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일
김석익 『탐라기년(耽羅紀年)』
“양제해의 옥사는 사람들이 모두 윤광종에게서 나온 것만 알지, 김재검이 주장한 것인 줄은 모른다."
왜 그럴까?
섬 사람들은 시비에 어두운지라, 겨우 수십 년이 지나 이목이 미치지 못하면 현우사정(賢愚邪正)을 능히 알지 못하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옥사가 이루어지자, 윤광종은 그 공으로 상을 받아 명월만호가 되었다. 스스로 계책을 얻었다고 여겼지만, 얼마 못 가서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성 옆에 묻었는데, 성이 또 무너져 버려 이를 덮어 버렸다. 김재검은 몸은 비록 면함을 얻었지만, 그 자식과 손자는 마침내 간악함으로 잘못되어 죽었다. 아! 천도(天道)가 폐하여지지 않았으니, 후세의 소인들에게 경계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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