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비리길을 갑니다.
사실....
혼자 입이 툭 튀어 나와 있었습니다.
이번 걷기학교 스케줄에 거제의 노자산과 창녕의 화왕산을 간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노자산은 가본 적이 없는데 그 곳에서 보는 다도해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말을 몇 번인가 들었고
화왕산은 봄과 가을에만 다녀와서 여름이나 겨울에 꼭 다시 가보고 싶다고 생각 했던 곳이라서 다른 계획을 취소하고 제주에서 나왔는데....
화왕산 올라가기 전 신돈의 흔적도 답사한다 하여 큰 기대를 걸었었는데
노자산도 중턱에서 돌아오고 신돈의 흔적은 패스하고
화왕산에서는 정상도, 배바위도 않가고 그냥 가운데 평원으로 질러와버려서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입만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개비리길에서 고마워합니다.
걷는 내내 왼쪽에서 마중해주던 낙동강물..
마삭이 길을 내어준 오롯한 외길과
군데군데 나를 불러 세우는 암석들...
이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현재를 볼 수 있었고..
그래서 꼭 다시 가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어 더욱 고맙습니다.
그날 8월 12일의 기록입니다.
창녕 남지읍에서 낙동강변으로 가던 차가
낙동강과 남강이 합펴지는 두물머리가 보이는 수변공원 옆에 차를 세웁니다.
안내도상에 11번 지점쯤 될 겁니다.
자연그대로의 너른 들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유지해주는게 고마운 일이지요...
수변공원을 왼쪽으로 끼고 강바람을 맞으며 걷습니다.
두물머리가 보입니다.
함안쪽 갈마산을 쳐다봅니다.
아니 용화산인가?
저 산의 왼쪽 어느 부분,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능가사라는 절집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다고 하고
절집 관음당에 용왕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곳 에서 보는 남지철교는 너무 너무 아름다웠다는 기억이 납니다.
남지철교에서 보는 능가사도 아름다웠고요...
남지 철교를 생각하니 또 답답해집니다.
한국 근대에 만들어진 다리 중 가장 아름답다는 다리...
1931년 당시 최신기술을 사용하여 가설을 시작
1933년 개통 창녕과 함안을 이어준 고마운 다리인데
한국전쟁 중 가운데부분 국군에 의하여 폭파되었다가 1953년 복구하였습니다...만.
복구 시 날림으로 인해
1994년 안전진단 결과 붕괴위기에 처했다 하여 차량통행이 금지된 다리입니다.
그것만 해도 가슴 아픈데...
일제의 잔재이니 없애자는 사람과
동쪽으로 남지대교와 낙동대교가 있으니 불필요한 시설이니 없애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힘을 얻고 있답니다.
에라, 이 벽창호들아!!라고 마음속으로 크게 소리 질러 봅니다.
결국 소심...
또 딴생각...
의령 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아까 본 안내판에 의하면 저쪽 강변에 호국의병의 숲이 조성되어 있다고 하네요.
곽재우장군에 대해서는 이 부근 거의 모든 지역에서 연고를 주장하는데
의령에서는 곽재우 장군이 의령에서 태어나셨고
의병을 이끌고 1592년 왜병에게 첫 승리를 거둔 역사적인 장소가 바로 의령이다하여
6월 1일을 의병의 날로 제정하고 의병의 숲을 가꾸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습니다.
가보지 못한 곳이니 할 말은 없고 언제 한번 가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만 합니다.
그 언젠가 이 낙동강을 건너 의령과 함안으로 가는 사람들을 실어 날랐을 나룻배의 모형이 서있습니다.
철새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 파 뒤집혀지고 모래톱이 사라진 이곳에 예전처럼 철새들이 올까요?
오겠죠?
와야겠죠?
그렇지만 정말..올까요?
시멘트포장도로가 끝나고 오른쪽으로 산으로 접어드는 길이 보입니다.
이 산길을 이용해서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답니다.
산도 보고 바다도 보고 좋은 길인듯 싶습니다.
그 초입만 기웃거립니다.
개비리길은 강변을 따라 간답니다.
길옆 전봇대에 있는 안내현수막에 의하면 조금 전에 본 산길이 말무덤산 등산로라 하네요.
그리고 들머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말 무덤이 있다하는데 그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강물을 따라 걸으니 왼쪽만 봅니다.
