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not forgotten
통상 당신은 잊혀지지 않았다라고 번역합니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나갔다가 돌아오지못한 이들을
그들을 부른 국가와 국민이 끝까지 책임진다는 무한 책임의 약속입니다.
이것은 정부가 국민을 통치의 대상 또는 유사시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미국같은 나라는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The Joint POW/MIA Accounting Command·JPAC)를 두어
150년 전 미국 남북전쟁 때부터 지금까지 전사한 미군 유해를 찾고 신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부대의 구호인 당신은 잊혀지지 않았다에서 알 수 있듯,
지금도 동남아 밀림지대와 북한 같은 적대국 내부까지 들어가 미군 유해를 찾아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국립현충원에 전몰 장병 10만3천여위가 유해 없이 위패로만 모셔져 있습니다.
10만구가 넘는 유해가 이 산하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위패라도 있어 전쟁중의 죽음이라고 인정받았다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라 해야한답니다.
그 죽음의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아 위패조차도 모실수 없는 사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추모하는 비석은 있는데
어떤이유로 누가 또는 몇명이 어떠한 일을 당했다는 건지
애매모호한 몇귀절로 모든 것을 넘겨버린 비석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화순리 안덕초등학교에 있는 진몰용사지비입니다.
앞면
진몰용사지비
육군제 299부대건립
뒷면
追悼銘
국난을 이기려고 찾어온 젊은 정렬의 우국투사가
장지를 품은 채 전장을 보지 못함을 유한으로 이곳에 잠드렀으니
그령을 삼가 취도하여 이를 기렴으로 봉언하나이다.
단기 四二八五년 一월 二十일 陸軍 第 二九九 部隊 將兵 一同
歿이 아닌 沒을 쓴 것을 보면 꽤많은 인원이 영내에서 사망하였다는 것인데..
299부대는 보충대인데 어떤 일로, 어디서, 몇명이나 진몰을 한 것일까?
전방에서는 한참 전쟁중이고 이곳에서는 열심히 훈련중인데
왜 느닷없는 1952년 1월 20일에 이비를 세운 것일까?
1952년 1월 20일이면 장도영소장이 2대 훈련소장으로 부임한지 열흘정도 뿐이 않되었을 땐데
오자마자 갑자기 ........
그렇다면 전임 백인엽장군시 어떤 큰 사건이 있었던 것일까 ?
접근가능한 모든 기록과 증언을 찾습니다.....만....
299부대가 안덕초등학교 학교림자리와 슈퍼건물 뒤를 연한 장소에 있던 육일훈예하 보충대라는 것 외에는 알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초등학교정문은 서쪽에 있었고
지금의 초등학교정문자리가 보충대 정문이었다 합니다.
그러다 2008년 3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자료에서 찾은 몇줄...
진정 제269호 (고)신 봉남 사건
( 주문 )
1) 신봉남은 1951.12.24. 제주도 소재 육군 제 0훈련소 119중대에서
부대원을 살상할 목적으로 침투한 외부인에 의한 막사의 화재와
이 과정에서 발생한 전투의 와중에
전신 4도의 화상을 입고 그로 인해 사망 하였다고
인정 한다.
2) 이 사건에 대하여 국방부장관에게 신 봉남의 사망구분에 관한 사항을 재심의할 것을 요청 한다.
1951년 12월 24일에 1훈련소에 부대원을 살상할 목적으로 침투한 외부인이 있었고
이 외부인과의 교전에서 피해자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전투에 대해서는 기록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국립현충원 안장자중에서 당시 1훈련소소속으로
1951년 12월 24일부터 비를 세운 1953년 1월 20일까지의 사망자를 찾아봤습니다.
45명이 전사자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위에 예시한 신봉남씨의 경우처럼
그때의 화상으로 중태에 빠졌지만 사망일자가 한참뒤라서 전사처리도 않되고 변사로 처리된 경우도 있으니
그날의 희생자가 도대체 몇명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위의 진정건은 사망자의 동생(당시 71세)이 2007년에 그당시 운영되고 있던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
"당시 내가 어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어머니께서 형의 변사통지서를 받고서 앓아 누우셨고,
6개월 만에 돌아가셨다"며
"육촌 매형에게 형이 훈련소에서 화재로 죽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지만
생활자체가 너무 어려워 진상규명에 힘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사망경위를 밝혀줄것을 요청하였고
진상규명위조사결과 교전중 사망으로 판명되어
군의문사위에서 국방부장관에게 전투 중 숨진 신씨에 대한 사망구분 재심의를 요청했으며
이에 국방부는 신씨의 사망구분을 '변사'에서 '전사'로 변경한 것입니다.
그후 그동안 전남 신안군에 안치됐던 신씨의 유해는 2008년도 6월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진몰용사지비로 위령하고자 하는 것이 이와 같은 사건아닐까?
1자로 시작되는 3개부대는 모슬포신병훈련소내에 있던 훈련병부대이고
2자로 시작되는 3개부대는 화순, 강정, 토평에 있던 훈련을 마친 신병들이 전방에 가기위해 대기하던 보충대입니다.
이런 보충대에 대해서도 신병훈련소에 대한 것과 같은 어떤 공격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끊이지 않는 의문
1훈련소 부대원을 살상할 목적으로 침투한 외부인은 어느 세력이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국방부관계자에게 물어봐도 답은 없습니다.
게다가 군위문사위는 해체되어 그 자료가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어디있는지 안다해도 열람권한이 없습니다.
몇년전 1년 넘게 혼자서 조사한다고 하다가 버쳐서 포기한 일인데
이번 답사때 이곳을 간다하기에
무언가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해서 갔습니다만...
여전히 안개속을 헤메입니다.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여 국민들을 불렀고
국가를 보위하던 국민이 불행한 일을 당했다면
국가를 위해 죽어간 생명들을 이렇게 소홀히 취급해서는 않됩니다.
지금도 10만구넘는 유해가 이 나라땅 어딘가 묻혀있고
게다가 많은 수의 희생자가 그 경위도 모르는채 가족들가슴속의 피눈물로 남아 있습니다.
보상도 중요하고 예우도 중요합니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을 그대로 밝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슴은 먹먹하고...
쓸말은 많은데..
나도 그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담배한대 피워물면서 글을 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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