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제주의 마을

제주시내 답사 1

하늘타리. 2009. 12. 22. 23:46

 


 

2009년 12월 16일 한겨레매거진에 올려져 있는 제주읍성터 올레와 산지천에 대한 워킹맵을 참조하여 시내 답사를 떠납니다.

먼저 제주성을 한바퀴 돌겠다는 고천의식 삼아 국립제주박물관을 둘러보고

북초등학교옆에 차를 세우고 제주목 관아 - 제주성터 - 산지천 - 건입동 복신미륵상까지 갈 예정입니다.

그곳에서 다시 목관아옆으로 돌아와야죠

 

한겨레 워킹맵입니다.

 

제주 박물관입니다.

혹시 야외전시관에 무언가 전시되어 있을까 싶어 그리로 먼저 갑니다.

 

 

그냥... 언제나 처럼....삼양동 선사유적지 망루 복원한 것과 동자복 서자복 두분의 조형이 빈뜰을 지키고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빈 그네를 바라보니 마음만 허해옵니다........

실내로 들어와서.....

지금이 12시 전후라서 인지  학생단체 관람객이 없습니다.

조용한 틈을 이용해서 사진 몇장을 찌습니다.

 

 

 

 

 

 

 

탐라순력도입니다. 41폭 채색화첩중 박물관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열몇폭을 해설과 더불어 게시하였습니다.

한점한점 살펴봅니다.

 

 

 

 

 

 

 

 

 

 

 

 

 

 

 

 

 

 

 

 

 

제주목사들에게 내린 교지입니다 

 

 

제주 서귀포 출신으로 전-예-해-형-초서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서예의 대가라시는 현중화선생 글씨입니다.

 

유배되어온 사람 중 우암과 면암입니다.

성향이 많이 다른데 나란히 있으려니 면구스러운지 우암은 고개를 돌리고 면임은 찌푸리고 계시네요 

 

 

 내왓당 무신도 세폭이 걸려 있습니다. 전래되고 있는 12폭을 다 걸자리가 없나봅니다

 

 

 

 제주읍성입니다.

 

 전시관을 나와서

 

 원당사탑 복제품까지 왔다가...박물관을 나섭니다.

 

 

북초등학교입니다.

1907년에 당시 객사청이 있던 자리에 제주공립보통학교를 세웠다 합니다.

보통학교가 서기 전에는 객사청인 영주관이 있던 자리....

 

 관덕정입니다.

제주목관아의 일부로써 세종때 병사들 훈련목적으로 세웠답니다.

여러차례 복권되던중 일제시대에 지붕의 형태가 변형된 것을 2006년 보수를 통해 원형을 찾았답니다.

앞터가 넓다 보니 여러가지 용도로 쓰였을 겝니다

 

당간지주 아니 기간지주입니다.

장군의 위엄을 나타내는 기를 내거는 깃대받침기둥이라는 이야기지요.

펄럭일 때 보니 帥자가 쓰여 있네요.

 

 

보물 322호라 되어 있습니다.

창건당시 관덕정이라는 글씨는 안평대군이 썼다하는데

지금 걸려 있는것은 선조때 우의정을 아계 이산해가 쓴 것이랍니다 

 

탐라형승위로 보이는 호남제일정이라는 글씨가 역사적으로는 당연한건데 지금의 시점으로는 조금 생뚱맞네요

 

 

그림감상을 합니다.

十長生圖, 大狩獵圖,  鴻門宴, 陣中西城彈琴圖, 赤壁賦 大捷圖, 商山四皓, 醉過楊州橘滿轎 총 7점이네요

술에 취해 양주를 지나니 수레에 귤이 가득하다는 글옆에 술에 취해 수레에서 자고 있는 두보를 향해 미인들이 귤을 던져주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입니다.

 

 

 

아참 지금 그림은 모사한 겁니다. 언젠가 복각되어 있는 것을 보고  2006년 보수할 때 그린 그림입니다.

 

선덕대

김정이 제주목사로 부임한 후 수축한 월대라고도 합니다만......

북두칠성에 제를 올렸다면 이곳에서 봉제했다는 추측은 가능합니다만

제주에서의 칠성단은 민간신앙의 하나인 뱀을 모신다는 칠성눌과 관계가 있지 북두칠성과의 관계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어서....

 

 

이 지점의 해발고도가 11미터라고 적혀 있네요.

꽤 낮은 편이네요. 그러니까 이 옆 탑동매립지가 심심하면 넘치는 구나..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답게 관아의 현판이름이 진해루 입니다.

 

수령이하 모두 말에서 내리라고 하면 수령도 내리라는 건데..

저같은 민초는 더욱 말할 나위 없겠네요

 목관아에 들어섰습니다.

 

 

 

 

낭쉐랍니다. 나무소라는 이야기죠.

탐라국 시절에 국왕이 백성들 앞에 나서서 밭을 갈아 농사짓는 모습을 재현할 때 쓰던 신성스러운 소랍니다.

 

 

망경루 올라가기 바로 오른 쪽에

뭘 그렇게 못잊을게 많은지 영세불망비도 많습니다.

 

고종 때 영의정이었던 이최응에 대한 송덕비입니다.

제주도민 구휼에 많은 애를 쓰셨다네요

 

좋은 일을 꽤 많이 하셨는지 전국 각지에 이분 송덕비가 꽤 많아요.

언듯 생각나는 것도 포항 조금 윗지방에 가면 무슨 감목관 송덕비 옆에도 꽤 크게 자리잡고 있어요.

결국 임오군란때 동생 이하응의 사주로 희생되고 말죠.

 

 

 

망경루에서 바라본 관아의 내정입니다. 

 

그런데 아마 제주고을 수령들은 만경루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정사를 편게 아니라 말로는 임금의 은덕을 기린다하면서 북쪽만 바라보며 언제 여길 떠나나 하는 생각만 했을 겁니다.

 

 

제주도 옛시설 어디나 주인잃고 쓰임잃어 하릴없이 모여 있는 동자석과 유물들을 둘러보며 목관아를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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