당시 언론인 남상도 외 7인이 선생의 친필을 받고,

이를 오래 기념코자 1949년 3월부터 약 3개월에 걸쳐 조각한 것이다."


추가적인 자료에 의하면 이들은 1949년 6월 26일 오후 3시 이곳 석굴암에서 백범을 모시고 명문 완공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마침 그 날 선생이 암살을 당하여 뜻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합니다.

 

돌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섭니다.

 

왼쪽에는 보월당이 있고, 

 

오른쪽 거대한 세 개의 바위 사이에 석굴이 있습니다.

 

이 자연적인 석굴 안에 부처님상이 놓여 있습니다.

 

 

 

석굴을 감싸고 있는 큰 바위 사면에 김구 선생의 친필 조각이 보입니다.

 

 

 

이 절집은 회룡사 자료에 의하면 회룡사보다 먼저 샌긴 곳입니다.
1384년(우왕 10)에 이곳 도봉산에서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함께 창업성취를 위한 기도를 했는데,

이성계는 이곳 석굴암에서,

무학은 산등성이 가까이 있는 무학골에서 각각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 뒤 이성계가 동북면병마사 라는 직책을 맡고 요동으로 출전하자

무학은 홀로 남아 작은 절을 짓고 손수 만든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그의 영달을 축원했다고 합니다.

그 작은 절은 회룡사로 크게 중창되었으나

곳 석굴암은 현상만을 유지해 왔지요.


회룡사도 조선 후기에도 몇 차례의 중수를 거치면서 꾸준히 사세를 유지해 왔습니다만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의정부쪽에 있던 절은 한국전쟁의 피해를 특히 많이 받아서 모두

불타버리고 비어 있다가 전쟁이후 복구에 착수한 절들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유서깊은 절이라 하더라도

현존하는 당우들은 모두 한국전쟁 이후에 새로 지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석굴암 당우들도 거의 최근에 지어졌다고 보면 될 듯 싶습니다.

 

사패산 중봉쪽을 바라보면 극락전이 보입니다. 

 
그 부근 바위에 미륵불이라 새겨져 있는데,

 

이 바위를 미륵불로 모신다는 것인지...

설명이 없으니 그러련 합니다.

 

 

 


극락전 앞 승탑

 

문외한이 보기에는 나름 조형미가 갖추어져 문화재급으로 보이는데 ...

 

그 수준까지는 아닌가 봅니다.

 

극락전 안 부처님을 뵙고

 

누군가가 옮겨 쓴 의상의 법성게를 읽어봅니다.

法性圓融 無二相 諸法不動 本來寂
無名無相 絶一切 證智所知 非餘境
眞性甚深 極微妙 不守自性 隨緣成
一中一切 多中一 一卽一切 多卽一....

 

부처님의 퇴공(退供)을 받겠다는 원을 세운 신중을 봅니다.

 

산신각

 

 

 

 

 

 

 

 

보월당 옆 바위아래있는 약수터...

 

먹어도 되는지 망서리다가

 

공연히 새우깡봉지가 거슬려 그냥 돌아왔습니다.

 

다시 한번 석굴암입구를 감싸고 있는 김구선생의 휘호를 보면서 그를 생각합니다.

 

불이문을 나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