오른쪽에 무슨 기척을 느껴 바라보니 혼자 놀란 왜가리가(백로일수도 해오라기일수도 있습니다) 산위로 날아갑니다.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당기다가 새들을 놓쳤습니다.
멀리 잡다보니 두개의 하얀 점이 하나의 하얀 점으로 바뀌고 맙니다.
차라리 보이지나 말지 왜 약 올리는 거니? 하고 공연한 투정을 부리며 연꽃이 가득한 못을 봅니다.
고개를 돌려 다시 강을 보다가
죄 없는 포크레인이 보기 싫어
포크레인을 빼고 다시 찍습니다.
강 건너 의령 땅을 보고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을 봅니다.
시골길의 전형적인 모습. 비포장길 한쪽으로 따라가는 전봇대...
도수로.. 그 옛날 농사를 지을 때 생명의 줄..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암벽사이 분꽃
나를 기다려 주어 지금 이 시간에 아직도 피어 있습니다.
저녁에 피는 꽃. 그때가 오후 네 시 이후..
그래서 분꽃을 영어로 four-0'clock flower라고 부릅니다.
동시 한 수
분꽃이 피면
- 이문구
우물가에 핀
분꽃을 보고
꼬부랑 할매
저녁 차비 하시네.
눈이 어두워
시계는 못 봐도
분꽃이 피면
해거름녘
쌀뜨물을 받아서
분꽃에 주시네.....
까만 씨 속에 하얀 분(紛)이 들어 있어서 분꽃이라 하지요.
그 어려웠던 시기에 씨앗을 갈아서 얼굴에 바르는 분으로 이용하였답니다.
뿌리는 자말리군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서 한약방에서 이뇨, 해열작용에 좋다고 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년초이지만 원산지에서는 다년초입니다.
분꽃은 한 번 심어 놓으면 그 자리에 씨앗이 떨어져 해마다 스스로 피고 지고합니다.
피고지고 또 피어 이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쁨 받기를 바랍니다.
낙동강이 잘 따라오나 확인 할 겸 뒤를 돌아보고
안심을 하며 앞을 봅니다.
정으로 쪼아 파낸듯한 암벽.
이것은 물통.. 바로 앞이 강인데 암벽을 타고 내리는 물을 모아 식수로 썼습니다.
큰 나무 아래 평상
전형적인 쉼터의 모습입니다.
평상위에 마음을 내려놓고..
혼자 편히 쉬어라 하고 마음 없이 길을 걷다가
몇 걸음 떼지 못하고 돌아보며 마음을 부릅니다.
개비리둘레길 현수막
개비리길은 아까 출발한 남지읍 영산리에서 영아지까지 이르는 절벽 길을 이르는 이름입니다.
개가 다니던 길이라 해서 개비리길이라 했다는데
돌아와 검색해보니 개는 강가를 뜻하는 말이고 벼리는 벼랑의 지역어로 강가를 연하는 벼랑길이라는 뜻이 랍니다.
여수 금오도 비렁길.
통영의 동파랑길.
같은 이야기지요.
영아지는 영산의 아지마을이라는 뜻이랍니다.
이 지역에서는 앞이 가려진 마을을 아지마을이라 한다는데
아지마을이 영산과 창녕의 중간지점이라
영산과 창녕이 갈려있던 시절에,
창녕쪽 아지마을은 창아지, 영산쪽 아지마을은 영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합니다.
우리는 영산쪽 아지까지 가는 건지 아니면 중간의 어딘가로 빠지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제는 풀밭으로 들어갑니다.
짚신나물꽃이 나를 반깁니다.
넙적한 잎모양이 짚신과 닮기도 했고
꽃받침에 있는 갈고리 같은 가시털이 물체에 잘 들러붙어서 생긴 이름인데,
사람 다니는 길가나 풀숲 쪽으로 기울어져서 자랍니다.
사람과 짐승의 옷이나 피부에 붙어서 널리 퍼지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꽃말이 임따라 천릿길입니다.
예전에는 어린 순을 익혀 무쳐먹었습니다. 그래서 나물이라는 이름이 뒤에 붙었고요.
어느 나라에서는 굉장히 귀하게 여겨지는 약초이기도 합니다.
한문으로 이 꽃의 이름을 쓰면 선학초(仙鶴草), 용아초(龍牙草)라고 합니다.
암 치료에 상당한 효과를 보인다고도 합니다.
