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포스팅은
경북 산림휴양도시 봉화군과
친환경 울진군의
문화 관광 맛집을 알리기 위하여
경북관광공사에서 초청하여 진행한 공공 팸투어에 참가 한 후
후기로 작성한 글입니다"
울진봉평리신라비는 신라 법흥왕 11년(524)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으로
당시 국왕의 지위와 신라 십칠 관등의 성립 연대 문제나
지방 통치 조직 및 촌락 구조, 그리고 복속민에 대한 시책 등
신라 사회 전반의 여러 면을 새롭게 검토해 볼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다.
국보 242호로 지정되었다.
국보의 정식 명칭은 ‘울진 봉평리 신라비’이다.
[건립경위]
524년(법흥왕 11) 울진 지역에서 신라에 대한 모종의 반란 사태가 발생하여
경주와 삼척의 대군으로 반란을 진압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책임자에게 장 60대와 100대를 치고
얼룩소를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이러한 일이 다시 발생하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을 적어 석비를 세웠다.
[위치]
2008년 8월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521번지에 있는 울진봉평신라비전시관 안에 옮겨 전시되고 있다.
[형태]
울진봉평리신라비의 크기는 높이가 204㎝,
글자가 새겨진 부분 위쪽 너비는 32㎝,
가운데 너비 36㎝,
아래쪽 너비 54.5㎝로
전체 모양은 사다리꼴에 가까운 부정형으로
414년(장수왕 2)에 세운 광개토대왕비와 유사하며,
자연석을 거의 그대로 이용한 것은 삼국시대에 제작된 비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금석문]
울진봉평신라비가 건립된 연대는
첫머리의 간지인 갑진년(甲辰年)과 함께 모즉지매금왕, 사부지갈문왕 등의 인명으로 미루어
신라 법흥왕(法興王) 11년인 524년이 확실하다.
당시까지 알려진 신라의 비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울진봉평신라비 비문은 자연석 화강암에 한 면[앞면]만을 다듬어 글자를 새겼는데,
구성은 전체 10행으로 1행 31자, 2행 42자, 3행 41자, 4행 42자, 5행 25자, 6행 46자, 7행 45자, 8행 44자, 9행 40자, 10행 42자로 전체 글자 수는 398자이다.
전체 10행으로 이루어졌으며 글자 사이의 간격도 일정하지가 않으며,
각 행의 글자의 수는 같지가 않다.
가장 많은 행은 제6행으로 46자에 달하며,
적은 곳은 25자의 5행으로 전체 글자 수는 398자이다.
공교롭게도 이 수치는 비문의 마지막의 “삼백구십팔(三百九十八)”이라는 명문과 일치한다.
서체는 당시의 일반적인 양상과 비슷하게 예서에서 해서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것으로서
읽기 어려운 글자는 별로 많지가 않다.
다만, 마모가 약간 진행되거나 이체자(異體字)를 사용한 몇몇 글자는 뚜렷하게 확인하기 곤란하다.
특히 중요한 대목은 불명확한 글자가 많아 내용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문의 전체 내용은 524년 정월 국왕인 법흥왕과
그의 동생인 사부지갈문왕을 비롯한 14인이 합의하여
어떤 중대한 사항을 결정하고 그를 집행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결정이 내려지기 바로 직전 해인 523년 비가 세워진 곳으로 추정되는
거벌모라 지역에 대군을 동원해야 할 어떤 사태가 발발하고
그를 해결하고 난 뒤 이 지역을 대상으로 책임을 물어 사후 조치를 취하고
나아가 사건에 직접 연루된 유력자를 처벌하여
그 사실을 영구히 기록하여 알림으로써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비를 세운 것이다.
비의 성격을 둘러싸고 여러 견해가 제시되어 있으나,
율령과 관련되는 내용을 담은 율령비로 보고 있다.
국왕을 비롯한 여러 신하가 합의하여 중요한 결정을 한 점,
국왕도 부명을 칭하고 있는 점,
노인법이란 율령의 편목을 시행하고 있는 점을 비롯하여
신라육부, 장형의 존재 등은 신라사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주요한 요소들이다.
이를 매개로 그동안 논란되어 온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나아가 5~6세기 신라사의 내용을 한층 풍부하게 서술할 수 있게 된 데에 큰 의의가 있다.
[의의와 평가]
울진봉평리신라비가 발견됨으로 인하여 고대사 연구가 활성화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즉, ‘신라육부(新羅六部)’라는 글자가 나오므로 인해 6세기 초 이전에 이미 신라에 6부가 성립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으며,
법흥왕이 탁부(啄部)로, 그 동생인 사부지갈문왕(徙夫智葛文王)은 사탁부(沙啄部) 소속으로 되어 있어서
형제가 각기 다른 부(部)를 관칭(冠稱)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또한 노인법과 죄인을 처벌하는 장형의 존재는 520년(법흥왕 7)에 율령 제도가 성문법으로서 실제로 행하여졌음을 증명해 주는 등
『삼국사기』의 기록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었다.
이 밖에도 부를 초월하지 못한 왕권의 한계,
당시 신라의 영역, 관료 제도, 지방 통치 조직과 촌락 구조, 의식 행사 양상 등의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이상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울진봉평신라비 전시관은
국보 제242호 울진 봉평리 신라비의 효율적인 보존을 위하여
2000~2010년 경북북부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으로 건립하였다.
전시관실내에는 울진 봉평리 신라비 실물 및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의 주요 석비 모형 전시,
금석학의 계보와 시대별 비의 양식변화,
한자 서체와한글창제 등을 소개하고 있다.
입구를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마주치는 것은
울진 봉평리 신라비의 실물과 탑본이다.
신라비를 중심으로 하여 울진 봉평리신라비의 발견경위,
국보 지정과정,
울진 봉평리 신라비의 현황과 원문 및 해석,
비에 나오는 사람들,
얼룩소(칡소)를 잡는 의식행위,
신라비의 형벌,울진 봉평리 신라비의 가치, 신라 법흥왕의 업적,
삼군의 영역,
울진의 자연환경과 인문지리,
울진의 문화유산,
울진의 연혁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관에 추가하여 비석거리와 야외비석공원, 정자 및 연못을 구성하였다.
전시관 진입로 양 옆으로는 울진지역 송덕비 45기를 전시하여 비석거리를 조성하였으며,
야외비석공원에는 광개토대왕비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국보.보물급 25기의 석비를 실물모형으로 제작하여
우리나라 지도모양으로 조성된 전시 공원내 비의 발굴위치에 맞게 전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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