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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여행 - 조선조 천문학자, 도학자, 격암 남사고 유적지

하늘타리. 2017. 12. 19. 19:48

"아래의 포스팅은

 경북 산림휴양도시 봉화군과

친환경 울진군의

 문화 관광 맛집을 알리기 위하여

경북관광공사에서 초청하여 진행한 공공 팸투어에 참가 한 후

후기로 작성한 글입니다"



조선 시대 울진 출신의 천문학자이자 도학자로,

풍수에 능한 도인이자 예언가로 잘 알려진 격암 남사고는

천문교수로 주역의 원리를 합리적으로 해석하는데 진력을 기울인 인물이다.


남사고는 중종 4년(1509)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 누금마을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간 숲과 계곡을 오가며 명상에 잠기거나

 집필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스스로 학문을 깨쳤다.


46세에 이르러 소수서원에서 수학하여,

55세 나이에 종9품 사직참봉에 제수되어 관직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 후 관상감 천문교수가 되어 주역의 원리를 합리적으로 해석하는데 진력했다.

남사고는 살아생전에 현실 참여와 개혁의지를 갖고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사후에는 그의 예언이 적중했다하여  명성을 얻었다.


예언이 적중했다고 일컬어 지는 예언 중 몇가지를 옮기면

 ‘임진년에 백마 탄 사람이 남쪽으로부터 나라를 침범하리라’고 예언했는데

 선조 25년 왜장 가토(加藤淸正)가 백마를 타고 쳐들어온 임진왜란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또 명종 19년(1564)에 ‘내년에는 태산(泰山)을 봉하게 되리라’고 예언했는데

이듬해 문정왕후가 별세하여 태릉에 묘장한 예언,

남명 조식선생의 죽음 예언,

선조의 등극, 동서 당쟁이 시작 되리라는 예언 등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남사고는 미래를 예언하는 도참서(圖讖書)인 <남사고비결>과

풍수지리를 담은 <남격암십승지론(南格庵十勝地論)>이 있다고는 전해지나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현전하는 유집(遺集)으로 『격암유록(格菴遺錄)』, 『마상록(馬上錄)』, 『선택기요(選擇紀要)』등이 있으며

 1571년(선조 4)에 세상을 떠났다.


격암생가지로 알려진 이곳 근남면 수곡리 누금마을의 성황당터는

수년 전까지 마을의 동제를 모시는 성황당이 자리했으나,

 이 일대에 2007년 격암유적지를 조성하면서 성황당은 해체되었다.
북부 유교권 문화사업으로 조성된 격암유적지는

남사고의 위패를 모신 치격사(致格祠)와

강당인 수남정사(水南精舍),

서재인 자동서재(紫洞書齋) 등이 있어 남사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격암유적지 조성 당시에는

격암생가터를 중심으로 주변의 수려한 경관과 인근의 성류굴, 불영계곡 등

명승지를 연계한 전통유교경관지로 조성하고자 했으나,

추진 과정에서 본래의 계획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특히 주변에 숙박체험시설을 겸한 민속촌과 격암의 사상을 담은 천문대 등을 설치하여

교육체험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단순한 휴식공간으로 마무리됐다.


격암의 유적지로는

이곳 이외에도 

근남면 수곡리 ‘안잘미’마을의 산록의 격암의 묘역이 있으며

 화성리의 상현서원에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