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한라산 자락

이야기가 있는 길, 녹고메쉐질 (소길리구간) 2.

하늘타리. 2011. 6. 8. 11:25

 아늑한 분지속에 자리 잡고 있는

소길리마을로 다가갑니다.

 

 포제단과 소길운동장가운데로 난 길에서 바라보는

마을 모습

 

 같은 지점에서 뒤돌아본 한라산의 모습

 

 다시 마을을 보고

 

 마을안으로 들어갑니다

 

정자나무 앞에 비석이 보입니다.

 

비바람과 찬서리에 거친 돌을 일구며 우리마을 3백년 역사를 읽는다.

이웃사랑과 슬기를 모으니 범죄는 간데없고,

조상의 넋을 추모하며 웃어른 공경하고 어린싹 꽃인 듯 아끼니 백집 화목하여 평화마을 이룩하다.

이 보람과 기상은 원원히 누리에 빛나리.

(1979년 5월 20일. 소길리 주민일동 건립) 

 

 제주도에서 1978년 9월에 1년에 한번 범죄없는 마을을 선정해 표석을 세우기로 하고

처음으로 선정된 마을이 이곳 소길리입니다.

지금이야 여기저기 이 제목의 표석이 서있어서 흉물이 되었습니다만

그당시로는 대단히 자랑스러우셨을 겁니다.

 

범죄없는 마을...

 

정자목인 팽나무 아래

고정시켜놓은 장기판

 장받아라!

멍군이여!

그 옆의 훈수꾼...이래라 저래라...

그런 모습이 그리워 집니다.

 

길목 양갈래 중심에 1960년 초 축조한 공동수도 물탱크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형태는 제주시 중산간마을과 연동·노형 일대에 공급이 시작된 마을 공동수도시설과 똑 같은 모양입니다.

당시 제주시에서는 물부족에 시달리던 주민들을 위해 산천단 간이상수도를 개발하여

아라-월평-영평-황사평-용강-봉개-도련까지 제주시권 중산간마을에 수돗물을 공급했습니다.

 

당시 식수가 부족하던 이 마을에서도 

유수암에서 물을 끌어다 쓰기 위해 당시 국회의원 지원을 받아 제주시 간이상수도물통을 본따

모두 3기의 공동수도 물탱크를 만들었읍니다만

윗마을에서 물을 수시로 막아버려 1년도 이용하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물설움을 겪은 주민들은 마을 안길을 확장하면서 물탱크를 모두 없애버렸는데...

 

이곳 한기만은 비올때나 뙤약볕 내리칠때

버스를 기다리는 용도로 쓰이니까 

그냥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마을 한질좌우로 연결되는 올레길을 봅니다.

 

 

 

 

공동수도 물탱크와 나이가 같을 쉐막

 

지금도 창고로 잘쓰이고 있습니다. 

 

한라산과 눈맞추며 농로를 따라 걷습니다.

 

 

거리못입니다.

거리못은 농로 포장으로 면적이 1/3가량 줄어 약 200평정도 됩니다.

식수용 봉천수를 가둬두는 큰못과 우마용 못,

그리고 밭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몸을 씻었다고 하는 못 등 3개의 못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어찌 오늘은 하나의 큰 못으로 보입니다.

 

둘러 봐야 하는데 너무 지칩니다.

 

그냥 앞모습만 보세요.  

 

 

 

 좌랑못으로 가는 길

주변의 모습입니다.

 

 

 

 

좌랑못

여기는 유수암리지경입니다.

 

자랑하는 못이 아니고 좌랑이 살던 곳에 못을 만들었다는 곳이지요. 

 

한 400평 가량 되는데

창포 등의 수초가 가득합니다.

 좌랑이라는 벼슬은 조선시대 정6품의 관직으로
이조·병조·호조·형조·예조·공조의 중견행정 실무자들입니다.
좌랑은 상급자인 정5품 정랑(正郎)과 한 조가 되어 행정실무를 총괄했는데,

육조의 권한이 강화되고 국정의 중심기구가 된 조선시대에는 사실 은근히 끝발을 과시하던 자리입니다.
이조·병조·예조의 정랑·좌랑은 특히 중시되었습니다.
그래서 퇴직후에도 동네에서 방귀꽤나 끼고 살았다 합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이곳에 내려와 살던 어느 전직 좌랑도 세도꽤나 부렸던 것 같습니다.

 이곳 전설에 따르면

이곳은 원래 못이 아니었고

좌랑 벼슬을 한 사람이 이곳에다 집을 짓고 살았으며 식수는 주변 봉천수인 괸물을 사용했다합니다.

 그러나 이 좌랑은 권세를 이용해 너무 세도를 부리고 주변사람들을 못살게 굴었기 때문에 주민들이 원한을 품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좌랑이 병들어 죽자 주민들이 집을 헐고 집과 마당이 있던 자리 500여평을 파서 연못을 만들었답니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1929년 가뭄이 심해 못의 물이 다 마르자 주민들이 못바닥을 정비하기 위해 흙을 파낼때

못 바닥에서 주춧돌이 발견되었답니다.

 

식수용못은 버드나무 밑에 따로 있는데...

 

그냥 앞부분만 보세요.

 

다시 큰길로 돌아와서

소길리 마을 회관이 보이는 지점에서 한 장 꾹하고...

 

한라산을 마주보며 담배한대 빼어 뭅니다. 

 

잠시의 휴식후 방향을 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