북한에서 펴낸 <동의학 사전>에는 “이 식물을 위암·식도암·대장암·간암·자궁암·방광암 등에 쓴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중국 모두 이 풀꽃에서 추출한 성분을 암 치료제 개발에 사용한다 합니다.
미안하다. 짚신나무풀꽃아!
보아도 보지 못하고 알려줘도 알지 못하니 그렇게 그냥 이 구석에서 피고 지는구나.
하지만 그게 인생, 아니 풀생, 아니 초생이란다.
딴생각하다 앞의 꼬리를 놓쳤습니다.
원래 불량학생입니다.
사진을 계속 찍다보니 거의 모든 행렬에서 맨 앞 아니면 맨 뒤입니다.
오늘도 맨 뒤에서 적당한 간격으로 가다가 잠시 한눈을 피는 사이 앞 꼬리가 어딘가로 꺾었습니다.
이리 내려가 강변으로 갔으면 하고 바랐는데 숲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혼자 잠깐 더 가 봅니다.
강변에서 멀리 박진나루가 있는 곳쯤 될 것이라 추정하는 곳과 바로 앞 강변을 바라보다가...
다시 숲길로 접어듭니다.
마삭이 자기 자리를 비켜 길을 내주었습니다.
그러면 고마워하고 또 고마워해야 하는데
이정도로 만족하지 못하는 어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또 길을 넓히겠다고 부산을 떨까봐 걱정입니다.
이 길을 걸을 때 이곳은 군도로 확장하겠다는 것을 지켜낸 곳이라고 들었는데.
그 군도를 저지한 사람들중 일부의 입에서
MTB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공연한 걱정이 또 생겼습니다.
그냥 놓아두면 않될까요?
누군지 모르는 당신에게 부탁한번 드려봅니다.
낙동강을 바라보며 숲길을 걷습니다.
이 길이 아름다운 것은 이렇게 낙동강이 따라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나무숲과 어울려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걸음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벼랑 위를 걷는 내 옆으로 또 하나의 벼랑이 불쑥 나타나서 나를 붙잡고
그 벼랑과 이별하여 숲길을 걷다보면 또 다른 벼랑이 나를 반겨주고
또다시 나뭇숲사이로 또는 그 건너로 강이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이질풀입니다.
참 억울한 아이지요.
때 묻지 않은 소박함으로 곱게 피어나는데...
그리고 이질에 약효가 좋다고 이질풀이라 이름이 붙었는데
이질풀이라는 이름 때문에 무시당합니다.
그렇다고 우리한테 항의한번 않합니다만
그냥 미안할 뿐이지요...
일본에서는 5대 민간 영약으로 꼽힙니다.
일본인들은 이질에 걸리면 회생 불가할 정도의 치명적 피해를 입는데 이 꽃을 다려먹으면 곧 원기를 회복하니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꽃말이 귀감입니다.
딴 풀꽃들에게 이 꽃을 귀감삼아라 이야기 하나 봅니다만...
이제는, 특히 우리나라사람에게는 그냥 들꽃일 따름입니다.
아, 사진사들은 이 꽃을 좋아하더군요.
10월경 열매가 익을 때 하늘을 향해 꼬투리 몇 개를 곧추세웁니다.
그 꼬투리 밑에 조그만 주머니에 씨앗이 달리는 데
그 곧추세워진 모습이 야생화접사의 필수코스이더군요.
대나무숲속으로 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한낮인데도 어둑어둑합니다.
그 어둑어둑함 속에 집이 한 채 있습니다.
폐가
공포체험에나 나올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들어가 봅니다.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다 들어갔다 나놨거든요.
일행 중의 누군가가 무슨 무슨 정이라고 쓰여 있는 편액이 있었는데 지금은 않보인다길래
편액이 있을 만한 자리를 찾아보았지만 허물어져 떨어진 것 같습니다.
돌아 나와 다시 보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이야기합니다.
그 언젠가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집의 주인이 이곳을 떠날 때 까지는 바로 여기서 강이 보였답니다.
그 강까지의 터에 주인이 밭을 가꾸고 살았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주인이 집을 버리고 떠나갔고
또 어디에서부터인지 대나무가 자라서 이렇게 집주위를 덮었다고 합니다.
본 이야기인지, 들은 이야기인지 궁금하지만
주인이 무슨 까닭으로 살던 집을 버리고 이곳을 떠났을까 하는 생각에
아까는 음산하게 느껴졌던 이 부근이 이제는 측은하게 느껴집니다.
