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블로거기자단팸투어

영동여행 - 영동 난계국악박물관, 난계사

하늘타리. 2017. 10. 4. 23:26


난계 박연의 음악적 업적과 예술적 혼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설립되어 있는

난계국악박물관을 갑니다.


난계 박연 관련 사료와 전통국악기를 수집, 보관, 전시, 연구하고 있습니다.



국악의 역사,

박연의 삶,

악기제작과정,

박연의 업적,

세종과 난계 박연,

난계와 관련한 설화,

난계와 영동,

한국음악,

명인, 명창, 국악 의상,

국악기의 이해, 박연 부부 영정,

박연 왕지 등에 대해 관람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국악의상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국악박물관을 나와

바로 옆에 위치한

난계사로 갑니다.


난계사는 난계 박연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으로 1973년에 세웠습니다.

난계사의 입구 외삼문을 들어서면

홍살문 직전 우측에 박연이 관직에 오르기전 세워진 효자비가 있습니다.



홍살문을 지나면 좌측에 난계의 동상과 비가 있습니다.




영동 난계사 안내문


솟을삼문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내삼문에 ‘난계사(蘭溪司)’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영정각이 정면에 배치되 있습니다.


난계 박연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영정을 보며 난계선생에 대해 복습을 해 봅니다.

고려 우왕 4년인 1378년 8월 20일에

삼사좌윤 박천석의 아들로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는 영동향교에서 수학한 후

1405년 28세에 생원이 되었고

3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교리를 거쳐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세자시강원 문학을 지냈습니다.


예문관대제학, 이조판서를 역임한 후

관습도감 제조로 있는 동안에 많은 연구와 업적을 통해

음악에 관계되는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세종 이전의 궁중음악은 신라의 향악과 당나라의 당악, 송나라의 아악 등이 혼재되어 있었습니다.

세종은 박연으로 하여금 궁중음악을 일관성 있게 정리하도록 명했습니다.

조선은 송나라에서 시작된 성리학을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삼고 있었던 까닭에

 박연은 국가 행사에 이용되는 음악의 기본을 아악으로 정리했습니다.

또한 불완전한 악기 조율과 악보편찬의 필요성에 따라 편경(編磬) 12장을 만들고

12율관(律管)에 의거하여 음률의 정확성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업적으로 인해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난계사는 입구부터 길 양옆이 조경이 잘 되어 있습니다.

특히 외삼문이전 공간에서는 넉넉한 나무그늘아래 잔디밭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좋을 듯합니다

"상기 포스팅은

영동와인축제, 난계국악축제 홍보 및 영동의 문화 관광, 맛집을 알리기 위하여

충북 영동군청에서 초청하여 진행한 공공 팸투어에 참가한 후

후기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