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계곡
조금 생소한 말이지요.
그렇지만 제주에는 계곡이 참 많아요..
언뜻 생각해도
탐라계곡, 영실계곡, 산벌른내, 수악계곡 등 등
손가락 발가락으로 꼽아야 하는 큰계곡
그에 딸린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계곡들..
그럴듯한 사진 한번 보실래요.
내사진은 아니지만
관광협회사이트에 있는 거니까 부담없이 보세요.
하지만
위의 사진과 같은 평온한 모습은 극히 보기 힘들어요.
제주 계곡의 하천은 모두가 건천이에요.
평소에는 물이 흐르지 않다가
비가 많이오면
한라산 곳곳에서 물이 쏟아져 내려옵니다
제주식표현으로 내가 터졌다하는데
이때는 왠만한 돌무더기를 포함하여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쓸어버립니다.
작년 가을 도순천상류에서 찍은 사진인데
그 언제인가는 모르지만
물과 함께 떠밀려온 돌덩이와 나무들이
계곡위로 설치한 철다리를 뭉게놓은 모습입니다.
이렇듯 무서운 계곡입니다.
물이 없을때는 없을때 대로 커다란 바위들이 불규칙적으로 연결되어
한걸음 띄기도 힘든 지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한번 큰고생해야지하는 굳은 각오없이는 계곡답사하기 어렵습니다.
한번 다녀오면
이젠 다신 가지말아야지..
아무도 없는 이계곡에서 바위에서 미끄러져 다치면 누가 날 챙겨주냐??..하면서도
간간히 한번씩 가고는 하는데
오늘 또 병이 도졌습니다.
봄이라 꽃은 피는데..
세상은 답답하고..
무어라 마음놓고 이야기하기도 힘들고..
나혼자만의 고행을 하기로 합니다.
마근내 또는 마그내라고 하지요.
한라산 흙붉은오름에서 시작된 계곡이 5.16도로상 관립교를 지나 화북천으로 연결되어 바다로 가는 물길.
그 중에서 특히 칼다리내라고 하는 제2도깨비도로매점옆 계곡에서 부터
관립교까지를 걷습니다.
먼저 큰길에서 계곡으로 내려가 한라산 쪽으로 걷습니다
높디 높은 절벽이 나옵니다.
좌 우 어디에도 치고 올라갈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올라갈 이유가 없지요
여기서부터 제주시쪽으로 걸어내려갈 거니까요.
이 바위위에서 물이 떨어지면 장관이겠죠.
그렇지만 물이 떨어진다면 제가 여기 서있을 수도 없습니다.
내려간다면
통상적인 개념으로는 남쪽으로 가는 것이겠지만
제주시에서는
내려간다면 북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타잔은 나무를 타는데
나는 그런 재주없으니
바위위를 곡예하듯
위태위태 불안불안하게 지나갑니다.
사실 내려가는 길이다 보니 엉덩이를 많이 이용합니다.
이 큰바위를 어렵사리 타고 내려 왔습니다.
비념터와 산신당이 있습니다.
바위에 이름과 생년을 쓰고
장수와 무병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산신에게 기원하는 곳이라하여
문을 열어 보았으나
자물쇠로 꽁꽁 닫혀 있습니다.
모든이의 기원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문을 열어 놓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누군가의 훼손으로 부터 지키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호랑이도 마음데로 부린다는 산신이
사람의 훼손으로 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현실이 아니러니하지요.
비념터주변 노목들입니다.
뿌리들이..
살아보겠다는 뿌리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비념터를 한번 더 둘러보고
밑으로 계속 내려갑니다.
살아보겠다는 몸부림도 부질없이
물에 쓸려온 바윗돌때문인지, 바람때문인지
넘어져 버렸습니다.
나무를 넘어뜨린 그 물살들은 다 어디로 가고
웅덩이에 잔잔한 물들만 모여있네요.
물따라 물위로 내려갑니다.
물속 바위들을 건너뛰면서 가니까
물위를 가는거지요..
저기 앞에 일제패망직전에 구축하던 진지동굴이 보입니다.
여기는 아라삼의악 트렉킹코스를 왼쪽으로 연결해놔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쉽겠네요.
들어가 보겠습니다.
굴속으로 들어오니 또 철문이 있네요
가도 가도 끝이없는 것 같아서..뻥!!!
머리한번 부딪치고 돌아나옵니다 .
궷당이 보입니다.
안에 단도 있고 한데..
지전 물색이 하나도 걸려있지 않습니다.
길이 끊긴 지금은 찾아오는 당궐들이 없나봅니다.
계속 내려갑니다.
꽤 그럴듯한 소가 나오네요.
암벽을 따라서 한바퀴 돌고..
밑으로 밑으로.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 또 조심..
내창 옆에
또다른 비념터가 있습니다.
촛불이 타는 것처럼 그들의 기원도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오름을 한번 올려다 보고
꽃색깔에 빠져 봅니다.
계곡을 타고 내려 오면서
좋은 경치에 감탄하기도 하고
높거나 미끄러운 바위위에서 부들부들 떨기도하면서
마음속 끓어오르는 심화를 다스렸습니다.
오늘 스스로의 고행길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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