대나무사잇길을 지나 강변 방향으로 가다 다시 숲길로 들어섭니다.
이 길의 주인 마삭줄 그 사이에 둥글레
이 소로길옆의 지천인 마삭줄이 늦은 가을 빨갛게 단풍들었을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래 그때 다시 올께..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그리고 그때 이후로도 버텨주어야 한다.
숨어있던 강이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하이라이트로 비리(벼랑)를 보여주어
이 길이 바로 개비리길이라는 것을 다시 일깨워줍니다.
개비리길옆 또 다른 비리
그 비리에 내 얼굴이 있습니다.
주변과 함께 찍으려니 거리가 짧아서 사진이 쓰러집니다.
그러다 보니 바위 곳곳에 박혀 있는 부처손이 잘 않보입니다.
않보이는 게 더 좋은 것인지도 모르지요.
사람 눈에 띄어서 좋을 일이 없습니다.
부처손은 권백(卷柏)이라고도 하며 부처님 손바닥을 닮았다 하여 부처손이라 불리웁니다.
늘푸른여러해살이풀입니다만 겨울에는 푸른 부처손을 잘 볼 수 엇습니다.
겨울철에는 있는 듯 없는 듯 납작 엎드려 있다 봄철 비가 오면 깜짝 놀래키며 나타납니다.
우리나라 남쪽 웬만한 산 바위틈에 꽤 많이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인가 방송한번 탄 다음부터 점점 보이질 않습니다.
바위틈에서 채취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은 개체를 보존하고 있지만 글쎄요...
그게 언제까지일는지 그냥 걱정이 됩니다만
노인분들의 힘없고 나른한 증상에 달여 먹으면 기운을 돋게 하며
폐렴이나 기침, 만성기관지염에 좋고
만성간염, 간 경화증, 황달 등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며 혈액의 흐름을 좋게 하는 효과가 있어
자궁출혈이나 생리불순, 생리통 등의 각종 여성질환에도 좋다고 하니
필요한 분은 약으로 또는 차로 다려먹으면 좋다고는 합니다.
참 이율배반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분이 있을 수 있고
그리고 이렇게 사람이 다니기 시작한 곳 옆에서는 결국 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의미 없이 없어지는 것 보단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바위만 찍습니다.
부처손을 찾아보세요.
배리옆으로 보이는 강
배리길옆 배리
강을 봅니다.
굳이 외면하려 했습니다.
아름답게 보여주려고만 했습니다.
그래서 멋진 모습만 찍었습니다.
하지만 강이 이야기합니다.
숨쉬기 어렵답니다.
이게 진짜 강물의 모습입니다.
녹조에 덮여 숨을 못쉬고 꺽꺽 거리며 고통을 호소합니다.
출발할 때도 남강쪽 높이 쌓여진 보를 보았으면서 부러 못본척하고...
모래톱이 없을 것이라는 지레짐작으로 강물옆으로 한번 가보지도 않았습니다.
부끄러움에 강에서 눈을 피하게 해주는 숲길이 반갑습니다.
부처손 군락을 만납니다.
부처손아 손을 오므려 합장하여
부처님전 빌어다오...
누군가가 일부러 이 땅을 망치려고 한 게 아닐 테니
그 누군가의 말대로 이것이 일시적 현상이고
곧 다시 맑아진다는 말이 사실임을 빨리 보여주십사고......
돌이 파인 것처럼 내 가슴 어딘가도 푹 파인 것 같이 찌르듯 아픕니다.
말없이 사진기 셔터만 누르며 갑니다.
밤나무밭 옆에서 개비리길 걷기를 마칩니다.
기다리던 버스에 타고 우포늪으로 갑니다.
우포로 가는 길에 넘어가는 다리
아마도 박진나루를 넘어가는 다리일겁니다.
이곳의 강물색 역시 멀리서만 아름답습니다.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눈을 번쩍 뜨며 사진을 찍습니다.
의령 유곡천입니다.
맑은 시냇물에 아이들이 함께 합니다.
그래 이 맑은 물이 주변 모두로 흘러다오...
다시 낙동강을 넘어갑니다. 적포교....
deja vu 또는 구간반복
우포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포스팅하는 이 순간... 그 모습 그대로의 개비리길과 맑아졌을 낙동강물을 기대합니다.
Ludwig van Beetho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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