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블로거기자단팸투어

영양 입암면 연당리 서석지

하늘타리. 2014. 5. 18. 20:10


선바위에서 연당마을 서석지로 갑니다.
선바위도 행정구역은 연당리입니다.

 

면이름은 선바위가 있다하여 입암면,

그리고 서석지라는 못이  있어서 연당리입니다.


입암면은 영양군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1914년에 행정구역을 고칠 때에 영양군 남면과 진보군 북면, 안동군의 일부를 떼어다가 합하여

입암면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연당리일대는 예전에 생부동(生部洞)의 임천마을의 한지역이었으나

광해군(1613) 때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선생이 은거한 후

지금의 서석지를 만들고 경정(敬亭)과 주일재(主一齋)를 짓고

못 가운데 부용화를 심으면서부터 연당마을이라 불리우고

마을이 커지면서 일대의 행정구역명이 연당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담 안쪽에 초록색옷을 새로이 입고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담안에 서석지가 있습니다.

 

 

서석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서석지 안내문을 읽어 봅니다.

 

서남쪽에 위치하여 동남방향으로 열려있는 정문을 통과합니다.


경정과 서석지

 

물가까이 다가가니 영귀제라는 표석이 있습니다.

귀향을 노래하는 제방이라는 이야기일겁니다.


그 맞은편 동북쪽에 경정보다 먼저 지은 주일제가 있습니다.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의 우람한 등걸을 봅니다.

공자가 여기저기 떠돌면서 강론을 할때 마땅한 건물을 빌릴수 없으니

은행나무 밑에서 주로 강론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은행나무 우거진 가지아래 그늘에서 학문을 강하게 되면 그곳을 향단이라고 하며

서원이나 향교에는 빠지지 않고 은행나무를 심습니다.


주일제앞을 지나 갑니다.

 

주일제 마루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노을이 물든다고 서하헌棲霞軒이라고 했습니다.

서향으로 건물을 지었다고 누가 뭐라하면 노을을 들이려 했다고 대답합니다.

 

 

경정敬亭마루에 올라섭니다.

 

경정은 넓은 대청과 방 2개로 되어 있는 큰 정자입니다.

 

정문과 향단

 

서석군

이 연못을 만든 정영방 선생이 마을 주변에서 찾은 아흔개의 작은 바위를 연못 안에 배치 하였습니다.


암석 하나하나 마다 모양에 따라 기평석(바둑판 바위), 난가암(도끼 자루 썩는 바위),

탁영반(갓끈 씻는 바위), 희접암(나비가 노니는 바위) 등의 이름을 붙이고

시를 지으면서 소일한 것이지요.

 

경정과 주일제는 정영방 선생이 1636년 영양의 입암으로 이주하여

인근의 석계 이시명, 조전, 조임과 교류를 하였던 별서別墅입니다.

 

정영방 선생은 우복 정경세의 제자가 되어 학문을 닦아

1605년인 선조38년에 진사시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낙향하여 자연과 벗하여 일생을 보냅니다.

 

선생은 연못안의 암석이 흰빛을 띤 상스러운 돌이란 뜻으로 서석이라 하였으며

그래서 연못의 이름이 서석지입니다.

 

가로가 13.4m 세로가 11.2m 에 높이는 1.3~1.7m의 크기로 모양은 요(凹)자형 입니다.
연못안에 상운석 등 평소 물위에 드러낸 것이 60여개고

침수 된 돌이 30여개로 물이 읍청거에서 유입되어 토예거로 나가는 양을 일정하게 유지하게하여

넘치는 법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서석군 왼쪽으로 사우단이 보입니다.

사각형으로 단을 만들어

매화, 소나무, 대나무, 국화를 심고 사우단이라 불렀습니다.

 

내부에 걸려 있는 편액

경정

 

경정잡영敬亭雜詠


집주인 석문(石門)이 지은 敬亭(경정), 克己齋(극기재), 瑞石池(서석지), 臥龍巖(와룡암), 四友壇(사우단),

玉成臺(옥성대), 詠歸堤(영귀제), 紫陽山(자양산), 倚筇臺(의공대), 立巖(입암), 芙蓉峯(부용봉),

紫錦屛(자금병), 龜浦(귀포), 懷遠臺(회원대)의 14편의 시가 들어 있습니다.

 

증 정경보贈鄭慶輔

愚伏 鄭先生(석문의 스승인 鄭經世), 省克堂 金弘微, 蒼石 李埈이 쓴 글을 새겼습니다.

 

 증 정석문 경보贈鄭石門慶輔, 이어지는 증 정석문 경보, 그리고  봉기석문지당 병서奉寄石門池堂 幷序

증 정석문 경보贈鄭石門慶輔
淸風子 鄭允穆, 陶軒 柳友潛, 鶴湖 金奉祖, 石溪 李時明의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어지는 증 정석문 경보
藥峯 徐渻, 河陰 申楫(신즙) 湖憂 李煥, 溪巖 金坽의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에는 인근 두들마을에 정착해 있던 石溪 李時明이 지은

봉기석문지당 병서奉寄石門池堂 幷序가 새겨져 있습니다.

 

임천산수경

 

 

서석지를 다시 한번 내려다 보고 경정의 뒤로 갑니다.

 

담장넘어로 수직사(守直舍) 두 채가 있습니다.

 

주일재옆의 문으로 출입을 합니다.

 

큰채에는 자양재(紫陽齋)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아랫채에는 지금도 디딜방아가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담배잎 건조장이 있습니다.

무너지지 말아라 무너지지 말아라


너도 저 은행나무 처럼 오래오래 이자리에 있으려무나.

 

최근에 만들어 세운 석문 정선생사적비를 보면서 마을을 나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