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길이 자연스레 산성안으로 연결됩니다.
덕양정, 대첩비각 그리고 대첩비
덕양정에서 보는 창릉천과 북한산
북한산 앞으로 보이는 게 봉재산과 망월산이겠지...
이 앞산은 대덕산 같은데...
대첩비와 대첩비각
대첩비각쪽으로 가다가 덕양정을 돌아보고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려 자유로가 달리는 옆으로
인천국제공항철도, 가양대교, 성산대교를 봅니다.
대첩비각
안에는 1602년 행주대첩비가 있습니다.
선조 35년(1602)에 권율 도원수 막하에 있던 여러 장수들이 장군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습니다.
행주대첩의 과정과 의의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비의 높이는 1.88m로 대리석으로 되어있습니다.
행주대첩비는 총 세개 입니다.
충장사 옆에 있었던 1845년 행주대첩비,
대첩비각에 있는 1602년 행주대첩비,
그리고 대첩비각 위로 보이는 1970년 행주대첩비.
1970년 행주대첩비
덕양산 정상에 위치한 이 대첩비는 1963년 8월 경기도민과 각계 유지들에 의하여 소규모로 건립한 것을
1970년 행주산성정화사업때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하였습니다.
높이는 15.2m이며, 화강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몇군데 조망을 보고
다시 대첩비와 대첩비각을 돌아봅니다.
대첩비를 한바퀴돌면서 이번에는 둘레를 다시 조망합니다.
충효정으로 내려가며 또 돌아보고
몇군데 조망을 더 보고 충의정으로 갑니다.
충의정은 행주산성 영상교육관입니다.
임진왜란과 행주대첩, 권율 장군의 생애 등을 담은 비디오 영상 기록물을 무료로 상영하고
상영시간은 약 17분 정도 소요된다고 합니다.
잠시 쉬어갈겸 상영물을 시청하려 하였지만 이곳에 근무하는 사람이 주섬주섬 정리를 합니다.
현재시간은 네시 반이지만 다섯시까지 관리사무실에 가서 퇴근을 해야 한다네요.
충의정에서 나와 둘레를 둘러보고...
토성쪽으로 내려갑니다.
행주대첩전투지
행주기씨유허비
이곳 고양 문봉서원에 제주에서 선정을 베푼 기건목사의 증손 기준이 배향되어 있습니다.
기준선생은 기묘사화 때 온성에 유배되었다 그 다음해 교살된 기묘명현의 한분이지요.
시호는 문민공이고 온성의 충곡서원, 아산의 아산서원, 종정의 종산서원에서도 제향되고 있습니다.
묘지는 인근 덕양구 성사동에 있는데 그곳에 효자 기응세의 묘도 있습니다.
기응세의 묘비는 두개 있는데
첫 묘비는 한석봉이 쓴 것이고
두번째 묘비는 중국명필 주지번이 쓴 것입니다.
기응세의 삼촌이 사단칠정론의 기대승이고
기응세의 아들이 영의정을 지낸 덕평부원군 기자헌입니다.
물이 나오는 샘터가 있는데 ...
기감수라고 쓰여있네요
또 다른 우물과 물통
언제까지 쓰였는지 모르는 우물을 한번 찍어봅니다.
대첩기념관에 문이 열려있어서 들어가
사진 몇장찍다가
어디선가 나타난 직원에게 사진촬영금지가 않보이냐고 욕을 된통 먹습니다.
뭐 그리 감출게 있다고 사진촬영금지인지..
후레쉬만 금지시키면 될것을 쓸데없이 유세를 떨고 있습니다.
대첩기념관을 나서 덕양정을 봅니다.
충장사는 공사중입니다.
공사를 한다고 한쪽을 뻥 뚫어 놓았습니다.
그래도 홍문으로 들어간 것이 길이 보기 좋았다라는 생각에 정문으로 갑니다.
담 왼쪽 끝으로 와서 내부 사진 몇장찍고
아까 뻥뚤린곳으로 들어가 볼 걸 하며 후회합니다.
그래봐야 사당문이 잡겨있어 영정은 볼 수 없었을 겁니다.
돌아나갑니다.
행주산성안내판
그리고 휴식공간
권율장군의 동상입니다.
1986년에 건립된 동상입니다.
권율장군 동상뒤에 관군의 전투장면과 더불어
우리의 민초들, 의병, 승군, 심지어 여성들까지 왜군과 처절한 전투를 치루는 장면들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이게 화가 나는 겁니다.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는 이미 나라가 아닙니다.
평소 관군의 육성에 등한시하여 외적이 침입했을때 관군으로 막아내지 못하여 민초들이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면
그건 이미 조정관료로써, 나라의 임금으로써 자격이 없는것이지요.
뻔뻔하기 이를데 없는 놈들이 임금이네, 관료네 하면서 개인의 영달만 누리고 있습니다.
충훈정에 내려가보고
충훈정에서 과녘은 않보고 저수지만 한번 보고 올라와 산성정문인 대첩문을 나섰습니다.
안내도와 안내문을 한번 더보고
시간이 조금 남아 여기서 평화누리길을 따라 행주대교를 가서 버스를 탈까하고 몇걸음 걷다가
몸을 돌려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로 갑니다.
1950년 9월 20일 한미연합 해병대가 한강을 도강하여 행주산성인 125고지를 탈취함으로써
9월 28일 서울 수복의 교두보를 마련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전첩비입니다.
전첩비는 두 개의 삼각형 비(碑)로 이루어져 있는데,
비가 2개인 것은 한국과 미국 해병대의 연합작전을 의미하며 삼각형은 안정과 신념, 투지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특히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한 삼각형 위쪽 꼭짓점은 한미연합군의 승전을 다짐하는 투혼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작전 당시 도강지점인 행주대교 북방 서원마을에 1958년 9월 28일에 건립하였다가
1984년 해병대사령부에서 현 위치인 행주대교 입구에 재건립하고 정비하였습니다.
전첩비로 올라오는 계단 옆에는 2005년에 설치한 LVT(수륙양용장갑차) 1대가 있습니다.
한미연합 해병대는 작전 당시 수륙양용장갑차를 타고 한강을 건넜는데
현재 설치된 장갑차는 작전에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같은 모델일겁니다.
전첩비앞에서 차를 타고 개화역으로 갑니다.
개화역에 붙어있는 강서둘레길안내도를 보고 언젠가 걸어볼 기회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Piano Trio No.1 in B flat major, D.898 1. Allegro Moder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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