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블로거기자단팸투어

달성 사문진 역사공원

하늘타리. 2013. 11. 25. 17:34

 
11월 9일
달성 사문진 역사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아, 아직 귀에 익숙하지 않으실겁니다.
화원유원지라고도 하던 화원동산입니다.

 

 

 

아주 오래전...
이규환 감독의 '임자없는 나룻배' 가 촬영되었던 곳입니다.

 

 

 

2010년에는 이름이 화원나루공원으로 바뀌었었지요. 

 

4대강 종합홍보관, 화원토성 역사공원, 수상레저시설, 수상리버뷰 호텔, 글로벌테마파크, 리버파크 빌리지 등을 조성하겠다고

일대를 정비했었는데...

 

이제는 역사공원으로 새로이 조성하고 있습니다.

 

사문진 나루터는 옛날 보부상들이 과거 부산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대구로 오는 뱃길로 이용되었으며,

1900년 3월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유입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으로,

지난해 10월 ‘99대 피아노 콘서트’를 개최한 곳이기도 합니다.

 

 

1900년 3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였던 사이드 보텀이

부산에서 낙동강을 이용해 사문진 나루터에 내려진 피아노를

짐꾼 20여 명을 이용 사흘만에 서울 종로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 때 피아노를 운반했던 마을 사람들은 피아노를 귀신통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년 뒤 파커 선교사가 다시 한 대의 피아노를 사문진나루터로 들여와 대구 신명학교에 기증하였습니다.

 

지금도 500년 넘은 팽나무가 옛 주막촌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당시 사공들은 이 팽나무에 밧줄을 매 나룻배를 정박시켰습니다.

사문진나루에 전국 각지의 보부상들이 들어오면 팽나무 아래에는 임시 장터가 섰고,

선주들은 좋은 날을 골라 만선과 무사고를 기원하는 풍어제도 올렸습니다.

 

부산포에서부터 물품을 실은 배가 낙동강을 따라 올라오면 7, 8일 만에 사문진나루터에 도착합니다.

이곳에 15세기 후반까지는 왜에서 이입된 물품을 보관하는 화원창(花園倉), 왜물고(倭物庫)를 설치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들어온 물품 가운데 5분의 2는 대구 시장에서 소비됐고,

나머지는 충청, 강원, 호남 등 전국 각지로 수송될 만큼 사문진은 영남지역 최대의 물품 중개지였습니다.

1940년대 초 한 기록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반입된 물자는

쌀 20만 섬, 콩 10만 섬, 우피 40만 근, 소금 10만 섬, 석유 3만5천 상자,

성냥 6천 상자, 옥양목 6만 단, 무명 10만 단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나루터는 1993년 개통된 사문진교로 인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가 최근 새로이 설치되었습니다.

 

이곳 사문진나루터에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고령과

인접한 창녕, 의령, 합천 등 영남권의 보부상들이

오가는 길에 꼭 들를 정도로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주막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문진나루터의 주막촌 가운데 가장 유명했던 '춘원관'의 경우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후인 1948년경 사라졌다가 1970년대 초에 다시 복원돼 최근까지 매운탕집으로 명맥을 이어왔지만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정비작업때 이곳 식당가의 건물들과 함께 다시 헐리고 말았습니다.

 

최근 이 일대의 주막촌이 옛 보부상들의 정취를 살린 전통양식의 한옥 구조로 복원되었지요.

 

한테이블에 손두부와 부추전 한판씩 시키고 국빕 한그릇씩 말아먹었습니다.

 

 

 

 

 

부른 배 둥둥 두드리며 벽면에 붙은 옛사진을 바라봅니다.

 

 

 

 

 현재 이 주막촌은 달성군 직영 형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내년도 시설관리공단이 설립되면 운영 업무를 이곳으로 이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배는 무겁지만 발걸음은 가볍게 화원동산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